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1.01 07:30
[건설사 기상도] 국내 정비사업은 중흥토건이, 해외 사업 수주는 대우건설이 ‘투 트랙’
[땅집고] 대우건설 인수로 재계 순위 20위권에 올라선 중흥그룹이 본격적인 사업 이원화 작업에 돌입했다. 대형 건설사로 푸르지오 등 주택 브랜드를 가진 대우건설의 후광을 업어 중흥그룹 계열사인 중흥토건이 국내 주택시장에, 대우건설은 해외 사업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보기엔 그럴싸한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대우건설이 가져가야할 리스크가 매우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질적인 수익을 내는 분야는 국내 주택 산업인데, 이를 다 중흥토건에게 몰아주고 대우건설은 불확실성이 강한 해외 사업을 주로 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모양새는 그럴싸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모든 리스크를 대우건설이 안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대우 인수로 후광효과 입은 중흥토건, ‘1조 클럽’ 목전
중흥그룹의 계획은 실제로 구체화하고 있다. 중흥그룹 중흥토건의 도시정비사업 수주액은 올해 1조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올해 1~11월 중흥토건 수주 총액은 8808억원(2961가구)으로, 올해 도시정비사업 수주실적이 1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나온다. 원자재 가격 급등, 고금리 장기화 등으로 국내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중견건설사 이미지가 강한 중흥토건이 호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도시정비사업 수주액이 5조원을 넘는 건설사들이 많았으나, 올해는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1조원도 간신히 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10조원에 가까운 수주액으로, 성적 1위를 기록한 현대건설은 올해 기준 1조8828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포스코이앤씨가 4조 3158억원으로, 10대 건설사 중 유일하게 5조원 클럽에 근접한 성적을 냈다.
업계에서는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브랜드 파워를 강화한 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호남 기업인 중흥토건이 올해 부산지역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주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우건설은 부산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건설 브랜드로 꼽힌다.
■대우건설은 국내 사업 줄고 해외 사업 박차…시공능력 6위→3위
정작 대우건설은 점차 주택 사업을 슬림화하고 해외 사업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창사이래 처음으로 도시정비사업 수주액 5조원을 넘겼으나, 올해는 1조115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해외수주는 대폭 늘었다. 올해 3분기까지 대우건설이 수주한 해외 사업은 2조4061억원에 달한다. 해외수주 목표인 1조8000억원을 초과달성한 실적이다. 현재 수주를 추진 중인 투르크메니스탄 비료플랜트 공사의 연내 수주까지 확정하면 역대 가장 높은 해외수주 실적을 달성하게 된다.
해외 실적이 크게 뛰면서 대우건설의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대폭 끌어올렸다. 대우건설의 올해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3위로, 지난해 6위에서 세계단 올라갔다. 2010년까지도 대우건설은 삼성물산, 현대건설과 함께 ‘건설사 빅 3’에 들었으나, 주인이 계속 바뀌면서 지난해 6위로 내려갔었다.
대우건설은 더욱 본격적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국내 주택시장 관련 부서를 축소하고, 해외 사업 부서를 키우는 것이다. 지난달 대우건설은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단행하고, 중흥그룹 총수일가가 직접 나서서 영업을 뛰고 있다.
중흥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은 직접 전 세계 각국을 다니며 세일즈맨을 자처하고 있다. 북미뿐 아니라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이집트, 싱가포르 등을 잇달아 방문하며 해외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아들인 정정길(25) 대우건설 전략기획팀 부장을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해외사업 영업 담당 상무로 승진시켰다.
■”국내 건설사 해외서 돈 번 경우는 없는데” 업계는 우려
업계에서는 중흥그룹이 내건 ‘국내 사업은 중흥토건이, 해외 사업은 대우건설이 맡는다’는 기조에 대해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계획”이라고 평가한다. 모든 건설사들의 성장 근간은 국내 주택 사업인데, 조직 슬림화와 해외 사업 집중을 명목으로 대우건설의 기능을 대폭 축소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건설업 특성상 주택사업을 줄이면 매출이 어마어마하게 줄어든다”며 “겉보기엔 좋아 보이지만, 해외 시장도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해외에 올인한다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간다는 것”이라고 했다. 수주액과 별개로 실제 매출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것. 업계 관계자들은 해외 시장에서 우리나라 건설사가 실제로 돈을 버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중흥그룹의 무리한 사업 이원화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대우건설이 치명적인 리스크를 안게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견사인 중흥그룹은 대기업인 대우건설의 인력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조직을 강화하는 정예화가 아니라 슬림화에 나서면서 대우건설의 자생 능력을 대폭 줄여버렸다”고 했다./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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