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4.10 07:30
[땅집고] 합계 출산율이 0.7명대로 떨어지면서 한국이 흑사병이 창궐했던 유럽 중세시대보다 더 빨리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한국 소멸 하나'라는 칼럼까지 실을 정도이다. 한국이 소멸한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면 주택수요도 급감하고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럼 유주택자는 지금 당장 집을 팔고 무주택자는 집을 영원히 사지 말아야 할까? 일문일답 형식으로 저출산 고령화 집값 폭락론의 허와 실을 알아본다.
-인구 감소하면 집값 폭락하는 것 아닌가
“만일 저출산에 가속도가 붙어 인구 3000만 명 시대가 오면 당연히 집 살 사람이 줄어들어 집값 폭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주장에 바탕을 둔 ‘부동산 대폭락 시대’와 같은 책들이 한때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책이 나온 시점이 2008년인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집값이 떨어지는 시기에 출간돼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 저출산 고령화 집값 폭락론을 신앙처럼 믿고 집을 팔았던 사람도 있었지만,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
-저출산 고령화 집값 폭락론은 일본이 원조가 아닌가?
“일본은 1990년대이후 20년 동안 집값이 폭락했다. 집값이 3분의 1 토막 난 곳도 많다. 일본 집값이 장기적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놓고 일본에서 논쟁이 벌어졌는데, 저출산 고령화가 집값 폭락의 원인이라는 이론이 큰 인기를 끌었다.
도쿄대 명예교수인 니시무라 키오히코 전 일본은행 부총재는 일본의 주택가격 장기 침체는 저출산 고령화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은행, 일본 정부의 정책 실패로 집값의 장기침체가 지속된 것이 아니라 저출산 고령화 탓이라고 했다. 그는 한발 더나아가 한국, 중국, 미국도 머지 않아 저출산 고령화로 집값이 급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니시무라는 한국을 방문해서 이런 주장을 폈고 폭락론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요즘 일본 집값은 어떤가?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 집값 폭락론은 사실상 일본에서도 폐기된 이론이다. 2012년 12월 취임한 아베 총리가 돈 풀어서 경기를 부양시키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펴면서 도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꾸준하게 오르고 있다. 특히 코로나이후 지속적으로 집값이 오르고 있다.저출산 고령화가 진전돼 인구가 줄고 있는데도 집값이 오르고 있다. 뭘로 설명해야 할까.”
-그럼 저출산 고령화 집값 폭락론은 엉터리 이론인가?
“일본 이외의 나라로 눈을 돌려보면 저출산 고령화 집값 폭락론이 비현실적 이론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서구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저출산 고령화를 경험했다.
그런데 일본처럼 장기적으로 집값이 침체된 나라는 없다. 보통 집값이 급등했다가 폭락하는 사례는 많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주택공급이 감소하고 경제가 회복되면서 집값이 오르는 사이클을 반복했다.”
- 왜 일본만 20년간 집값이 폭락했는가
“정부의 정책 실패 탓이다. 일본 집값 장기 하락의 근본 원인은 인구감소가 아니다.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물가의 지속적 하락, 즉 디플레이션이 원인이다.
일본은 집값만 폭락한 것이 아니다. 디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주가도 집값 하락폭보다 더 크게 떨어졌다. 일본 나케이지수는 1989년 12월 3만 8915까지 올랐다가 2009년 3월에 7054까지 폭락했다. 최근 34년만에 전고점을 돌파했다. 흔히 부동산과 주식은 대체 투자수단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경제가 뒷걸음질 치면서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모두 폭락했다. 한국경제가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현금을 보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 수 있다.”
-일본 외 다른 나라는?
“인구가 줄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취하기도 한다. 독일의 경우, 인구가 8500만명대에서 2005년에 8000만명으로 급감했다. 나라 망한다는이야기가 나왔고 독일 정부는 이민확대 등을 통해 인구를 늘렸다. 경제도 회복되면서 집값도 급등했다.
고령화 저출산의 대표적인 나라가 캐나다와 뉴질랜드이다. 그런데도 인구는 늘었고 장기적으로 집값이 계속 우상향했다. 이민을 통해서 인구를 늘렸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가 급감하는데 이를 방치하는 국가는 집값이 아니라 경제가 먼저 망한다.”
-아베총리 집권이후 도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올랐다. 지방은 어떤가?
“돈 찍어서 저금리 엔저 유도하는 정책이 아베노믹스이다. 아베노믹스가 아베 총리만의 특별한 정책은 아니다. 미국이 금융위기로 경기불황에 빠지면 언제나 동원하는 방법이 돈 풀기이다. 일본이 유동성 공급을 통해 엔저를 유도하면서 수출경쟁력이 회복됐다. 엔저로 일본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해지자 한국 등 외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 들었다. 관광객들이 도쿄권은 물론 지방 중소도시까지 휩쓸기 시작하면서 오키나와, 홋카이도의 산골 마을의 집값도 급등했다. 고령화 저출산으로 지방도시의 집값이 대도시 보다 훨씬 큰 타격을 받지만, 집값 폭락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금리도 집값을 결정하는 변수 아닌가.
“집값을 결정하는 요인은 인구도 있고 금리도 있다. 좀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변수는 경제 성장률이다. 일본의 경우, 경기침체기에 제로금리 정책을 폈지만 경기회복도 집값 회복도 없었다. 아베 총리는 제로 금리를 넘어 좀더 과감한 돈풀기를 통해서 경기를 되살렸다.
코로나를 경험하면서 세계 각국이 돈풀기 저금리 정책을 공통적으로 폈다. 부작용으로 집값이 많이 올랐지만, 유독 집값이 약세를 보였던 나라가 스페인과 이탈리아이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관광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관광산업이 몰락하면서 경제가 뒷걸음질쳤다. 암울한 경제가 집값의 발목을 잡았다. 과거의 일본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금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이다.”
/차학봉 땅집고 기자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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