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5.18 07:30
[분양 청문회] “아파트·상가 팔면 현금 드려요”…아파트·상가 미분양 폭탄에LH의 파격 마케팅
[땅집고] 요즘 분양시장에서 유행하고 있는 마케팅 기법이 있습니다. 바로 ‘MGM’인데요. 이 단어를 풀어보면 ‘Members get Members’. 고객이 다른 고객에게 상품을 권유해서 거래가 성사되면 인센티브를 주는 마케팅이라는 뜻입니다. 일종의 다단계라고 보시면 이해가 빨라요.
부동산 시장이 워낙 안 좋다 보니까 시행사랑 건설사가 아파트랑 상가를 아무리 열심히 지어놔도 미분양이 터지고 있거든요. 이런 미분양 부동산을 대신 팔아주는 사람들에게 성공보수 개념으로 바로 현금을 쏴주는 방식이에요. 보통 전문적인 분양업체나 공인중개사가 MGM 마케팅 시장에 플레이어로 참여해서 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공기업인 LH까지 이런 MGM과 비슷한 수수료 마케팅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민간 건설사 뿐만아니라 LH도 미분양으로 고민이 많기는 마찬가지거든요. 근데 LH의 마케팅 기법은 이름이 다릅니다. ‘분양유치금’. 조금 점잖은 느낌이죠. 2010년 초, 과거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침체했을 때 LH가 도입했던 제도인데 다시 등장했습니다.
원리는 MGM과 똑같습니다. LH가 전국 곳곳에 공급했다가 미분양이 난 아파트랑 상가를 매수할 사람을 구해오면 현금으로 보상해주는 거에요. 공인중개사들도 분양유치금을 받을 수 있고요, 전국 LH 주택에 살고 있는 국민들도 참여 가능해요. 임대주택 주민이든 분양주택 주민이든 상관없다고 합니다.
다만 일반 시행사랑 건설사들보다는 마케팅 시작하는 시점이 조금 느긋합니다. 민간기업은 당장 실적이 악화되면 타격이 크니까 분양 시작할때부터 ‘아, 이 현장에 MGM 적용해야하나’ 각을 재거든요. 청약률이 생각보다 저조하면 슬슬 마음을 먹죠. 한 두달 넘었는데도 미분양 물량이 해소가 안되면 MGM 시작하고, 그래도 안 팔리면 판매사원들한테 수수료를 더 올려 주기도 하고요.
LH는 아무래도 정부가 뒷받침해주는 공기업이라서 그런지 미분양 나자마자 분양유치금 제도를 시행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확인해보니까 대부분 미분양 기간이 1년 반~2년 이상 정도로 긴 단지들이었어요.
그럼 과연 어떤 LH 단지가 미분양을 못 견디고 분양유치금 제도를 도입했을까요. 대표적인 곳이 울산시 울주군 다운2지구 A9블록 신혼희망타운입니다. 신혼희망타운이 뭐냐면 LH가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공급하는 육아·보육 특화 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는 울산시에 짓는 최초 신혼희망타운으로 2022년에 총 835가구를 분양했는데요. 청약을 받았더니 딱 130명만 모여서 경쟁률이 0.15대 1밖에 안됐습니다. 그야말로 미분양 폭탄이 떨어진거죠. 그래서 입주 자격을 좀 완화해서 다시 공급했는데 최초 분양한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려 771가구, 전체의 92%가 미분양으로 남아있어요.
이 아파트가 전용 55~59㎡로 20평대인데 분양가가 2억 중후반대거든요. 수도권 집값이랑 비교하면 엄청 싸죠. ‘울산이 광역시인데 이 정도 분양가면 괜찮지 않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텐데, 왜 안 팔렸나 봤더니 단지가 들어서는 다운2지구가 아직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더라고요. 이제 막 새로 조성하는 신규 택지지구라서 생활 인프라가 부족하고 도심이랑도 멀고요. 신혼부부들이 살기에는 입지가 조금 아쉽죠. 그래서 LH가 올해 4월부터 특단의 조치로 다운2지구 신혼희망타운 1가구 팔아올 때마다 현금 300만원 주는 분양유치금 마케팅을 시작하게 된거에요.
판매사원 모집하고 있는 LH 아파트가 또 있습니다. 경남 창원시 가포지구 A2블럭 아파트인데 총 402가구 중에 237가구가 미분양됐어요. 한 채 팔아오면 250만원 준다고 하고요. 수도권에서는 경기 양주 옥정신도시 A4-1블럭 아파트가 총 1409가구 대단지인데 85%나 미분양돼서 여기에도 300만원 현상금 내걸었습니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상가도 진짜 문제에요. 요즘 단지마다 입주민들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들 들어오라고 저층부에 상가 점포를 많이 지어두잖아요. 그런데 아파트가 입주를 다 마쳤는데도 이 상가들이 안 팔리고 텅 비어있어서 빨리 해소할 필요가 있거든요. 올해 4월에 세종시 해들마을5단지가 단지 내 미분양상가 4개 털기 위해서 분양유치금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공고를 냈어요.
아파트는 비교적 면적이 균일한데 단지 내 상가는 위치에 따라서 크기가 제각각이잖아요. 그래서 분양가 차이가 많이 나는 만큼 분양유치금도 천차만별입니다. 예를 들어서 3억5000만원짜리 17평 상가를 팔아오면 280만원밖에 못받는데요, 11억5100만원에 분양하는 67평 큰 상가를 팔면 690만원이나 준다고 해요. 이 외에도 LH는 경기 시흥 장현지구·은계지구, 평택시 고덕신도시, 판교 창조경제밸리 등에서 상가 분양유치금 마케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양유치금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미분양이던 아파트랑 상가가 갑자기 불티나게 팔리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일단 지금 부동산 시장 상황이 안좋고 금리까지 높으니까요. 그래도 수수료 부수입을 노리고 계약자를 구해오려는 공인중개사나 LH 입주민분들 움직임이 좀 생긴다고 하니까, 세금으로 지어둔 텅 빈 LH 부동산들이 하루라도 빨리 주인을 찾아서 잘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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