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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 1명이 도면 3만건 검토…또 감축하면 공공부문 포기"

    입력 : 2023.09.13 07:31

    장효수 LH노조 대외실장 인터뷰
    "직원들, 요즘은 무서워서 일 못하겠다 해"

    [땅집고] 지난 7일 땅집고 취재진이 조선일보 본사에서 만난 장효수 LH 노동조합 대외실장이 현재 LH 내부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지은 기자

    [땅집고] “예전에는요, LH 직원들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다 못하겠다’고 그랬어요. 지금은 다들 ‘무서워서 일을 못 하겠다’고 합니다. 정부가 LH에 쏟아내는 사업은 점점 불어나는데 인력은 뒷받침이 안 되고, 그러다 문제 터지면 개인이 수사며 감사며 불려 가야 하는데 어떻게 일하겠느냐고요.”

    지난 4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해 공사하던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내 지하주차장이 붕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초 시공사인 GS건설에 비난의 화살이 쏠렸지만, 정부 조사 결과 발주처인 LH가 설계·시공·감리업체 선정 등 아파트 건설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관리감독을 부실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LH가 건설업계 전관예우 카르텔의 정점’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경찰 등 수사기관이 LH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고, 정부도 9월 중 LH 조직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예고하면서 전체 조직이 업무 마비에 빠진 상태다.

    /연합뉴스

    LH 노동조합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LH 직원 총 1만여명 중 8000여명이 가입해 있는 노조는 이달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붕괴 사태의 원인은 정부가 LH 측에 무리한 주택 공급 정책을 강요하면서, 인력 확충 요구는 묵살한 데 있다”며 “정부가 전관예우가 이번 사태의 전적인 원인인 것처럼 진단해 LH 조직 개편 대책을 내놓으면, 현실과 동떨어진 해결책이 나오면서 주택 공급 체계도 무너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땅집고가 지난 7일 만난 장효수 LH 노조 대외실장은 “LH 구성원 개개인의 과오는 당연히 바로잡아야 하지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LH 조직 전체에 너무 많은 책임을 몰아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호소했다. 장 실장을 통해 현 사태에 대한 LH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지금 LH 내부 상황이 어떤지.

    “지금 현장 직원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소리가 있다. ‘예전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못 하겠다면, 지금은 무서워서 일을 못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와 이번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LH에 전가된 주택 공급 정책이 수십가지에 달한다. 최근 5년간 정부가 계획한 주택 공급량 105만가구 중 72만여 가구를 LH가 담당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다. 주거 복지와 관련해선 매입임대주택 등 지방자치단체가 진행해야 할 사업인데도 그 쪽에서 진행하기 어렵거나 인력이 부족할 경우 LH에 위탁·수탁하는 사업도 많고, 올해 초 불거진 전세 사기 사건 등 주택·부동산·국토와 관련한 문제가 터질 경우 LH가 해결사로 나서는 경우도 상당했다.  

    [땅집고] 2018년 대비 2023년 LH 사업 규모 및 인력 변동 현황. /이지은 기자

    일이 증가하면서 사업비가 2배 이상 불어났지만, 정부가 인력 충원은 해주지 않는 바람에 10명이 해야 할 업무를 혼자 도맡아 하는 직원이 수두룩하다. 그렇게 야근, 주말 근무까지 해서 일한 결과가 참고인 조사, 수사 의뢰, 고발이다. 이렇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선 ‘굳이 무리하게 일해야하나’란 분위기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력이 얼마나 부족하다는 건가.

    “LH가 정부의 주택 정책 공급량의 80% 이상을 도맡으면서 사업비가 2018년 15조2000억원에서 2022년 33조2000억원으로, 5년 동안 2배 폭증했다. 그런데 불어난 사업비만큼 인력이 충원되지 않았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법에 따라 총 1673명을 증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가 늘려준 인원은 373명에 불과하다. 현행 건설기술진흥법 39조에 따라서 품질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아파트 공급량 대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인력이 있는데, 정부는 LH가 요청한 증액분 중 단 22.3%만 반영해 준 것이다.

