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3.14 13:44 | 수정 : 2024.03.14 20:03
[땅집고] 정부가 이행강제금 부과를 올해 하반기로 유예한 가운데, 생활형 숙박시설(생숙)의 준주택 인정을 요구하는 국내 레지던스 업계가 둘로 쪼개졌다. 주거권 보장이라는 목표가 같지만, 준공여부에 따라 입장이 달라서다.
이처럼 이해당사자의 목소리가 분산되면 오피스텔 용도 변경, 준주택 인정 모두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살지도, 팔지도, 전월세 놓기도 어려운 현재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는 말이다.
■ 수분양자 “생숙 준주택 인정해달라…탁상 행정 그만”
최근 레지던스 업계에선 준주택 인정이 화두다. 준주택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수천 명이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라서다. 올 8월 준공 예정인 서울 강서구 마곡동 ‘롯데캐슬 르웨스트’가 대표적.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전용 84㎡ 기준 분양가가 16억 원이 넘었으나, 6049대 1(전용면적 11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단지는 이행강제금 규제가 등장하면서 애물단지가 됐다. 1년 넘게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이 속출하는 실정이다. 전용면적 63㎡ 매물은 분양가보다 1억 원 이상 저렴하게 나와 있다. 상황이 이러하자 분양 당시에는 분양가의 70~80% 가량 대출을 제공하겠다던 은행권도 대출 한도를 분양가의 절반 아래로 확 줄었다.
송민경 롯데캐슬르웨스트 수분양자협회장은 “시행사가 ‘주거로 가능하다’고 해서 고액의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계약했다”며 “계약자 99%가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원하지만 미준공 단지라서 1%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준주택 인정 외에는 주거권을 인정받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준공 이전 생숙은 오피스텔 용도변경을 추진하려면 계약자 100%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단지는 롯데건설이 추진하는 마곡 마이스 사업과도 연관이 깊다. 이 단지 분양대금은 1조4000억원 규모로, 마곡 마이스(MICE) 사업의 총 사업비(2조5000억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계약자들이 잔금 납부를 제때 하지 못하면 조 단위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란이 일어난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에 계약자들은 최근 국회 앞에서 준주택 인정을 위한 단체 행동을 개시했다. 지난 9일 한국레지던스연합회와 임대인연합회, 오피스텔연합회가 개최한 ‘비(非) 아파트 정상화를 촉구 집회’에 참여한 2500여명(주최 측 추산)은 “제발 내 집에서 살게 해주세요” “탁상 행정 이제 그만” 등의 구호를 외쳤다.
■ “이미 집으로 썼는데, 숙박업 등록이라니!”
‘전국레지던스연합회(전레연)’는 2021년 5월 건축법 시행령 개정으로 인해 생긴 생숙의 숙박업 신고 의무화를 원상복구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준주택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올 3월 대통령실 앞에서 단체 행동을 준비 중이다.
전레연은 ‘힐스테이트 창원 센트럴’ 등 미준공 단지도 포함돼 있으나, 이미 지어진 생숙을 주축으로 한다. 이들 중 전남 여수 등 일부 지역 단지는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추진 중이다. 준공 단지는 개별등기가 된 상태로, 용도변경을 위해 동의율 100%를 채울 필요가 없다. 실제로 일부 단지는 용도변경에 성공했다.
다만, 준공 단지에게도 용도변경은 쉽지 않다. 용도변경 허가권을 쥔 지자체들이 다른 기준을 내세우면서 생숙은 특혜를 누린다는 눈초리를 받아서다.
여수 웅천지구 ‘포레나 디 아일랜드’는 호실 당 1.48대 주차 공간을 갖추고도 주차장을 더 짓기 위해 땅을 매입했다. 여수시가 2021년 8월 기존 70㎡당 1대이던 오피스텔 주차 대수 기준을 57㎡당 1대로 바꿔서다. 100호실 당 갖춰야 하는 주차 대수가 212칸에서 261개로 늘었다.
☞ 관련 기사: "주차 조례 완화" vs. "특혜"…'생숙 대란'에 갈라진 여수
노진옥 전국레지던스연합회장은 “생숙 규제가 생기기 전처럼 생숙 수분양자가 주거용이나 숙박용도를 선택해서 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10년 가까이 주거시설로 쓰고 있었는데 정부의 소급 규제로 인해 주거권이 불안정해졌다”고 말했다.
■ 전문가 “오피스텔이든 생숙이든, 시장에서 소화해야”
업계가 둘로 쪼개지면서 시장에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한 생숙 수분양자는 “신축 아파트라고 생각하고 생숙에 들어왔는데 규제가 생기면서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라면서도 “준주택 인정과 오피스텔 용도변경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아파트 미분양과 정비 사업 중단,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 등 여러 과제가 쌓인 데다, 총선이 머지않은 만큼 정부가 새로운 대책을 낼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10만 호실 이상 공급된 생숙이 도시건축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만, 더 급한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생숙이 PF 위기 진원지라는 말이 나오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올 하반기 이행강제금 부과 시점 전까지 어떠한 대책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민 동의율 100%, 장기 숙박업 등록 후 거주하는 편법 행위 단속 등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세사기처럼 실질적인 재산상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한 대책 정도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역시 “정부가 또 대책을 내놓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이어 “계약자들이 지자체나 반대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들과 타협해 오피스텔 용도변경을 최대한 추진해야 한다”며 “어떤 시설로 쓰이든 간에 생숙을 시장에서 소화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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