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11.12 07:01
[땅집고]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은 최근 총회를 열고 시공사인 대우건설 재신임 여부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대우건설이 시공사 선정 총회 당시 고도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으나 서울시 인허가를 받지 못해 사실상 고도 제한 완화 여부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시공사를 다시 뽑는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될 것을 우려해 대우건설을 재신임했다.
이처럼 정비사업지 곳곳에서 시공사들이 무분별하게 대안 설계를 제안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시공사가 무리하게 공수표를 남발해 수주만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기망행위이며 ‘갑질’이라는 비판이다. 조합 입장에서는 시공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새 시공사를 선정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 때문에 시공사를 해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정비사업지 곳곳에서 지침 기준 어긴 대안설계로 잡음
최근 정비사업 곳곳에서 시공사가 서울시 지침을 무시한 막무가내식 대안설계를 제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한남2구역 시공사인 대우건설은 남산 경관을 위한 고도제한(90m)을 완화해 118m로 높이겠다는 내용의 혁신설계안(118프로젝트)을 제안했다. 조합원들은 고도제한을 완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수주전에 참여한 대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고도제한을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우건설이 공약한 고도제한 완화 가능성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한남2구역 조합은 대우건설 해임할지 여부에 대해 재신임 투표를 했다. 조합은 대우건설의 시공자 지위를 유지하기로 했다. 시공사를 새로 뽑게되면 사업이 장기간 지연될 우려 때문이다. 대신 대우건설이 내년 8월까지 118프로젝트 가능 여부를 알려주기로 하고 확정하지 못할 경우 사업 지연에 따른 추가 보상을하기로 했다.
대안설계 실현이 어려워 시공권이 해지된 사례도 부지기수다.
흑석9구역도 시공자의 대안설계를 믿고 선정했으나 서울시 인허가를 받지 못해 시공사를 해임했다. 2021년 당시 흑석9구역은 시공자인 롯데건설이 2018년 수주 당시 최고 28층, 11개 동의 대안설계를 내세워 시공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서울시 기준에 따르면 흑석9구역인 제2종 일반주거지역은 ‘최고 25층’으로 층수가 제한돼 있고 층수가 완화된 설계변경안이 인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결국 계약이 해지됐다.
방배6구역도 대안설계 때문에 시공사를 해임한 이력이 있다. DL이앤씨는 구역을 가로지르는 15m 도시계획도로를 없애는 내용의 대안설계를 제시했으나 인허가를 받지 못했다. 조합은 DL이앤씨가 제안한 대안설계에 대해 설계도서, 세부 산출 내역서 등을 요구했으나 DL이앤씨가 인허가가 제한되 대안설계가 진행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면서 시공사에서 해지됐다.
■ 공공지원자 감시 소홀…조합 현혹하는 건설사 기망행위 판쳐
업계에서는 무리한 대안설계를 제시한 시공자 뿐 아니라 공공지원자인 구청의 무책임한 태도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 한남2구역 조합원들은 수주전 당시 관할 구청인 용산구청에 대우건설 설계안에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의 민원을 넣었으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방배6구역, 흑석9구역에서도 시공사의 대안설계가 제안됐을 때에도 공공지원자인 구청은 방관했다. 업계 관계자 A씨는 “무리한 대안설계로 당선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수주의 핵심 요건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건설사 입장에서는 건축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설계안보다는 조합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가상의 설계안을 만들게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지난달 입찰 참여자에 대해 사업 시행계획의 경미한 변경을 인정했던 '대안설계 범위'를 '도시와 주거환경정비법'에 의해 결정-고시된 '정비계획 범위 내'로 한정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정비계획 범위' 안에서만 대안설계를 제시할 수 있으며, 용적률을 10%미만 범위에서 확대하거나, 최고 높이를 변경하는 '경미한 정비계획 변경'도 허용되지 않게 된다.
대안설계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조례가 개정되면서 조합설립인가만 되면 시공사를 뽑을 수 있게 됐는데 건축심의가 통과되지 않아 기준이 제시된 게 아니라 수주전에 참여하는 시공사는 사실상 허공에다 설계안을 그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때문에 대안 설계의 적절성 여부에 따른 조합의 피해에 대해 조합과 시공사 간 민사로 해결할 문제이지 행정력이 개입되는 것은 과도하게 행정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안설계란 조합이 처음 제안한 기본설계 대신 건설사나 설계사 등이 사업성을 높이고 미관을 고려해 새롭게 제안하는 설계안을 지칭한다. 통상 조합이 제안하는 기본설계는 법적인 인허가 요건을 충족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상품성이나 디자인 등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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