    [땅집고] 2017~2022년 LH의 증원 요청에 따른 정부 반영 현황. /이지은 기자

    예를 들어 이번에 정부 조사 결과 전단보강근 345개 중 154개가 빠진 것으로 나타난 ‘공주 월송 A4’ 단지는 법정 기준인원 8.4명이 필요한 현장이었는데, 실제 인력은 4.62명에 불과했다. 또 ‘양산 사송 A2’ 단지는 9.1명이 필요했으나 5.28명만 일해 적정 인원 대비 43.8%가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력 보충이 안 됐던 이유는.

    “2021년 발생한 LH 임직원 신도시 땅 투기 사태로 인한 정부 혁신안이 나오면서 인력 공급이 어려워졌다. 정부는 당시 LH 직원들의 투기를 근절하겠다며 정원 1062명을 감축하고, 신규 직원을 모집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LH 조직 이미지가 악화하자 실무진인 4급~7급 직원들 퇴사가 투기 사태 전인 2020년 대비 2배로 늘었다. 주택 공급책이 줄줄이 나오면서 LH 업무는 가중되는데, 정원은 줄고 일할 사람도 줄줄이 그만두면서 인력이 더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인력을 무작정 감축한 결과 과연 투기를 방지하는 효과가 났느냐고 정부에 묻고 싶다. LH는 택지 조성, 주택 공급, 주거 복지 사업을 유기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공공기관인데, 2021년 혁신안으로 조직이 무 자르듯 통·폐합 개편되고 인력이 감축돼 도저히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혁신안 중 임직원 부동산 재산 신고 등 시스템은 투기를 막는 행위와 관련이 있지만, 근거 없는 감원은 정부의 주택 공급 발목을 잡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업무 마비 상태인데, 이달 중 정부가 내놓는다는 LH 조직 개편안에 또다시 인력 감축안이 포함된다면 이제는 정말 제대로 된 공공주택을 제때 공급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럼 주택 공급 실적은 얼마나 악화했는지.

    [땅집고] 최근 6년간 LH 주택 착공 계획 대비 실적 추이. /이지은 기자

    “이미 정책 실패 초읽기 단계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동안은 공급 달성률이 98~103%를 기록했는데, LH 조직 축소가 시작된 2021년에는 계획의 38%(6만6566가구 중 2만5488가구)만 공급됐다.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져 올해는 더 참담한 수준이다. 올해 들어 6월까지 주택 사업승인 계획한 1만9365가구 중 26%인 4434가구만 승인됐다. 착공 역시 2130가구로 계획했는데, 이 중 3%인 74가구만 착공했다.”

    관련 기사: [단독] 올해 상반기LH 착공 주택74가구…계획 물량의 3%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금도 LH가 정부의 주택 정책을 제대로 이행하기 역부족인 상황인데도 이한준 LH 사장은 공급 목표 100% 달성을 약속하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주택 공급 정책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현재 LH 현장에선 정말 일할 사람이 없다. 직원 1명이 검토해야 할 설계 도면이 1년에 3만2000가구나 된다. 하루에만 100가구 이상을 확인해야 하는 업무량인데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땅집고] LH 노조가 이달 1일 오후 서울 국회 앞에서 현장 인력을 충원해달라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LH 내외부에 전관예우 등 카르텔이 있다면 악습은 도려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문제를 뿌리 뽑을 수 있는 혁신안이 아닌, 무조건적으로 인력을 줄이는 방안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본다. 현재 LH 직원들이 요구하는 것은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복지 정책을 강화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정부의 주택 공급책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인력을 배치해달라는 것이 단 하나의 요구 사항이다. 이달 중 윤석열 정부가 발표할 LH 개편안에선 과거 문재인 정부와 같은 무근본 인력 감축 및 조직 통폐합 등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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