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5.02 07:34
[땅집고] 서울 지하철 수인분당선 구룡역 3번 출구에서 불과 30m 거리에 들어선 ‘대치 푸르지오발라드’. 올해 1월 말 지어진 신축 도시형생활주택이지만, 준공 100일도 안 돼서 건물이 통째로 공매 시장에 나왔습니다. 건물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과 현수막에는 입주 환영이 아닌 공매 진행 중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습니다. 강남권에서도 시행사가 PF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이 단지의 3.3㎡당 분양가는 약 7000만원입니다. 강남에서도 비싸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전용면적 35㎡~112㎡의 분양가는 최소 11억원부터입니다. 16개 타입 중 가장 비싼 펜트하우스의 경우 46억9200만원입니다.
■ ‘꼼수 분양’ 하려다가 건물 통째로 떨이 판매할 처지
높은 분양가를 받으려고 후분양을 택했다가, 침체된 부동산 시장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결국 약 80가구 중 한 채도 주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일부 가 분양했지만, 이마저도 다 취소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강남구 개포동 176-2에 위치한 대치푸르지오발라드는 지하 2층∼지상 12층, 총 78가구 규모로 지어진 도시형생활주택입니다. 시공사는 대우건설 자회사 대우에스티입니다.
이 단지는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온비드 시스템에 공매 물건으로 올라왔습니다. 공매는 법원 경매와 비슷한 절차로, 시행사가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이후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했을 때 바로 공매에 부치는 제도입니다. 1회차 공매에서 78개 호실이 모두 판매되면 대주단은 총 1868억원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만약 8회차까지 유찰하면 이중 절반인 970억원만 회수합니다. 8회차 기준 3.3㎡당 평균 가격은 약 5500만원입니다.
강남구 개포동 이춘란공인중개사사무소의 이춘란 대표는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던 2021년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받았던 당시에는 ‘위치가 좋아서 무난하게 분양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면서도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급격하게 침체되면서 미분양이 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어 “게다가 사업 도중에 건축비가 많이 올라서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그 단지를 사는 것보다 다른 매력적인 투자처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 거듭된 유찰 불가피…8회차 가도 새 주인 만나기 어려울 것
그러나 대주단의 차입금 회수 마지노선인 8회차에서도 주인 찾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미 공매시장에서는 반값에도 안 팔리는 물건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게다가 ‘대치푸르지오발라드’의 경우 새 주인이 이 건물을 다시 분양 시장에 내놓는 것 외에는 뾰족한 자금 회수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 새 주인 찾기가 더욱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대우건설과 이스턴투자개발이 각각 40%씩 투자해 만든 시행사는 파산했습니다.
강남 역세권 도시형생활주택 흥행 실패 원인으로는 고분양가와 더불어 아파트 대비 투자 가치가 떨어진다는 점이 꼽힙니다. 즉 값이 싸지 않는 도시형생활주택은 경쟁력이 없다는 겁니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 받지 않아 분양가가 수요자에게 부담스러운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소형주택이 많다보니 꺼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임대차 수요를 노리는 ‘대치푸르지오발라드’와 같은 소형 주택은 일반 아파트보다 금리 인상 영향이 큽니다.
투자자들이 대출금을 활용해 주택을 분양받은 뒤 세입자를 들이면서 잔금을 치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투자 상품의 경우, 금리가 낮을 때면 분양성적도 좋고 세입자 구하기도 어렵지 않지만 고금리 시기에는 전세 금리도 올라 세입자를 찾기가 어려워 잔금 납부도 쉽지 않습니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0년 하반기 개포동에서 3.3㎡(1평) 당 5000만원에 분양한 28가구 규모 ‘개포 자이르네’는 완판했습니다.
■ 전문가 “비싼 땅도 경기 침체로 사업성 하락…회복 어려워”
전문가들은 개발업자들이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 비싼 부지를 매입해서 분양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는데, 금리와 건설비가 오르면서 높은 분양대금을 부담할 투자자를 구할 길이 없는 현실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업성이 떨어지면 브릿지론에서 본PF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 처럼, 같은 이유로 인해 본PF의 다음 단계이자 종착지인 분양 완료까지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정부가 사업성이 낮은 사업장을 NPL(부실채권)로 처리하라는 발표를 한 것처럼, 현재로선 이것이 최선”이라며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 않은 사업장 역시 용적률을 올려서 분양금을 더 높게 받는 것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어 “공사비 급등·경기 침체 등이 맞물린 영향으로, 앞으로 2-3년 간은 비슷한 일이 종종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 호황기 때 붐이 일었던 오피스텔, 소형 주택같은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선 고금리로 인해 그야말로 ‘수요 실종’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임대차 수요는 물론, 분양 수요까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미국이 올 하반기 금리 인하를 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본격적인 금리 인하 소식이 들리기 전까지는 이런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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