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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면 언제오나" 반 백년 '터줏대감' 아파트 장례식 치른 사연

    입력 : 2023.10.14 07:00

    [땅집고] “이제는 나이가 많으니까 보내야하는데, 이별하기가 아쉬워서 장례식을 해주려 합니다.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땅집고] 화광아파트 장례식 장면. /MBC강원영동

    지난 2019년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에선 특별한 장례식이 열렸다. 동네 주민들은 물론 시의원과 주민센터 직원까지 수백명이 모인 이곳에선 북소리와 종소리, 곡소리가 울려 펴졌다. 참석자들은 상여복이나 광부 복장을 입고, 꽃상여를 어깨에 멨다. ‘명복을 빕니다’ ‘고마웠다’ 등의 문구가 적힌 만장들도 행렬 뒤를 이었다.

    영정사진 자리는 아파트 동판이 대신했다. 참석자들은 “안녕히 가십시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천지신명께서는 우리 화광아파트를 어여삐 여겨 거둬주소서” 등의 인사말을 남겼다. 한 주민은 추도문을 통해 “눈비바람이 몰아쳐도 우리들에게 항상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줬고, 우리들과 동고동락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화광아파트가 이제 그 소명을 다했습니다”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땅집고] 화광아파트(철거 전) 전경. /MBC강원영동

    장례식 주인공은 바로 국내 최초 광부 아파트, 화광아파트다. 대한석탄공사가 1980년 사택으로 공급한 이 곳은 1~3층, 50개동, 702가구 규모였다.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아파트가 강원도 산골짜기에 등장한 이유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광부들의 주거지 공급을 위해서다. 당시 태백은 석탄 광산으로 번성했고 광업 종사자가 몰렸던 지역이다. 1순위 입주 대상 은 장성광업소 등에서 20년 이상 장기근속한 직원과 간부들이었다.

    이 아파트는 대부분 전용면적 36㎡(11평형)에 방 2개와 주방, 현관을 갖춘 구조였다. 현관 밖으로 나가 복도를 마주한 화장실을 갈 수 있었고, 화장실엔 쪼그려 앉는 화변기가 있었다고 한다. 물통이 따로 없어 별도로 물을 퍼서 사용했지만, 대기 줄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땅집고] 화광아파트(철거 전) 내부 모습. /MBC강원영동

    그러나 산업 구조 변화로 인해 태백 일대 경제가 크게 출렁이면서 화광아파트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화광아파트가 있던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인 것이다. 뉴시스에 따르면 2014년 대한석탄공사는 강원도 삼척 도계광업소(매장량 4900만톤)와 태백 장성광업소(1억5900만톤), 전남 화순의 화순광업소(3800만톤) 등 3개 탄광을 운영했으나, 광업소 한 곳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국내 석탄 사용량이 급감해서다. 당시 대한석탄공사는 석탄 수요 감소와 석탄을 채굴하고 판매할 때마다 적자가 생기는 가격 구조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된 상황이었다. 국내 석탄 생산량은 1988년 2429만5000톤(석탄공사 물량 522만1000톤)에 달했으나 ▲2009년 251만9000톤(135만3000톤)▲ 2012년 209만4000톤(110만톤) 등으로 줄었다.

    화광아파트가 있던 장성광업소는 아직 완전히 문을 닫지 않았으나, 폐광을 약 9개월 앞뒀다. 대한석탄공사는 태백 장성광업소를 2024년 6월 말에, 삼척 도계광업소를 2025년 말 폐광시킬 예정이다.

    지역 산업을 기반으로 한 일자리가 출렁이면서 인구도 대폭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태백시 인구는 2013년 4만8794명에서 지난해 3만8918명으로 약 1만 명 감소했다.

    [땅집고] LH가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에 공급하는 국민임대아파트 완공 후 예상 모습. /LH

    태백시는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 화광아파트 일대를 재정비하기로 했다. 시는 2010년 전후로 화광아파트 철거 이야기가 나오자, 절반 가량을 철거하고 씨티타워빌(316가구·전가구 임대)아파트를 공급했다.

    시는 지난 2022년 남은 아파트 부지에선 ‘탄탄마을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아파트 장례식 역시 재생사업 일환이었다. 시는 총 651억원을 들여 화광아파트 부지 및 장성동 일대에 첨단 주거와 문화, 건강 관련 기반시설을 조성하기로 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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