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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 난민시대…"10억 당장 낼게요!" 해도 최소 2년 대기

    입력 : 2023.09.18 09:08 | 수정 : 2023.09.18 09:09

    [인생후반의 행복, 어디서-1부] 실버타운 난민

    [땅집고] 유명 실버타운 '시그넘하우스(강남점)' 한 호실의 모습. /시그넘하우스

    [땅집고] “10억 가까운 돈을 당장 낸다는데도 2년이나 기다려야 한답니다. 그런데 이곳 말고는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요. 노인이 이렇게 많은데, 제대로 된 실버타운이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실버타운 입소를 기다리는 남성)

    “시설이 좋은 실버타운에 어머님을 모시려 했더니, 한달 비용으로 200만원 이상이 든다고 합니다.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월 비용 100만원인 곳에 가셨는데 시설이 너무 노후화돼, 이 돈을 내는 게 맞나 싶습니다. 실버타운은 완전 모 아니면 도에요!” (한 요양시설에 부모님을 모신 40대)

    실버타운이나 실버주택 등 노인주거복지시설을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시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부족하다. 이 탓에 일부 시설은 들어가려면 최대 5년을 기다려야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원하는 곳에 들어갈 수 없는 ‘실버타운 난민’ 시대이다.

    [땅집고] 경기도 일산동구 식사동에 생긴 한 실버타운 외관 이미지. /네이버로드뷰 캡쳐

    ■ 당장 보증금 낼 수 있어도 “대기 2년 기본”

    도심 실버타운으로 알려진 시설에 입소하기 위해선 최소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보증금으로 최대 10억원까지 지불해야 하지만, 원하는 때에 들어갈 수 없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주요 실버타운들의 입소 대기 기간은 2~5년이다. ‘더클래식500’이 대표적. 이곳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시니어들의 선호도가 높다. 백화점이 가까워 쇼핑 인프라를 누릴 수 있고, 노래방이나 AV룸, 연회장, 도서관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 더클래식500은 최고 50층으로 지어져, 고층 일부 가구에선 우수한 도시 전망도 감상할 수 있다.

    이런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 내야 하는 보증금 액수도 많은 편이다. 더클래식500 보증금은 9억원, 월 이용료는 (1인당 식사, 관리비 포함)로 약 200만원이다. 더클래식500 관계자는 “대기기간은 보통 2~3년이지만, 도심뷰나 한강뷰 조망이 가능한 방을 배정받기 위해 5년을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자곡동에 있는 ‘시그넘하우스(강남점)’의 경우 체육, 문화 시설을 두루 갖췄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전용면적 11~24㎡, 169호실 규모로 지어졌다. 입소 보증금으로 4억4000만원~10억7000만원을 내야 한다.

    이곳 역시 대기 기간이 긴 편이다. 시그넘하우스 관계자는 “크기가 작은 방(전용 11~18㎡)은 최소 6개월 정도이고, 큰 방(21~24㎡)은 1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며 “최대 3년까지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12월 입주 예정인 시그넘하우스 청라점은 본격적인 개관 전부터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청라점 개관 전, 식사나 내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강남점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인기가 상당하다”며 “조만간 선착순으로 입주자를 모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땅집고] 경기도 덕양구 한 요양시설 간판. /네이버로드뷰 캡쳐

    ■ 수요 엄청난 이유, 차선책 無… “차라리 집이 낫다”

    수년을 대기해서라도, 해당 시설에 입주한다는 사람이 줄을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클래식500, 시그넘하우스, 삼성 노블카운티 등 일부 실버주택을 제외하면 마땅한 차선책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시설을 제외한 대부분 노인전문요양원 등 요양시설은 운동이나 여가 관련 시설이 전무하고 시설이 낙후됐다. 4인실이나 6인실로 구성돼 사생활을 보호받기도 어렵다. 수요자들이 입주 조건을 완화해 다른 시설을 알아보려다, ‘집에 머무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시설 입소 대신 재가(在家)를 택하는 노인들이 증가하면서 시설 수는 감소 추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주거복시시설 수는 2019 382개에서 2021년 337개로 줄었다. 이중 양로시설은 232개에서 192개로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였다. 노인공동생활가정과 노인복지주택은 각 107개, 38개로 집계됐다.

    이중 식사와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니어타운 수는 더욱 적다. 업계에선 국내 시니어타운이 39곳, 8840가구 규모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고령인구는 급증 추세다. 통계청의 ‘2022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17.5%인 901만8000명이다. 처음으로 90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감안했을 때, 우리나라는 빠르면 2025년엔 인구의 20% 이상이 65세가 되는 초고령화 사회가 된다.

    [땅집고] 경기도 덕양구 한 실버타운(요양시설)은 쇼핑센터 건물에 들어 있다. /네이버로드뷰 캡쳐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버타운’ 간판을 내건 곳 중에선 고품질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버타운’은 용어가 국내에 들어온 지 30년이 지났으나, 구체적으로 의미가 정립된 적이 없어 시설의 규모나 운영 실태에 관계없이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기 때문. 예컨대 고양시 덕양구 A 실버타운은 쇼핑센터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골목길에 위치한 B 실버타운은 노래연습장 위에 있어 소음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 국민소득 ‘껑충’ 오르면서 집 보는 눈도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시간에 질 높은 주거 문화가 형성되면서 ‘실버타운 난민’이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부터 신라호텔 등 호텔 업계 경험을 토대로 시니어 주거 환경 분야에서 활동해 온 박동현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장은 “단시간에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고급 주거상품 수요가 늘었지만, 노인주거와 관련된 산업은 초기 형태를 띠고 있어 고급화된 일부 시설로 수요가 쏠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회장은 “호텔 산업이 지난 40여년 간 관광산업을 토대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듯, 실버타운 사업도 고령화 추세에 맞춰 성장할 것으로 본다”며 “조만간 대형 건설사와 호텔사들이 관련 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장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양병원 등과 달리 유료요양시설은 자금력을 가진 법인만 고품질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버타운을 운영할 수 있다”며 “제도 및 금전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자연스레 고품질 노인주거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리츠 천조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선 노인주거시설을 자산으로 하는 리츠((REIT·부동산 간접투자회사) 전문사도 있다. 헬스케어 리츠사 ‘웰타워’가 대표적. 웰타워는 요양원 개념인 ‘시니어 리빙 하우스(Senior Living House)’와 외래병원 등 헬스케어 관련 건물 임대사업을 전문적으로 하면서 수익을 내는데, 시가총액이 4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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