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4.19 10:43
[땅집고] 최근에 지어진 듯한 아파트 신축 단지 바로 아래 쪽으로 흉물처럼 변한 상가 건물이 눈에 띕니다. 건물 출입구는 자물쇠로 닫혀 있고, 상가 주변엔 잡초만 무성합니다. 낡은 고물 더미도 곳곳에 방치돼 있습니다.
건물 외벽엔 출입금지와 함께 최근 경매 낙찰 결과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습니다. 아파트 상가와 깔끔한 외관의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이곳은 최근 신흥 주거타운으로 거듭난 서울 강동구 고덕지구에 위치한 ‘고덕자이’입니다.
마치 외딴 섬처럼 방치된 이 건물은 2021년 고덕주공아파트 6단지 재건축 사업을 통해 지은 ‘고덕자이’ 단지 내 상가입니다.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던 2010년 상가 소유주들은 통합 재건축을 반대했는데요. 조합 측의 거듭된 협상 요구에도 상가 측이 무반응으로 일관하면서 결국 상가를 제외한 채로 아파트만 새로 짓게 됐습니다.
최근 이 상가는 채권자인 대부업체가 경매를 통해 70억원에 낙찰 받았습니다. 초기 감정가는 126억원에 달했는데 세 차례 유찰되면서 50억원이 넘게 떨어졌습니다. 결국 채권 손실을 우려한 채권자가 직접 매입에 나섰습니다.
재건축 사업 추진 당시 아파트 소유주와 조합 소유주는 상가 위치를 두고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상가 재건축 당시) 단지 안쪽으로 상가 자리를 옮기는 설계안에 대해 반대하는 소유주들이 있었다”면서 “결국 반대로 인해 4년이나 재건축이 밀리고 자본까지 묶이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제 와서 인건비, 자잿값이 오른 상황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의견을 냈습니다.
재건축 사업에서 빠진 상가가 흉물처럼 덩그러니 방치되면서 주민들의 원성도 큽니다.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을 뿐더러 단지에 끼치는 피해가 크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신혼부부와 초·중·고등학생들이 많은 지역인데 주거 환경에도 악영향을 크게 끼친다는 겁니다.
인근 주민 사이에서는 상가 개발이 빠르게 진행돼 병원, 학원, 마트 등 생활 시설이 얼른 입점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이날 만난 고덕 자이 입주민은 “상가가 방치되면서 고양이나 쥐가 단지로 넘어오는 경우가 잦다”면서 “어서 개발이 진행돼 학원이나 병원, 마트 같은 생활 편의시설이 들어섰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단지 내 상가가 있는 재건축 단지에서는 이처럼 아파트 소유주와 상가 소유주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재건축 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동별 구분소유주 과반수와 전체 구분 소유주 4분의 3, 토지면적 4분의 3이상이 동의를 해야합니다. 상가동에서도 구분 소유주 과반수가 찬성을 해야하는데 이들이 반대하면 조합 설립조차 어려워집니다. 이런 이유로 상가 소유주의 경우 비교적 적은 지분을 쥐고도 조합원 자격으로 사업 전체를 흔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가 소유주들과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 조합은 대체로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취합니다. 상가 소유주들의 요구사항이 무리하다고 판단이 들어도 통합 재건축을 위해 수용하거나, 상가를 뺀 채로 분리 재건축을 진행합니다.
고덕주공6단지 조합은 법원에 토지 분할 소송을 내면서 후자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1년 8월 아파트 재건축 부지와 상가 부지를 분할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상가 재건축은 진행하지 못했지만 과감한 결단으로 아파트 단지 건축 속도를 올릴 수 있었던 겁니다.
고덕 자이처럼 상가를 제외하고 분리 재건축을 진행한 단지들은 많습니다. 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맨션을 재건축한 ‘래미안 솔베뉴’ 또한 2019년 입주를 시작한 신축 단지입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지분율을 두고 갈등을 매듭짓지 못하면서 함께 재건축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는 최근 상가 재건축 사업의 수익률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점을 두고 향후 고덕 자이 상가 재건축 사업에 대한 우려를 드러냅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요즘은 자잿값이나 인건비가 너무 높다보니 상가 재건축 사업 수익률을 높이는 게 쉽지 않다”면서 “당시에 통합 재건축을 했다면 더 유리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흔히 ‘속도전’이라고도 불리는 재건축 사업에서 소유주간 갈등으로 인해 제동이 걸리면 손실이 큽니다. 현재 고덕자이 상가는 소유주들끼리 개발 계획을 두고 의견 조율 단계를 또 한 번 거쳐야 합니다. 흉물로 방치된 상가가 고덕자이 입주민과 인근 주민들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어떻게 탈바꿈될 지 주목됩니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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