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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도, 예방도 구멍 '숭숭'…전세사기특별법, 빈 수레만 요란했나

    입력 : 2023.10.09 07:31

    [땅집고]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경고 문구. /연합뉴스

    [땅집고]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된 지 4개월째가 됐지만, 관련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 규모나 사기 수법의 범위가 제각각이라 피해 구제 ‘사각지대’에 내몰린 피해자가 적지 않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피해 사례와 규모를 집계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와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더군다나 전세권 등기 설정 의무화 등의 대책이 미비, 향후 같은 전세사기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6월 1일부터 시행된 전세사기 피해자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으로 지금까지 6063건이 피해 인정을 받았다. 10차례의 회의 끝에 총 7092건의 전세 사기 피해자를 심의했고, 이 중 피해자로 최종 결정된 건수가 6063건(85.8%)이다.

    피해자로 최종 결정되지 못한 이유는 피해 주택이 다가구주택인 경우, 신탁사기에 휘말린 경우, 불법 건축물에 속한 경우 등이 꼽힌다. 다가구주택은 우선매수권을 사용할 수 있지만, 원룸에 사는 임차인이 건물 전체를 낙찰받기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신탁사기의 경우에는 계약 자체가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대항력이 없어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가질 수 없다. 불법 건축물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해 활용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땅집고] 전세사기 피해자 백이슬씨가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관련 대통령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기 규모·수법 제각각…사각지대 피해자 실태조사 실시해야

    이 밖에도 전세사기 피해 구제 요건에 맞지 못해 신고 접수에 나서지 못한 피해자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정부가 제시한 6가지 항목 중 4가지 항목을 충족해야 한다. 대항력이나 확정일자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어도 임차권 등기를 마친 경우, 경·공매가 개시되지 않았더라도 임차인이 파산·회생 절차를 개시한 경우, 보증금을 상당액 일부 또는 전부를 돌려받지 못한 경우 등이 해당한다.

    이경선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장은 “사기 피해 규모와 수법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특별법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즉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에 대한 실태조사와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가해자로부터의 2차 피해가 두려워 신고 접수에 나서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또 “특별법에 적용되는 요건 중 하나가 ‘일대 다수의 피해자’에 해당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일대일 피해를 본 피해자의 경우 구제 신청을 할 수 없다”면서 “오죽하면 피해자 사이에서는 전세사기도 몇백채씩 사기를 친 유명 사기꾼에게 당해야 피해 입증이 쉽다는 푸념마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많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그간 많은 지원책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정부가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기 의도’인데, 이 과정에서 입증이 어려운 피해자들이 있어 이번 특별법 개정을 통해 해당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방책’ 빠진 전세사기 대책…법 개정 필요 사안

    정부가 추진하는 전세사기 방지 대책에 정작 ‘예방책’이 빠져 있다는 점도 문제도 거론된다. 전세사기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는 부동산에 관한 권리관계가 공시된 유일한 공적 장부인 등기부등본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하는데, 그 기능을 다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등기부로는 임대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고, 등기의 공신력도 인정되지 않아 사전에 사기 여부를 인지하기 어렵다.

    현재의 대항력 요건이 임대인보다 임차인에게 더욱 불리하다는 부분도 개정이 필요하다. 임차인의 대항력은 주택점유 및 전입신고를 모두 마친 날 자정부터 발생하는 반면, 근저당권 설정등기는 당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전세사기 일당은 이런 점을 악용했다. 세입자 전입 당일 대출을 받아 근저당권을 설정한다면, 경매 등의 절차에서 임차인의 대항력은 보증금 반환 우선순위에서 근저당권 다음으로 미뤄지게 된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경우, 임차인은 결국 보증금을 떼일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등기부 등본에 전세권 설정 등기를 의무화해 거래 정보의 투명성을 높여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서 “이대로라면 전세 사기극은 주기적으로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국토부는 5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저리 대환대출의 소득요건을 완화하고, 보증금 기준과 대출액 한도를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상 피해자 인정 기준과 동일하게 적용하겠단 방침이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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