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2.08 07:30
[땅집고] “20년 넘게 폐건물이 있던 곳인데, 여기에 새 아파트가 들어왔네요? 정말 신기합니다!”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641번지. 3143가구 대단지 ‘래미안슈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1991년부터 자리를 지킨 누런 폐건물이 있었다. 주공 아파트로 가득했던 과천청사역 일대가 브랜드 대단지 신축 아파트로 바뀌면서 ‘준강남’ 별명을 얻은 20년동안 방치된 대형 건축물이다.
이 땅은 1980년대부터 도시계획시설에 따른 종합의료시설이 들어서기로 했던 곳이다. 당시 과천시는 대지 9202㎡(2783평)에 걸쳐 3차 의료기관을 짓는 계획을 세웠다. 최근 폐원을 결정한 인제대 서울백병원 대지면적이 3158㎡(955.3평)임을 감안하면, 꽤 규모가 큰 병원이 들어올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약 40년이 지난 현재 이 자리에는 종합병원 대신 아파트가 지어졌다. 바로 올 1월 입주한 ‘과천 수자인’이다. 과천시는 어쩌다 병원 대신 아파트를 지은 걸까.
과천시에 따르면 이 병원 이름은 ‘우정병원’이다. 1980년대 초반 시는 병상 500개를 갖춘 지역 대표 의료기관을 세울 계획이었다. 건폐율(49.1%), 용적률(296.17%)을 적용한 지하 5층~최고 12층 규모였다.
그러나 1991년 착공에 들어간 후 약 6년만인 1997년 8월, 공정률 60% 단계에서 시공사가 부도를 맞이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초대형 건물이 20년간 폐허처럼 방치된 이유다. 부도가 난 시공사는 ‘세모’다. 이 회사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이 세웠던 기업이다.
이후로도 이 땅에 병원이 들어올 기회는 있었다. 과천시에 따르면 우정병원 사업권은 1998년 12월 의료법인 우정병원에서 거붕의료재단으로 넘어갔다. 2000년과 2001년엔 각 기독교 의료복지재단, 거붕의료복지재단이라는 새 이름도 달았다.
그러나 이 폐건물은 저주에 걸린 것처럼 악재를 맞았다. 2001년 시는 이 땅에 다른 시설을 짓겠다며 경기도에 도시계획시설 폐지를 신청했지만, 경기도는 ‘과천에 종합의료시설이 없다’며 재검토 의견을 내렸다.
2003년에는 소유회사가 한차례 바뀌었으나, 새 주인마저 부도를 맞았다. 이 현장은 이듬해 경매에 부쳐졌는데 ‘경매에 부적합하다’며 기각 판정을 받았다.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동안 늘어난 것은 빚과 민원이었다. 공사 중단 이후 한동안 이 땅은 ‘민원 집합소’였다. 공사 중단 기간이 길어지면서 건물 노후화가 심해졌고, 경관을 저해한다는 민원이 줄을 이은 것이다.
시도 병원 유치를 위해 성균관대 의대(삼성병원)나 교통안전공단 교통병원 등과 협상을 진행했다. 다만, 복잡한 채무관계와 과한 공사비 등으로 인해 협상이 매번 결렬됐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 사업에는 무려 477억원 채무가 걸려 있었다. 토지 374억원, 건물 103억원 규모였다.
시는 결국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공사중단 장기방치건축물 정비 선도사업’을 통해 부지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 곳은 2015년 선도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2017년에는 건물 철거와 아파트 건립 계획이 나왔다.
시는 2017년부터 과천우정병원 정비사업 실무협의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재개발에 나섰다. 수차례 협상을 진행한 끝에 2018년 개발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울 수 있었다. 2018년부터 2019년 1월까지는 기존 건물도 철거했다.
그 결과, 현재 이 자리엔 병원 대신 최고 20층 규모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바로 올 1월 입주한 ‘과천 수자인’이다. 지하 3층~지상 20층, 4개 동, 174가구 규모의 단지다. 전용 59~84㎡ 로 이뤄졌다. 전용면적 59㎡ 분양가가 인근 시세의 절반 수준인 6억4400만 원에 불과한 반값아파트로 공급돼, 전 타입이 무난히 완판을 기록했다. 이 단지는 전매 제한 적용 단지로, 아직 매매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전용 59㎡ 전세 최저 호가는 7억5000만원이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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