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11.17 08:00
[땅집고]1000만 서울시민들의 주거 복지를 담당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서울시 기조와 불협화음을 내는 바람에 올해 매입임대주택 공급량이 역대급 바닥을 찍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9월 말까지 SH공사가 매입 계약 완료한 임대주택이 단 341가구로, 올 한 해 동안 계획했던 공급물량(5250가구) 대비 달성률이 6.5%에 그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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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집고 취재 결과 이처럼 서울시 매입임대주택 공급 실적이 부진한 이유로는 2021년부터 SH공사를 이끌고 있는 김헌동 사장의 개인 가치관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사장은 매입임대주택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이 제도에 회의적인 인물이다.
반면 서울시는 가장 쉽고 빠르게 임대주택 공급량을 늘릴 수 있는 매입임대주택 제도를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서울시와 SH공사가 마찰을 빚는 동안 매입임대주택 공급 실적이 바닥을 치면서 서울시민 주거복지에 구멍이 났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SH공사 매입임대주택 실적 바닥 이유?...김헌동 사장의 ‘분양원가’ 고집 때문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SH공사는 2020년까지만 해도 매입임대주택을 총 6700가구 공급해 계획 대비 실적 달성률 100%를 기록했다. 그런데 2021년 김헌동 사장이 취임한 이후 이 실적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연도별로 ▲2021년 79.5%(5300가구 계획·4213가구 공급) ▲2022년 16.5%(5150가구 계획·850가구 공급) ▲2023년 9월말 6.5%(5250가구 계획·341가구 공급) 순으로 공급 달성률이 수직하락했다. 최근 2년 동안 서울시 매입임대주택이 계획 물량 대비 10~20%만 확보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가 임대주택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임대주택을 지을 신규택지를 개발하거나,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구역으로부터 임대주택을 기부채납받거나, 민간이 지은 주택을 사들여 시민들에게 임대하는 매입임대주택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이 중 임대주택을 가장 쉽고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SH공사를 통한 매입임대주택이 꼽힌다. 현재 서울시에 새 택지지구를 개발할 땅이 부족할 뿐더러, 정비구역마다 사업 진행도가 천차만별이라 나머지 두 방식은 비교적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어서다.
그런데도 SH는 최근 2년 동안 매입임대주택 공급을 소홀히하고 있다. 여기에는 김 사장의 철학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 사장은 올해 2월 개인 페이스북에 “SH는 세금으로 원가 1억 남짓한 다가구 빌라 등을 3억대에 매입 약정하는 매입임대 축소로 세금 낭비를 막았다”며 매입임대주택 제도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힌바 있다. 앞서 1월에는 “SH는 2022년 매입 중단 제도를 정비 중이다”라는 글도 썼다.
김 사장은 그동안 민간아파트 분양가가 ‘깜깜이’로 책정돼 너무 비싸다며, 건설사마다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이런 신념에 따라 2021년 SH공사 사장직에 오른 이후에는 그동안 SH공사가 서울 곳곳에 공급한 공공분양아파트 단지마다 분양원가를 줄줄이 공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강서구 ‘고덕강일8단지’의 경우 59㎡를 2020년 6월 4억8000만원 정도에 분양했는데, 이 아파트를 짓는 데 든 원가는 3억1000만원으로 분양가 대비 64.5%에 불과했다는 것.
이런 기조에 따라 김 사장은 매임임대주택 역시 건설원가 수준의 금액이 아니라면 굳이 SH공사의 예산으로 사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세게 피력하고 있는 셈이다.
■SH공사 행보에 난감한 서울시…“문제 인지 후 매입임대주택 실적 끌어올리는 중”
김사장 때문에 서울시는 난감한 입장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이 12억원에 달할 정도로 비싼 상황이라 시민들의 주거복지를 고려하면 시세보다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돕는 임대주택을 적정 수준으로 공급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공급책인 매입임대주택 실적에 구멍이 나면 SH공사 뿐 아니라 서울시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서울시는 SH공사의 매입임대주택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칼을 빼든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주택정책과에 따르면 올해 9월 말까지 매입임대주택 공급 실적이 계약 완료 기준 341가구였는데, 약 한 달 반만인 이달 15일에는 695가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서울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문제를 인지한 뒤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주택 매입 규정 허들을 낮추고, SH공사를 독려해 연말까지 매입임대주택 공급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박차를 가한 것이 주효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현재 계약 진행중인 주택(2402가구)까지 집계하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매입임대주택 총 3097가구를 확보해, 올해 공급 목표치의 59%를 잠정 달성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국토부 협의로 임대주택 매입 기준도 완화
서울시가 공급 실적을 한 달 반만에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올해 7월쯤 서울시가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임대주택 매입 규정을 완화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원래대로라면 다가구주택은 건물 한 동 전체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매입해야 했고, 다세대주택의 경우 전체 소유주의 2분의 1 이상으로부터 매입 동의를 받아야 사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규정 완화를 통해 다른 집주인 동의 없이도 다가구·다세대 모두 주택 한 채씩 각각 매입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기존에는 불법 건축물 매입이 원천 차단됐지만, 개보수를 통해 정상 주택으로 복구가 가능한 주택이라면 매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불법건축물을 고쳐서 합법 주택으로 만든 뒤 공급하기까지는 2~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서울시 측은 땅집고에 “김헌동 사장의 기조 때문에 매입임대주택 실적이 저조해 SH공사 내부 직원들과 서울시 모두 난감했다”며 “문제를 인지한 뒤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매입 허들을 낮추고, SH공사를 독려해 연내까지 매입임대주택 공급 목표를 맞추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SH공사 주택매입부 관계자는 김 사장의 매입임대주택 기피 기조를 인정하면서도 “현재 서울시에 매입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주체가 SH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두 기관인데, LH 때문에 SH가 확보할수있는 다세대·다가구 물량에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더불어 그는 “서울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오르는 바람에 그동안 임대 주택을 지을 신규 부지를 확보하거나 기존 주택을 매입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입장도 내놨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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