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4.26 07:30
[땅집고] 이달 25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 민자역사. 경의중앙선 철도가 지나 이른바 신촌기차역으로 불리는 최고 6층 높이 건물로 동쪽으로는 이화여대, 서쪽으로는 연세대를 끼고 있다. 하지만 대학가 한복판 입지인데도 지난 10년 넘게 지상층 상가 점포 1400여개가 불 꺼진 채로 텅 비어 있어 ‘유령 건물’로 악명 높았다.
하지만 이날은 신촌 민자역사 건물에 제법 활기가 돌았다. 장기간 공실로 방치됐던 2~4층에 불이 환히 켜진 채 사람들이 오가고,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는 작업자들이 드나들면서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나는 것. 점심시간인 12시쯤에는 ‘SM경남기업’이라는 빨간 로고가 새겨진 짙은 남색 점퍼를 입은 직원들이 하나 둘 건물을 빠져나와 인근 식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원래 대학생 손님 위주였던 ‘김밥천국’이나 ‘고냉지 김치찌개’ 등 식당마다 직원들이 들어차면서 만석을 이루고, 자리가 없어 줄을 서는 모습까지 보였다.
2012년 이후 입점한 점포가 한 곳도 없어 사실상 폐점 수준이었던 신촌 민자역사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 이 건물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SM그룹(삼라마이다스) 계열사들이 올해 4월부터 사무실을 기존 강남·당산 사옥에서 신촌 민자역사로 옮기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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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창립한 SM그룹은 지난해 기준 재계 25위 기업이다. 창업자인 우오현 회장이다. 그룹 내 계열사는 크게 건설·해운·제조·레저·미디어서비스 5개 부문으로 나뉜다. 이 중 신촌 민자역사에는 SM상선·SM스틸 등과 해운부문인 SM대한해운·SM대한상선 등 계열사가 여럿 입주할 계획이다.
SM그룹 관계자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SM그룹 본부와 건설·해운부문 계열사들이 신촌 민자역사 2~4층을 사무실을 쓰기로 했다. 총 근무 인력을 합하면 수백명 규모”라며 “현재 계열사마다 순차적으로 입주하고 있는데 사무실 구색을 갖추는 내부 리모델링도 함께 진행하고 있어, 오는 4월 말이면 입주가 완료될 것”이라고 했다.
신촌 민자역사는 지하 2층~지상 6층, 연면적 3만여㎡ 규모인 대형 복합 쇼핑몰로 2006년 준공했다. 동대문을 국내 패션 중심지로 만들었던 의류쇼핑몰 ‘밀리오레’를 운영하는 성창F&D가 2004년 민자역사인 신촌역을 소유하고 있는 신촌역사㈜로부터 30년 임대사업권을 따낸 뒤, 총 1200억원을 들여 건물 신축 및 분양에 나섰다. 명문대학을 낀 신촌 중심지에 들어서는 만큼 분양 당시 랜드마크 상가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1.2평 정도 되는 상가 점포 한 칸당 분양가가 위치에 따라 5000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분양 과정에서 소송전이 불거진 것이 발목을 잡았다. 성창F&D는 분양 당시 “신촌기차역이 경의선 복선화 사업 구간에 포함돼 열차가 하루 5~10분 간격으로 총 288회 드나들면서 상가가 ‘분수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광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열차 정차 횟수가 시간당 1회에 불과했다. 결국 2007년 수분양자 124명이 분양대금 반환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5년 만인 2012년 성창F&D가 총 188억원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면서 수분양자 손을 들어줬다.
소송전에 휘말리다보니 건물이 초기 활성화 기회를 놓쳤다. 준공 3년 만인 2009년지도 공실률이 80%에 달할 정도였다. 다행히 지상층 총 6개 중 5~6층에는 영화관 메가박스가 입점해 운영 중이지만, 1~4층 상가는 2012년부터 10년 넘게 사실상 폐점 상태다. 공실이 장기화하면서 불 꺼진 채로 텅 비어있는 신촌 민자역사가 지역 흉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020년 SM그룹이 이 건물 운영권을 200억원에 손에 넣은 뒤 활성화를 시도했다. 당초 이 곳에 각종 식음료 매장과 쇼핑몰을 입점시켜 상가를 살릴 계획을 세웠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불발됐다. 2021년에는 서대문구와 함께 건물을 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해 주민편의시설을 갖춘 복합형 청년주택으로 짓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역시 무산됐다.
결국 올해 SM그룹은 신촌 민자역사 2~4층을 그룹본부 및 건설·해운부문 계열사 사옥으로 직접 쓰면서 고질적 공실 문제를 자체 해결하는 결론을 내렸다. 남은 1층 용도는 아직 미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SM그룹이 확보한 이 건물 운영권은 2036년까지다.
신촌 일대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몇년 전 부동산 상승기를 맞아 신촌 민자역사 근처에 오피스텔이 줄줄이 생겨났는데, 건물마다 저층 상가 공실 문제가 심각했다”며 “이달부터 SM그룹 인력이 입주해 자리잡으면 이 일대 상권에 다시 활력이 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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