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3.19 10:19 | 수정 : 2024.03.19 14:15
[공사비 분쟁 집중진단 ②] 적정공사비 부족으로 1000억 이상 대규모 국책사업도 멈췄다.
[땅집고] 지난 6일 대보건설은 세종시 행복도시 4-2 생활권 공동캠퍼스 건설공사 18공구 현장 공사를 중단했다. LH와 협의를 거쳐 18일부터 공사 재개에 나섰지만, 업계에선 작년 10월에 이어 두 차례나 공사가 중단됐던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땅집고] 지난 6일 대보건설은 세종시 행복도시 4-2 생활권 공동캠퍼스 건설공사 18공구 현장 공사를 중단했다. LH와 협의를 거쳐 18일부터 공사 재개에 나섰지만, 업계에선 작년 10월에 이어 두 차례나 공사가 중단됐던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보건설은 2022년 연면적 5만8111㎡ 규모로 대학 입주 공간 및 교육시설 총 9개 동을 건설하는 계약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체결했다. 대보건설은 발주처인 LH가 4개 동의 준공을 반년쯤 앞당겨달라고 요구해 자체적으로 추가 공사비를 투입하며 공사를 진행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레미콘 공급 차질,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 화물연대 파업 등 복합적인 사유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며 공사 중단 이유를 밝혔다.
최근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사업 주체 간 갈등이 공공기관이 발주한 건설 현장까지도 퍼져가는 모습이다. 민간사업과 달리 공공사업은 물가가 오를 때 에스컬레이션 조항(물가연동 조항)이 적용돼 사업성 악화를 방지하는 시스템이 있지만, 정부의 경직된 예산 평가로 물가상승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탓에 최근 GTX 등을 포함한 대규모 국책 사업들이 줄줄이 유찰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 국책 사업도 줄줄이 유찰…“이대로는 GTX B~F노선, 개통 못할 수도”
최근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GTX-A 환승센터) 사업(약 3170억원), 서울 대심도 빗물 배수 터널(약 9936억원), 일산 킨텍스 제3전시장(약6169억원) 등 1000억원 이상 책정된 대규모 공공사업 8건이 유찰됐다.
이중 영동대로 지하공간 개발 사업의 경우, 공사가 완료되면 GTX-A와 C노선, 위례신사선 등 핵심 교통망들이 이곳을 지날 수 있게 돼 수도권 주민들의 관심이 높은데, 공사비 급등 여파로 개통 지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혹시라도 개발 사업이 중단되면 GTX 철도가 제때 개통해도 강남을 통과할 수 없어 반쪽짜리에 그치게 된다.
서울시는 2022년부터 이 공사의 시공사를 구하기 위해 수차례 입찰을 진행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공모에서도 지난번 공사비(2928억원)보다 200억원 넘게 증액했지만, 참여한 기업이 없었다.
공공 공사에는 물가 상승을 공사비에 반영해주는 에스컬레이션 조항이 적용된다. 계약한 지 60일이 넘은 때에 물가 변동률이 5% 이상일 경우, 기존 계약 금액을 증감하는 규정으로 국가·지방계약법에 명시되어 있다.
공공사업은 국민 세금으로 추진해 최대한 기업 이윤은 적게 배정하고, 이마저도 기획재정부 심의를 거쳐야 한다.
건설 비용이 지나치게 상승하는 지금 같은 국면에선 시공사가 원하는 만큼 공사비 증액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 주장이다.
증액분에 대한 심의를 받을 때도 관행적으로 예산이 삭감되는 일도 부지기수란 이야기가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에스컬레이션 조항이 적용되는 사업지라도 공사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며 “공공공사는 세금을 쓰기 때문에 예산이 정해져 있고, 아무리 오른 물가를 반영하더라도 발주 금액을 무한정 높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보건설의 세종 사업지 역시 공공 공사로 물가 상승분이 반영되는 사업지였지만, 공사비 상승이 가파른데 비해 LH의 증액분 심사 과정 절차가 다소 길어지면서 시공사가 버티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보건설 관계자는 공사중단 당시 “자재 가격 상승 요인을 두고 협의하기로 했으나 큰 진전이 없다”며 “공사비가 약 750억원인 이 현장에서 300억원 이상의 손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LH 관계자는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 요청을 해와서 절차를 거쳐 증액을 검토하던 중 공사가 중단됐다”며 “시공사와 원만하게 협의해 공사를 조속히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앞으로 계획된 공공 공사들의 건설 비용에 물가 상승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면 중요 사업도 무산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대한건설협회는 지난 1월 “자재비와 인건비 등 공사 원가는 급등했지만, 공공 공사의 발주 금액이 적정하게 반영되고 있지 않아 유찰이 지속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 중인 교통 시설 등 핵심 사업이 줄줄이 유찰해 개통이 지연되고, 품질도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정부, 공사비 상승분 인정해야…대규모 사업 원점 재검토 필요”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이 발표한 건설공사비지수 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 건설 공사비 지수는 154로 잠정 집계됐는데, 2020년 1월(122)과 비교해 26% 상승했다. 2017년부터 2020년 같은 기간엔 13% 수준으로 올라 최근 들어 가파른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재료, 노무, 장비 등 직접 공사비의 가격변동을 측정하는 지수다.
전문가들은 공사비가 더 이상 낮아지기 어려운 만큼, 현실 물가 상승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세금을 무한정 투입할 수 없기 때문에 남아있는 대형 공공 개발의 사업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원철 한양대학교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계약서를 뜯어고치거나, 건설사와의 갈등을 중재하는 방안만으로 공사비 급등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며 “부동산 호황기에 정부 또는 정치권에서 추진한 대형 공공 개발 프로젝트들의 사업성이 현시점에선 크게 저하된 상황이기 때문에 총선이 지나면 대규모 개발 계획들 사업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불요불급한 사업은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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