입력 : 2024.08.04 07:30
[땅집고] 인천의 한 아파트 정문 양쪽에 9m 높이로 세워진 방음벽이 있습니다. 이 방음벽은 아파트와 접한 왕복 8차선 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세웠는데요.
문제는 방음벽 설치로 인해 아파트 상가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됐다는 겁니다. 아파트 상가 접근성과 가시성 측면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실제로 상가 1, 2층 대부분에는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습니다. 새 아파트 상가가 부동산으로 가득한 것과 달리, 이 단지 상가 1층은 부동산 한 곳과 카페, 편의점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 “스트리트형 상가라더니” 9m 방음벽에 막혔다
이 단지는 인천 포레나 루원시티입니다. 아파트 1128가구와 상가 2개동, 208호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중 상가 A동은 방음벽과 대로변 사이에 있고, 상가 B동은 단지 뒤편에 있습니다. 2019년 상가 분양 당시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에 위치한 스트리트형 상가로 홍보가 됐는데요. 2022년 12월 건물 준공 이후 방음벽에 가로 막혀 외부에서 전혀 상가가 보이지 않게 된 겁니다.
상가 계약자들은 분양 당시 방음벽에 대해 듣지 못했다며, 사기 분양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루원시티복합청사 부지 바로 맞은 편에 들어서는 스트리트형 상가라고 설명해서 아파트 상가를 분양받았으나, 방음벽으로 인해 스트리트형 상가 장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도로나 건너편 인도에서는 방음벽 안쪽을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간판조차 보기 어렵습니다. 상가 전 호실은 방음벽으로 인해 아파트 정문을 지나야만 갈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상가에 가게를 내려는 세입자도 없는 상황입니다.
‘포레나 루원시티’ 아파트 상가 계약자 윤해옥씨는 “어느 날 상가 앞에 기둥이 세워져 있어 시행사에 기둥에 대해 물었는데 ‘없앨 계획이니 안심해도 된다’ ‘임대 계약을 진행해도 된다’는 답을 들었다”면서 “방음벽이 다 설치된 것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 방음벽 없앤다던 분양회사 “법대로 하라” 태도 돌변
상가 계약자들은 분양 당시는 물론, 방음벽을 세우기 시작할 때도 어떠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LH가 방음벽 공사에 들어간 2022년 5월, 상가 계약자들은 시행사에 방음벽에 대해 문의하자 ‘기둥을 철거할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후 수차례 방음벽에 대해 질의했으나 ‘문제가 없다’ ‘LH가 한 것’이라는 답변 뿐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아파트 준공 시점에 맞춰 단지를 찾았을 때는 이미 높이 9m짜리 방음벽이 설치된 후였습니다.
윤씨는 “방음벽 설치에 대해 들은 계약자가 단 한 명도 없다”며 “시행사는 계약자에게 방음벽 설치 과정에 대해 문자나 전화, 우편으로 안내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오히려 ‘법대로 하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분양 당시 모형도를 보면, A동 상가 앞에는 인도와 조경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당시 자료에는 상가와 대로변을 잇는 보행통로가 조성될 예정이었는데요. 방음벽 설치도 이미 계획됐던 걸 알 수 있습니다. 보행통로를 따라 바깥으로 이동하는 도로 끝에는 ‘방음벽’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애초엔 방음벽을 상가 A동 전면부에 설치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상가 계약자들 사이에서 반발이 쏟아지자 시행사는 LH와 협의를 통해 방음벽 위치를 상가 건물 위로 이전하겠다고 계약자들에게 답했습니다.
■ ‘사기분양’ 인정한 법원 “109호실 계약 취소”
그러나 철거가 되지 않고 상가 전면부 위치에 방음벽이 설치되자 결국 상가 계약자들은 상가 계약 취소 소송을 걸었는데요. 최근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사기분양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방음벽으로 인해 1·2층은 아예 외부에서 보이지 않으며, 3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스트리트형 상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상가 A동 187호실의 58%에 달하는 109호실에 대해 계약 취소를 판결했습니다. 상가 공급계약을 체결한 신탁사는 분양계약을 취소하고 109호실 수분양자들이 낸 계약금 1000만원씩을 반환해야 합니다. 시행사 역시 판결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항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분양 과정에서는 시행사가 잘못된 내용이나 과장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번 판결은 허위광고를 자제하라는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와 상가, 지식산업센터 등 여러 부동산 홍보물에서는 ‘상기 이미지는 참고용’이라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이미지인 만큼, 실제 현장은 이미지와 다르게 지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요. 이러한 업계 관행으로 인해 분양 시장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례로 인해 계약자나 분양회사 모두 허위 광고를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분양회사와 계약자 모두 이미지나 모형을 보고 상품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분양회사는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계약자는 제공받은 정보를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법무법인 '정세'의 최진환 변호사는 “상가는 잘 보이고 접근하기 편해야 가치가 높아진다”며 “시행사가 가시성·접근성을 저해하는 방음벽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것은 기망행위”라고 했습니다. 이어 “시행사가 부동산 상품 정보를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단지 후면부에 있는 상가 B동의 경우 방음벽으로 인한 피해가 크지 않다는 판결을 받았는데요. 2차선 도로에 접해 있어, 방음벽과 A동을 통하지 않고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패소한 B동 계약자들은 항소한다는 입장입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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