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7.17 07:30
[땅집고] 원자잿값은 오르고 추가공사비 분쟁이 느는 등 주택사업 리스크가 커지면서 건설사들이 경쟁 수주는커녕 단독 입찰마저 피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운데 시공업계 1위인 삼성물산이 가구당 이주비로만 10억원을 주겠다며 경쟁을 불사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심지어 삼성물산이 대대적인 수주 전략까지 바꿔가면서 깃발 꽂기에 진심입니다.
용산구 남영 업무지구2구역(남영2구역) 재개발 사업지입니다. 남영 2구역은 오는 8월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있는데요. 조합은 공사비로 한 평(3.3㎡)당 1070만원을 제시했고, 현재 삼성물산과 HDC현산이 사활을 걸고 경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높은 공사비 때문에 경쟁 수주가 성사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텐데요. 요즘은 조합이 공사비 1000만원 이상을 제시해도 건설사들이 쉽게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영 2구역에서는 삼성과 현산이 수억원을 주겠다며 뽑아달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남영2구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일대 1만7천여 ㎡를 재개발해 최고 34층, 565가구 아파트와 80실 오피스텔, 복합청사 등을 짓는 내용의 사업인데요. 예정 공사비는 7000억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조합원은 110명 정도입니다.
일반분양분이 임대를 제외하면 359가구로, 조합원의 3배를 넘습니다. 여기에 오피스텔, 상가까지 합하면 일반분양분 비율이 60% 수준에 달합니다. 지금 서울에서 이 정도 사업성을 가진 구역은 별로 없다고 하는데요. 사업성이 워낙 좋다보니 분담금 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지리적으로도 매우 뛰어납니다. 용산공원과 주미대사관 이전 예정지가 200m 내에 있어 용산 내 노른자위로 꼽히는데요. 대통령 집무실과는 직경 1㎞ 이내에 있고, 근처에서는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용산공원이 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서울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과 1호선 남영역 사이에 있는 더블 역세권이기도 합니다.
두 건설사 모두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는데요. 우선 삼성 쪽 제안을 보겠습니다. 단지명은 ‘래미안 수페루스’, 총 공사비는 6614억을 제안했습니다. 공사비 인상 없는 확정 공사비입니다. 현산(6759억원)보다 145억원이나 낮습니다. 총 공사비를 연면적으로 나눈 평당 공사비로 환산하면 1048만원 수준입니다. 공사비는 기성불로 받겠다고 했습니다.
삼성 측은 사업촉진비 1120억원도 약속했습니다. 조합원 가구당 10억원씩 지원한다는 겁니다. 미래가치나 비용 절감 등까지 포함하면 한 가구당 약 21억원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커뮤니티와 가구 평면 특화 설계도 적용합니다. 글로벌 설계사와 협업한다는 건데요.
조합원이 입주하는 고층에는 전 가구 용산공원 조망이 가능한 프라이빗 테라스를 조성하고, 아파트 3개 동을 스카이브릿지로 연결해 남산과 용산공원을 영구 조망하도록 한다는 제안입니다.
현산은 단지명으로 ‘트리니티 아이파크’를 내세웠습니다. 공사비는 총 6759억원을 제시했습니다. 평당 공사비는 1058만원 수준으로, 삼성보다 10만원 높은 수준입니다. 다만 2년 2개월 간 물가 변동 없는 ‘확정 공사비’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2년 동안의 물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삼성보다 1000억이 싸다는 주장입니다.
공사비 산출을 위한 기준 시점은 2026년 8월로 정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사비 산정 시점은 입찰 마감일을 기준으로 두지만, 현산은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액 시기를 최대한 뒤로 미룬 겁니다. 현산에서도 삼성 못지 않게 각종 글로벌 설계그룹, 컨설팅 그룹과 손 잡고 단지 고급화, 사업비 전액 업계 최저금리 책임 조달 등을 약속했습니다.
두 건설사는 남영2구역에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있는데요. 속사정을 파헤쳐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삼성의 경우, 명실상부한 업계 1위지만, 현재 도시정비사업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정비사업에 나서지 않다가 2020년 정비사업 시장에 화려하게 복귀했는데요. 현재까지 한 번도 경쟁 입찰에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올 초에는 사업비 1조 규모인 부산 촉진 재개발 수주전에서 포스코이앤씨에 패배했는데요. 지금까지 삼성이 따낸 모든 수주 계약은 단독입찰에 따른 수의계약 뿐입니다. 이번 남영2구역 수주전에서 승리를 가져와야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번에도 패배할 경우 삼성이 앞으로 한남4구역이나 압구정 등 핵심 사업지에 나서기 힘들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확실히 삼성에서도 이를 알고 전력을 다 하는 모습입니다. 남영2구역을 위해 수주 전략도 바꿨는데요. 용산에 사업소를 배치한건데요. 남영2구역을 따내 다른 용산 핵심 사업지를 수주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현산도 지금 이미지 개선이 절실한 상황인데요. ‘래미안’을 잡아 ‘아이파크’ 이미지를 다시 높여보겠다는 겁니다. 현산은 지난해 광주에서 잇딴 붕괴사고와 부실시공 등이 터지면서 ‘아이파크’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망가졌습니다. 사고 여파로 한동안 재개발 재건축 시장에서 현산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요. 최근 신용등급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바뀌는 등 실적이 개선되면서 다시금 도시정비사업 분야에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정비사업 업계에서 아직 승리한 전적이 없는 삼성을 상대로 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현산은 본사가 용산에 있다보니 홈그라운드를 뺏길 수 없다는 반응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요즘 재건축 재개발 시장에서 용산은 강남만큼 뜨겁습니다. 한남4구역 등 대형 사업지에서도 수주전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요. 이 밖에도 청파동, 후암동, 원효로, 효창동 등 다수 재개발 사업지와 서빙고 신동아, 청화아파트 등 핵심 입지 물량이 많습니다. 두 건설사 역시 한남 등 핵심 사업지 진출을 위해서라도 치열한 자존심 싸우에 돌입하고 있는 겁니다. /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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