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11.08 09:05 | 수정 : 2023.11.08 09:06
[땅집고] 오세훈 시장이 ‘서울형 건설혁신 대책’을 발표했다. 불법 하도급 관행을 뿌리 뽑아 ‘부실공사 제로 서울’을 만든다는 것이다. 시는 우선 굵직한 방향을 제시한 만큼, 앞으로 전문가 의견을 고려해 세부적인 지침·적용 기준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선 건설업계에 뿌리 내린 하도급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기 보단, 이른바 ‘쥐어짜기’를 막고, 건설 인력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사태는 하도급업체가 다시 하도급을 주는 과정에서 공사 단가를 대폭 줄인 게 사고 발단이 됐다. 인천 검단 신도시 사태는 감리 인원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설계 과정부터 시공까지 그야말로 전 과정에서 철근이 줄줄이 누락되면서 발생했다.
■ 오세훈 “부실시공 뿌리 뽑는다”
7일 서울시는 ‘서울형 건설혁신 대책’을 발표했다. 부실 공사가 발생할 때 마다 마련했던 단편적 대책에서 벗어나 사업 체질을 바꾸고, 관행처럼 박힌 부실 고리를 끊어내는 게 핵심이다.
시는 그간 발생한 부실시공 문제점을 토대로 3개 부문, 8개 핵심과제를 선정해 추진한다. 크게 공공과 민간 부문별 개선방안을 마련한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정부 건의 및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공공건설 분야에서는 ▲부실로 인한 사고 발생시 즉각 재시공 의무화(내년 상반기 목표) ▲시 발주 공사 주요 공종 100% 직접 시공 ▲상주 감리 인원 최대화 등을 추진한다. 민간건설 분야 대책으로는 ▲하도급 계약 적정성 검토 ▲감리비 공공 예치·지급제도 도입 ▲우중타설 금지·콘크리트 강도 의무 점검 등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지하주차장 붕괴와 같이 시민을 큰 불안에 빠뜨린 부실공사의 고리를 끊어내고 건설산업 재도약을 도울 종합 개선대책을 마련했다”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 건설기술과 산업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 ‘글로벌 안전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 ‘건설 안전 대책’ 언제 적용 가능할까
이번 대책이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총 8개 대책 중 세부 내용이 마련된 항목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부실시공으로 인한 사고 발생시 즉각 재시공 의무화를 내걸었으나, 부실 공사를 판단하는 기준과 재시공 규모에 대해선 아직 논의가 필요하다.
철근·콘크리트·교량공 등 시설 구조안전에 영향을 미치고 공사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공종’은 100% 직접 시공을 원칙으로 하되, 기술 보완 등 불가피한 경우엔 하도급을 허락하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기준이 불분명하다.
감리 인력 역시 확대 계획이 있을 뿐, 감리 인력의 전문성을 검증하는 내용은 빠져 있다. 더욱이 감리 인력은 계획만큼 확대가 어려울 수도 있다. 현재 감리 인력 최상위 자격증으로 꼽히는 건축감리기술사 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등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건축구조기술사는 1273명에 불과하다.
같은 감리 업무를 수행하는 건축사는 2만6980명으로 많지만, 건축사는 건축구조기술사보다 구조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로 구성될 ‘서울 건설산업 발주자협회’는 기존의 건설 안전 대책을 민간 영역으로 확대한 수준이다. 시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기간이던 2020년 5월 안전관리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공공건설 사업추진 시 기획단계부터 준공까지 공종별로 ‘안전MP(Master Planer, 총괄계획가)’를 참여시킨다고 했다.
■ 팥 없는 찐빵…전문성은 어디에
건설업계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실효성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냈다.
최원철 한양대 특임교수는 “우리나라 건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고,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며 “기존 있는 대책들이 누더기가 되지 않도록 지키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나 미국이 건설 규제가 없어도 사고가 적은 이유”라며 “해외 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장덕배 한국기술사협회장은 “선진국은 설계 도면과 공사 시방서가 정확하게 기준에 따라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시공이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며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책임지고 사업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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