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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기도 무서워" 광주 도심 한복판에 40년째 버려진 폐건물의 정체

    입력 : 2024.01.23 14:47

    [땅집고]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동에 올해로 40년 넘게 미완공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서진병원. /온라인 커뮤니티

    [땅집고] “이렇게 큰 병원 건물이 40년 넘게 폐건물이라니… 여기선 귀신도 의사, 간호사일까요?”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동에는 올해로 40년 넘게 미완공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병원 건물이 있다. 지하 2층~지상 12층, 약 2000평 규모 땅에 들어선 서진병원이다.

    1982년 9월 착공한 서진병원은 1988년 공사가 처음으로 중단된 이후 쭉 공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다가, 1993년 공정률 60% 상태에서 사업이 완전히 중단된 채 지금 상태로 남게 됐다. 건물 바로 뒤편에 대광여고, 서진여고 등 학교가 있는데 학생들이 서진병원을 지나가야만 등하교 할 수 있어 매일 으스스한 기분에 떨어야 한다고 전해진다. 거대한 병원이 도심 속 폐건물 신세가 된 이유가 뭘까.

    [땅집고] 광주 대광여고에 재학 중인 학생이 학교 근처 서진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밝히고 있다. /광주뉴스 캡쳐

    서진병원이 유령건물로 남게 된 데는 사학재단 비리가 얽혀있다. 서진병원을 세운 사람은 이홍하 홍복학원 이사장. 그는 1980년대부터 전국에 고등학교 3개, 대학교 6개 및 부속병원 2개를 소유 및 운영해온 재벌 사학인이다. 1991년 서남대를 시작으로 광주예술대(1993년), 광양보건대(1994년), 한려대(1995년), 신경대(2005년), 서울제일대학원(2011년) 등을 줄줄이 세웠다.

    [땅집고] 이홍하 홍복학원 이사장이 감옥 수감 전 재단 산하 대학교 학생들에게 남긴 발언. /SBS 캡쳐

    이홍하 이사장은 이처럼 문어발식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학교재단 자금을 횡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실제로 그는 건물 공사대금 등을 가장해 서남대 등 현장에서 교비 총 1000억원 이상을 횡령한 혐의로 2016년 대법원에서 최종 징역 9년과 벌금 90억원을 선고받아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2023년 10월 만기를 꽉 채우고 현재는 출소한 상태다.

    이홍하 이사장의 사학비리 문제에 연루된 서남대는 2018년 폐교했고, 홍복학원 재단 소유의 다른 대학들 역시 문을 닫거나 폐교 직전 신세라 교직원 등 구성원들이 정상화 노력을 펼치고 있다.

    [땅집고] 이홍하 홍복학원 이사장의 문어발식 대학설립 과정 설명. /조선DB

    서진병원은 이홍하 이사장이 서남대에 의과대학을 유치하겠다고 대대적으로 공표하며 짓기 시작한 건물이다. 그런데 건물 착공 이후인 1994년 서남대에 의대가 생기자마자 건물이 갑자기 공사를 중단했다. 이후 40년 동안 공사를 재개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업계에선 이홍하 이사장이 서남대 재단을 키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서진병원 건물을 짓다가 일부러 공사 손을 놓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홍하 이사장이 사학비리로 구속된 후 세금을 체납하자 서진병원 땅이 경매로 넘어갔다. 이 경매에서 광주광역시에 본사를 둔 부동산개발회사인 그랜드종합개발이 2016년 11월 전체 부지의 80% 정도를 45억원에 낙찰받았다. 이 땅에 주상복합아파트를 개발하려는 목적이었다.

    [땅집고] 광주광역시에 본사를 둔 그랜드종합개발이 서진병원 부지를 손에 넣은 뒤 건물까지 사들여 주상복합아파트로 개발할 계획을 세웠다. /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그랜드종합개발이 땅은 매입했지만, 병원 건물은 손에 넣지 못하는 바람에 사업 발목이 잡혔다. 이곳에 아파트를 지으려면 아직 홍복학원 소유인 건물을 추가로 매입하거나, 홍복학원 측이 건물을 철거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땅 주인이 된 그랜드종합개발은 2017년 4월 홍복학원을 상대로 토지 인도 및 건물 철거 소송을 제기해, 3년 만인 2020년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홍복학원이 서진병원 건물을 철거해 주지 않는다면 그랜드종합개발 측에 매달 대지 사용료료 1474만원 지불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홍복학원 측은 이홍하 이사장이 수감돼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서진병원 건물을 철거하기는커녕 돈도 한 푼 내지 않았다.

    [땅집고] 2021년 시작한 서진병원 건물 경매 매각가 추이. /이지은 기자

    결국 채무로 인해 병원 건물까지 법원 강제경매로 나오게 됐다. 그랜드종합개발이 건물까지 다 사들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서진병원은 2021년 6월까지만 해도 최초 매각가 27억원에 경매를 시작했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계속 유찰을 겪으면서 2022년 8월에는 금액이 4억7099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랜드종합개발 측은 언론을 통해 “건물 가격이 5억원 미만으로 떨어지면 입찰에 나설 것”이라는 의지를 밝혀왔다. 광주시청 역시 도심에 오래된 폐건물을 사들여 개발해 준다는 그랜드종합개발 측 의지를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랜드종합개발 외에 이 건물을 살 투자자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서울 소재 A교회가 경매에 입찰하며 5억1000만원 최고가를 써내 서진병원을 낙찰받은 것. 그랜드종합개발 측 개발 계획이 또 한 번 틀어진 셈이다. 그랜드종합개발은 과거 대법원 재판 결과를 근거로 경매 낙찰 결과에 이의 제기했다. 2022년 9월 광주지법이 경매 매각허가결정을 취소해 주긴 했지만, A교회가 이에 항고하면서 건물 처분을 둘러싼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땅집고] 서진병원 건물을 서울 A교회가 경매로 낙찰받으면서 부지 소유주인 그랜드종합개발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광주방송 캡쳐

    부동산 전문가들은 결국 그랜드종합개발과 A교회 간 법정 다툼이 결론을 맺을 때까지 서진병원 개발사업은 진척이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재판이 2심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하면 최종 판결까지 최소 몇 년 이상은 걸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고층 주상복합아파트로 거듭날 뻔했던 서진병원이 당분간은 폐건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 셈이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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