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2.03 08:56
[땅집고] 분양 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분양가 상한제 주택에 대한 실거주 의무가 사실상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존에는 최초 입주가능일부터 의무가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최초 입주일로부터 3년 간’으로 유예될 전망이다. 법안이 구체화하지 않았지만, 분상제 주택을 구입한 수분양자들이 입주 시점에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를 수 있는 길이 열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업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최근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에 실거주 의무를 적용하는 시점을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가능일로부터 3년 이내’로 완화하는 방안을 여당 및 정부에 제안했다. 민주당은 2월 초 국토위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잇따라 열어 개정안을 의결한 뒤 2월 내 본회의 처리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조만간 국회 법 개정 통과가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청약 시장에서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구입)가 활성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분양대금을 온전히 마련할 능력도 없고, 직접 집에 거주할 것도 아닌 투자자들 때문에 실수요자들의 청약 기회가 사라지게 됐다는 반발이 만만찮다. 총선이 다가오자 야당이 기존 방침을 급히 바꾸는 무리수를 두면서 청약 시장 혼란이 더 가중된단 지적이다.
■ 규제지역서 전세금으로 잔금 마련 가능?…‘로또 청약’ 더 과열될 듯
실거주 의무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주택시장 투기 수요 유입을 막기 위해 만든 제도다. 공공택지나 집값 과열지역 등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에서 입주 가능일로부터 2~5년간 청약 당첨자가 실제 입주해야 한다는게 골자다. 현행법상 규제지역인 서울 강남·서초·송파 및 용산구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데, 이들 지역에 분양하는 아파트 수분양자들은 입주 시점부터 해당 주택에 곧장 입주해야 한다. 기간은 최장 5년이다.
지난해 기준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아파트는 총 66개 단지, 4만3786가구에 달한다. 업계에선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정부 공약사항인 만큼 이를 믿고 청약한 수분양자도 많다는 것이다. 당장 오는 2월 강동구 강일동에 600가구 규모 ‘e편한세상 강일 어반브릿지’가 입주하고, 강동구 ‘강동헤리티지자이’(1300가구)도 6월 입주할 예정인데,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인 1만2000가구 ‘올림픽파크포레온’은 올해 11월 입주로 단 9개월 남았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지난 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주택법을 고쳐 분양 아파트에 적용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기로 발표했다. 그러나 법안 개정 사항에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했다. 오는 5월이면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운명이었다.
야당이 쉽게 법안 개정이 나서지 못한 것은 실거주 의무 법안 폐지에 반대하는 여론도 거셌기 때문이다. 실거주 목적도 없고, 분양대금 마련도 어려운 투자자들이 무분별하게 투기과열지역 청약 시장에 대거 유입되고, 자금 마련이 안정적인 실수요자의 청약 기회는 그만큼 사라진다는 지적이었다. 한 마디로 투기 조장 정책이란 비판 때문이었다.
최근 강남 등 분양가 상한제 지역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는 주변 시세보다 많게는 10억원씩 저렴한 가격에 분양가가 책정됐다. 정부는 그간 무주택자 중심의 청약 제도를 바꿔 1주택자의 기존 주택 처분 의무도 없앴고, 소형 주택의 경우는 추첨제 물량을 대폭 늘려 가점이 낮은 청약자들에게 기회가 돌아가게 했다. 이로 인해 강남 지역 청약은 서울에만 거주하면 사실상 자유롭게 청약할 수 있어 대기수요가 높아진 상황이다. 앞으로 실거주 의무까지 사라지면 청약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고, 분양가와 전세금이 더 오르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인 ‘올림픽파크포레온’ 84㎡ 분양가는 12억원 수준이었는데, 입주를 앞둔 현재 최고 19억8000만원에 입주권이 팔려 20억원 돌파를 눈 앞에 뒀다.
■ 임대차법은 최대 4년인데, 실거주 의무는 3년…전세시장 대혼란 예고
아직까진 법안의 구체적인 사항이 공개되지 않아, 최초 입주자가 반드시 해당 수분양자여야 하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기간만 3년 유예하고 세입자를 받을 수는 없도록 개정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세입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하더라도, 기존 임대차법 상 최대 임대 기간인 ‘2년+2년’을 충족할 수 없어 주변 전세 시장에도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전세 계약 갱신권은 기본이 2년이고, 2년 더 사용할 수 있는데, 실거주 의무 기간이 3년이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야당의 총선 셈법 때문에 청약 시장 혼란이 더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줄곧 실거주 의무 폐지에 반대해왔다가,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입장을 바꾸는 것은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임대차법에 나온 계약 갱신 기간 및 기존 입주자모집공고 등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서 수분양자, 세입자 간 갈등이 우려된다”며 “규제완화가 이뤄지기 이전 분상제 주택에는 실수요자만 진입 가능했지만, 최근 규제 완화로 청약 과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실거주 의무 폐지에 대한 취지는 공감하지만 유예기간을 3년으로 하면 임대차법 상 보장된 갱신 기간을 온전히 보장받기 어려워 임대차법이 유명무실해지는 측면이 있다”며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든, 유지하든 전세시장에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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