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3.21 09:50 | 수정 : 2024.03.21 10:31
[땅집고] 지난 18일 저녁 6시 지하철 신당역 앞. 1번 출구를 나온 젊은 사람들이 이면도로 골목으로 줄줄이 향했다. 간판만 봐선 어떤 가게인 지 알기 어려운 상가나 실내 포차는 이른 저녁 시간임에도 북적였다.
이면도로 초입에 있는 한 칵테일바는 무당이 많았던 신당동 특성의 인테리어를 차용해 인기를 끌고 있다. 가게 오른쪽 고양이 석상이 있는 곳이 입구로, 손님들은 이곳을 통해 드나든다. 외관만 보면 점집이지만 실내엔 위스키병이 줄지어 서있다. 점집과, 가구점, 쌀가게가 몰린 신당동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처럼 힙하다고해서 힙당동으로 불린다. 주말엔 한 시간 이상 대기해야 입장이 가능한 곳도 생겨났다. 한 음식점 상인은 “젊은 사장님들이 신당동에 가게를 열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주말에 손님이 가장 많을 땐 60~70팀도 기다린다”고 했다.
신당동은 원래 1950~60년대 서울 최대의 양곡 시장이 있던 싸전거리였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배달원으로 일했던 쌀가게 ‘복흥상회’가 있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바로 옆에는 서울 중앙시장도 자리잡고 있다.
60년이 넘은 쌀창고를 개조한 카페가 2016년부터 들어서면서 이색적인 술집과 식당 등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양곡상회들과 현대감성을 불러넣은 상가가 조화를 이루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싸전거리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신당동이 ‘힙당동’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성수동 등 타 상권보다 저렴한 임대료, 지하철 2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입지 등이 꼽힌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유동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어 상권성장이 기대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서울 3대 시장'으로 꼽혔던 신당동 터줏대감 중앙시장도 '다양성'을 앞세워 젊은층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최근 일본, 베트남 등 여러 국적의 음식을 파는 식당을 비롯해 먹거리, 구경거리가 가득하다. 과거 전통시장을 찾는 어르신들과 외국인, 젊은층이 섞여 있다.
한 토지거래 플랫폼에 따르면, 신당동이 위치한 2023년도 중구의 토지 평단가는 전년 대비 1억1361만원에서 1억1664만원으로 올랐다. 2020년 이후 4년 연속 가격이 올랐다. 같은 기간 강남구·서초구·용산구는 평단가가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상승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대 상가 자리엔 수천만원의 권리금이 붙었다. 권리금은 적어도 5000만원, 많게는 1억원 이상이다. 임대료도 4~5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서울시에 따르면 힙당동이 속한 서울 중구 황학동 일대 지난해 4분기 평균 임대료는 3.3㎡ 18만1122원으로 2년 전 임대료(3.3㎡당 12만1631원)와 비교해 50% 가까이 상승했다.
임대료가 빠르게 올랐지만 들어오겠다는 세입자들은 줄을 서면서 매물은 ‘품귀’ 상태다. 중개사들은 매물을 찾아달라는 요구는 많고, 임차인 대기자도 많지만 물건이 없다고 전했다. 신당동 T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젊은 사람이 와서 ‘낡으면 낡을수록 좋다’고, 그래야 임대료도 저렴하고 컨셉에 맞는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며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이 됐고 가게 나오면 연락 달라는 임차인들이 많다”고 했다.
중심 상권으로 성장한 성수동과는 달리 신당동 일대는 발전이 더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과거 공장지대로 매장의 규모가 컸던 성수동과는 달리 신당동 상가들이 워낙 작고 노후화돼서 개발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민들과 상인들 사이에선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젠트리피케이션 초입에 접어들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월세도 오르고 권리금도 많이 붙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해 세입자들이 감당하기 힘들어 다른 곳으로 쫓겨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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