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1.08 07:30
[땅집고] "호황기 때 건설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사업을 막 잡아놨을 거 아니에요. 돈 벌려고 잡아놨던 건데. 지방에서 미분양이 터지고 이러니까 부분적으로 썩은 건 도려내고 살릴 건 살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경기도 소재 신일건설 사업지 인근 공인중개사)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주상복합 공사 현장. 지하철 4호선 총신대입구역과 7호선 이수역 초역세권 입지로 수요자들에게 알짜 단지로 주목 받던 곳이었다. 아파트 브랜드 '신일해피트리'로 알려진 신일건설이 맡아 지난해 완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방문한 현장은 완공은 커녕 공사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공사 중이던 건물은 철근이 보이는 채로 방치돼 있었다. 지하 4층~지상 11층 1개동에 48가구 규모로 짓던 이 주상복합 건물은 공사비 문제로 분양이 수차례 밀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공사가 중단된 건 지난해 5월 31일. 신일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부터다. PF 대출 연장에 실패하며 1195㎡(약 362평) 규모의 땅과 공사 중인 건물이 지난 11월 공매로 나왔다.
서초구의 역세권 노른자위 땅인데도 무려 6차례 유찰됐다. 616억원에서 364억원으로 가격이 반토막 났지만 입찰 참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채권금융기관 관계자는 "부지 문의가 오긴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건 없다"며 공매 유찰에 대해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일건설은 전북에 본사를 둔 업력이 40년 가까이 되는 중견건설사다. 작년 시공능력평가 113위로 서울, 제주, 전북, 경남 등 전국 11곳 현장에서 시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 지난해까지 지방 사업장들이 처참한 성적을 거두며 타격을 받았다. '울산덕하역 신일 해피트리 더루츠'는 일반분양 659가구 중 79건만 접수됐고, '울산 온양발리 신일해피트리 더루츠'는 일반분양 93가구 중 단 6건만 접수됐다. 쌓여가는 미분양에 신일은 공사대금을 회수하지 못해 자금난에 빠졌다. 미분양 사업지 수분양자들은 공사가 중단되자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상황이다.
공사가 멈춘 현장이 늘어나면서 분양보증사고 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 시공사 문제로 보증사고가 발생한 분양 사업지 8곳 중 4건이 신일건설이 맡은 공사였다. 예상치 못한 공사 중단에 분양자들은 중도금대출 이자를 지불하며 맘만 졸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공사가 재개되는 현장들은 조합과 공사비를 상향 조정해 진행되고 있었다. 신일건설 측에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공식 홈페이지에 표기된 주소로 찾아가보았지만 사무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취재 결과 지난 12월 역삼역 인근으로 규모를 축소해 이전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시공능력평가 16위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 파장이 일고 있다. PF 부실화로 건설사들의 줄도산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총 551곳. 2022년 362곳 대비 약 1.5배 급증했다. 2006년 557곳을 기록한 이래 1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PF 부실로 인한 건설업계 자금난이 더 가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분양수익으로 PF 자금을 조달하는 형태였었는데 분양이 안 되다 보니 건설업계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모든 건설사들이 안고 있는 문제라서 PF위기가 중소 건설사 전반으로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김혜주 땅집고 기자 0629a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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