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2.21 15:47 | 수정 : 2024.02.21 16:00
[땅집고] 윤석열 대통령이 자연 보존 가치가 높은 환경영향평가 1·2급지도 그린벨트에서 해제해 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그린벨트 해제는 지방으로 제한된다. 1971년 제도 도입 이후 50년 넘게 ‘금단의 땅’으로 통했던 그린벨트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지방에 첨단 산업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지방소멸을 막겠다는 취지다.
국무조정실과 국토교통부, 농림부 등 정부 관계부처는 21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울산에서 열린 13번째 민생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토지 이용규제 해소 및 지역경제 활력 제고 방안’을 공개했다.
이날 민생 토론회가 열린 울산은 정부에서 이차전지 특화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이다. 인근 포항에는 이차전지 관련 대표 기업인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의 공장도 있다. 하지만 전체 행정구역의 25.4%에 달하는 269㎢가 그린벨트로 지정돼있고, 그 중 개발이 불가능한 환경평가 1·2등급의 비율이 81.2%에 달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기존에는 지역별로 해제할 수 있는 그린벨트 총량이 정해져있어 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산업을 유치하려 해도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는 한도가 남아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었다. 지방에서 국가 주도로 추진하는 사업은 총량 규제에 예외를 허용하고 있지만 지자체 주도 사업은 지금껏 예외를 적용받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 특화산업 육성 등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도 정부 심의를 거쳐 총량 규제 예외를 적용받을 수 있다.
지금껏 개발이 원천적으로 금지됐던 1·2등급 그린벨트도 정부나 지자체 주도로 국가 전략사업이나 지역 현안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해제하기로 했다. 현재 전국 그린벨트 중 79.6%가 1·2등급지다. 다만, 수도권 쏠림과 난개발을 막기 위해 지방만 허용하고, 1~2등급지를 해제하면 동일한 면적을 신규로 지정해야 한다
20년 간 경직적으로 운영돼온 환경등급 평가체계도 개선하기로 했다. 지금은 6개 환경평가 지표 중 한 개만 1·2등급이면 개발이 불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지역별 특성을 감안해 일부 지표의 등급 기준을 완화하거나 가중치를 주는 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과거 정부도 신도시나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제도 자체를 바꾼 것은 흔치않은 일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가 전국 단위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단독주택과 일부 상업시설 건설을 허용해준 이래 20여년 만에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그린벨트 관련 규제 완화는 법 개정이 필요없어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다. 국토부 등 관계부처는 즉각 관련 규정 개정에 착수해 상반기 중 행정적 준비를 마치고 올해 중 지역별 전략사업을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계획대로 추진되면 내년 중 지역별 그린벨트 해제 절차를 거쳐 기반시설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각종 토지이용규제도 대폭 손질하기로 했다. 토지이용규제란 환경 보호, 문화재 보존, 난개발·투기 방지 등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에서 수시로 도입하는 구역 단위 규제다. 농업보호구역, 산림보호구역, 특정용도제한지구 등 현재 시행중인 규제만 336개에 달한다. 기존 규제는 놔둔 채 정권 또는 지자체장이 바뀌거나 특별법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규제를 추가하다보니 누더기가 됐다.
토지이용규제를 적용받게 되면 개발이나 건축 행위에 제약이 생기는데다 여러 규제가 중복 적용되는 경우도 많아 지자체 담당자도 토지 소유주는 물론, 지자체도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국토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현행 모든 토지이용규제 적용지역에 일몰제를 적용해 5년 단위로 심사를 거쳐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고, 신규 규제는 금지하기로 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대부분 없애는게 목표다. 다만 토지이용규제의 전면적 개편은 법 개정이 필요한데다 환경단체 반대도 예상돼 시행 여부나 시점은 불투명하다.
정부는 법 개정 없이 규제지역 토지주나 주민의 애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도 내놨다. 대도시 인근 난개발을 막기 위해 지정한 ‘계획관리지역’ 중 진입로나 주차공간 등 기반시설을 갖춘 곳에 한해 현행 40%인 건폐율(토지면적 대비 건축면적 비율)을 70%로 높여준다.
지금은 공장 준공 후 지역의 용도가 바뀌거나 법령이 개정되면서 증축이 금지되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는 강화된 규제가 적용되는 날로부터 10년 이내까지는 준공 시점의 건축 기준에 맞춰 증축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역 특산물을 생산 및 가공하는데 특화된 ‘생산관리지역’은 기존에는 음식점이 입점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상수원, 하천과 일정 수준 이상 떨어진 곳에 300㎡ 미만으로 휴게 음식점을 허용키로 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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