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1.03 07:22
[땅집고] “서울시가 10년 전에만 이런 정책을 폈어도 현대차그룹이 10조원을 좀더 혁신적인 분야에 투자할 수 있었을 것인데…안타깝습니다.”
서울시가 최근 '삼표 부지 및 성수 일대 첨단산업 분야 글로벌 미래업무지구 조성을 위한 국제 설계공모' 결과를 발표하자 현대차 관계자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삼표부지와 10조원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삼표 부지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 일대 면적 2만8804㎡(약 8728평) 규모다. 서울에서 흔치 않은 대규모 부지인데다 서울숲과 한강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어 금싸라기 땅으로 꼽혔다. 서울시는 최근 성동구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부지(삼표 부지)에 2만 2770㎡에 총 3개 동의 업무·상업·문화·숙박·주거 등 다기능 복합 용도 건물로 개발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 그룹 100층 건물 예정지였던 삼표부지
당초 삼표부지는 현대자동차 그룹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2만2924㎡를 소유하고 있었고 나머지 4904㎡는 국공유지였다. 삼표부지에서는 1970년대부터 운영된 성수레미콘 공장이 있었다. 현대제철은 인천제철 시절인 2000년 삼표그룹 모태인 강원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성수동 공장 부지를 소유하게 됐으며 삼표산업이 부지 소유주인 현대제철에서 땅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삼표부지에 110층 규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건설, 계열사 본사를 한곳에 모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2009년 3월 총 110층 높이로 지어질 이 빌딩에 지상 3~5층에 컨벤션센터를 넣고, 6~25층에는 연구·개발센터, 26~110층에는 대형 호텔 및 사무실이 들어서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안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삼표부지가 자리잡고 있는 성수동은 2007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표한 한강르네상스 사업 일환으로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돼 높이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 같은 구상을 내놓을 수 있었다.
2012년 정부가 주거·상업 등 용도지역간 변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국토계획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당시 삼표 부지는 1종일반주거지역이라 용적률이 150%에 그쳤다. 하지만 상업용지로 용도를 변경하고 사전협상 제도를 통해 혁신 디자인, 친환경, 관광숙박 등을 적용했을 때 용적률 인센티브를 적용받으면 용적률이 최대 1116%로 오를 수 있었다.
■박원순 시장, 현대차 사옥 건립에 제동
그러나 2012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현대차 그룹의 GBC 건립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서울시가 한강변 건물에 높이 규제를 가하면서 기존 계획대로GBC를 짓기 어려워진 것이다. 서울시는 2013년 1월 한강변 초고층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한 건축 규제를 마련했다.
서울시는 일반주거·준공업 지역에 들어서는 주거용 건물은 35층 이하로 높이를 제한했다. 복합건물은 50층 미만, 상업준주거 지역에 들어서는 주거건물은 35층 이하로 하는 최고층수 기준도 제시했다. 당시 서울시는 “대부분 지역에 건물 층수 제한이 없어 높이가 서로 다른 건물들이 들쭉날쭉 들어서 도시경관을 해친다”며 “도시경관을 개선하기 위해 건물 최고층수를 제한하는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고 했다.
■초고층의 저주에 빠진 현대차
서울시의 한강변 건물 높이 규제로 삼표부지 GBC 계획이 무산되자 현대차그룹은 2014년 한전이 소유하고 있던 삼성동 부지(7만9342㎡)를 10조5500억원에 매입했다. 단군이래 최고 땅값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당초 사옥부지로 예정했던 삼표부지는 2022년 9월 삼표산업에 약 3824억원에 팔았다.
10년 전 서울시가 한강변 삼표 부지에 높이 제한을 두지 않았다면 쓸일이 없었던 10조를 땅값에 지불한 것이다. 현대차는 삼성동 부지 매입이후 ‘초고층의 저주’에 빠졌다는 말까지 들었다. 초고층의 저주는 초고층 건물이 완공될 때 경제위기가 도래한다는 가설이다 중국의 헝다그룹은 초고층을 추진하다가 자금난에 빠졌고 두바이는 초고층 건물 완공시점에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현대차는 삼성동 부지 매입이후 주가가 폭락하고 실적이 부진했다. 아직도 당시의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당시 서울시가 삼표 부지 100층을 허가하고, 현대차가 10조를 신사업 확장에 투자했다면 현대자동차는 물론 한국 경제의 운명도 달라졌을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현대차 그룹은 부지를 매입한지 5년 뒤인 2020년 5월 한전부지에 105층 1개 동 (업무 및 숙박용 등 부속건물 제외)짜리 초고층 빌딩을 건립하기로 계획하고 착공했다. 하지만 착공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2020년 말부터 105층 1개 동 대신 50층짜리 3개 동 혹은 70층짜리 2개 동으로 계획을 바꿨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당초 GBC는 2023년 완공 목표로 계획했지만 사업이 지연되면서 완공 일자는 오리무중이다. 현재 터파기 공사가 60% 정도 완공됐을 뿐이다.
막대한 토지비용을 감안하면 1년 사업이 지연될 때마다 연간 금융비용만 3000억~5000억원을 날리는 셈이다. 그런데도 막대한 금융비용을 감수하면서 본격적인 공사를 미루는 것은 천문학적인 건축비 때문이다. 당초 계획대로 100층 건물을 지을 경우, 건축비가 5조원, 층수를 낮출 경우, 3조~4조로 추산된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이 재편되는 가운데 현대차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초고층 사옥이 아니라 기술경쟁력이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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