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5.24 07:30
[땅집고] 국토교통부가 지난 22일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의 선도지구 지정 기준과 규모 등 공급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발표된 내용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선도지구 아파트를 확정해 발표한 것이 아닌, 물량 규모만 정한데다 공사비와 금리 상승 국면에서 사업성을 보장할 만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 등의 내용이 빠져 있다는 설명이다. 또 선도지구 선정을 할 때 주민 동의율을 가장 우선하기로 했는데, 주민이 똘똘 뭉친다고 해서 재건축 사업성이 높아지지 않는단 점을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 서울 핵심지도 공사 중단 속수무책…“동의율보다 단지별 사업성이 관건”
정부의 공급 계획 발표에도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에 불투명한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최근 공사비와 금리 상승으로 서울 핵심지에서조차 재건축 사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 재건축 사업장은 3.3㎡당 공사비가 510만원에서 889만원까지 오르면서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이 불거지며 사업이 표류했다.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사업은 조합이 공사비 1800억원 지급을 못해 사업이 멈췄다. 사업 재개는 아직까지 안 된 것으로 알려진다. 강서구 방화6구역 재개발 현장도 지난해 공사비가 3.3㎡당 470만원에서 727만원으로 급등하면서 조합 갈등으로 사업이 늦춰졌다. 이 세 곳은 국토교통부가 직접 갈등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사업 정상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경기도에선 3400가구 대단지를 만드는 성남 은행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표류 중이다. 최근 시공사가 공사비를 평당 445만원에서 695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해 조합이 시공사 선정 계약을 해지하고 사업을 중단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라고 해서 특별히 위와 같은 상황을 피해갈 묘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를 통해 주민 동의율이 높고, 규모가 크면 점수를 많이 부여해 선도지구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선도지구 선정을 위한 표준 평가기준 100점 만점 중 주민동의율 배점이 60점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을 높게 뒀다.
최근처럼 집 짓는 비용이 높아진 상황이라면 1기 신도시 역시 사업성 윤곽이 드러날 수록 주민 동의를 받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국토부는 동의율 세부 평가기준에는 반대동의율까지 마련했다. 1개 단지에서 토지등소유자의 20% 이상이 반대하면 -10점, 2개 단지 이상에서 소유자가 20% 이상 반대하면 -20점이다. 주민 갈등이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사업은 무산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에 임의로 받은 동의율은 법적 효력을 인정하기 힘들다고 밝혔기 때문에, 새로운 양식에 따라 징구를 해야 한다. 그간 동의율이 높다고 홍보한 단지들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가 분담금의 규모 등이 나오면 잡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전문가들, “비용 지원하는 12조 미래도시펀드, 별다른 역할 못할 것”
다른 사업지와 달리 1기 신도시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12조원 규모 미래도시펀드로 부족한 사업비를 지원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비용 측면에서 일반 정비사업보다 1기 신도시 재건축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펀드는 연기금, 주택도시기금, 금융기관 등에서 출자·투자받아 조성되는 펀드로, 특별정비구역별 자펀드 출자를 통해 각 정비사업장에 지원된다.
그간 국토부는 재건축 단지가 내는 공공기여금을 유동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노후계획도시 정비를 위한 전용 보증 상품 등을 출시하겠다고 밝혀왔다. 초기사업비, 본사업비, 이주비, 분담금 등 정비 단계별 보증 상품 유형을 세분화하고 보증 대상과 한도도 용역을 통해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는 미래도시펀드 등 추가 분담금 대응 방안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22일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지정 계획을 발표한 자리에서 “이주 대책이나 자재비나 인건비 때문에 공사비가 많이 올라가 있는 상황이라서 사업성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며 “국토부는 미래도시 펀드를 조성해서 필요한 자금을 용이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거나 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미래도시펀드 등도 결국 금융기관이 사업성을 보고 대출을 내주는 구조여서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사업성이 잘 나온다면 굳이 미래도시펀드를 운영하지 않아도, 시공사가 책임준공으로 보증을 서고 금융기관이 돈을 대출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연말까지 선도지구를 정하더라도 시공사 선정 때 구체적인 공사비와 추가 분담금 규모가 나오면 동의율 높은 단지에서도 내분이 벌어질 수 있다”며 “특히 1기 신도시는 은퇴세대가 많아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주민 대다수가 현금청산을 하는 일이 발생하면 미래도시펀드도 의미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대규모 국책사업에 가까운 일을 너무 조급하게 추진하는 것 같다”며 “주민 동의율도 중요하지만, 사업 실현 가능성에 더 중점을 맞춰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서 교수는 “이주대책을 비롯해 다양한 사안을 지자체에 맡겨뒀는데, 사실상 중앙정부도 하기 힘든 일을 지자체가 어떻게 감당할 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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