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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 다 해 먹어…이건 진짜 악이야" 경쟁력 잃고 침몰하는 서울 지하상가

    입력 : 2023.09.05 17:16 | 수정 : 2023.09.05 17:46


    [땅집고] 4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 지하도 상가를 찾았다. 한복전문점과 건강식품점, 기념우표 거래점, 레코드판 가게 등 만이 즐비하다. 지하철역과 연결돼 오가는 사람은 많지만 상가를 이용하는 고객은 거의 없다. 지하도 상가에서 만난 이진숙 씨는 “과거에는 손님들이 많아 지하가 바글바글했다”며 “지금은 온라인 뿐만 아니라 쇼핑하는 곳들이 많아지면서 어르신 말고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지하도 상가는 MD 여건이나 점포 시설 등이 열악하기만 하다. 30~40년 전 모습과 달라진 게 없다.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요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종로 뿐만이 아니라 을지로·동대문·강남역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형 쇼핑몰이 곳곳에 등장하고, 온라인 쇼핑 문화가 확산하면서 지하도 상권이 몰락 위기에 처했다.

    종로에 있는 한 지하 상가 5평짜리 한 구좌 임대료와 관리비는 한 달 기준으로 100만원이다. 평균 두 개 구좌를 사용하는 상인들은 월 200만원, 연간 2400만원이 임대료로 나간다. 코로나 장기화와 고금리, 고물가 탓에 소상공인들이 고통을 호소하자 오세훈 시장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임대료를 최대 40% 감면했다. 그러나 지원 기간이 끝나고, 지하 상가영업은 계속 지지부진하다.

    지하상가가 몰락한 배경엔 서울시설공단의 ‘입찰 제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하도상가는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한다. 총 25곳, 2788개 점포다. 지하상가는 1970~1980년대 방공대피시설과 시민 통행을 위한 보도 개념으로 개발됐다. 시민통행 목적의 지하도상가는 서울시설공단에서, 이 외의 지하철 상가상가는 서울교통공사에서 관리한다.

    서울시설공단은 기존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운영권을 수의계약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공단은 지하도상가 관리주체를 최고가 입찰로 선정해오다 박원순 시장 재임 시절 기존 상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공모 지침을 바꿨다. 2018년부터 공단이 정한 예정가격 대비 120%를 투찰상한 가격으로 못 박고 그 이상의 가격으로는 입찰가를 적어내지 못하게 했다. 또한 투찰 상한가격 이하 동일한 최고가격으로 입찰한 자가 2인 이상일 경우에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낙찰자를 선정한다.

    서울교통공사 외에 부산, 대구, 대전 등 다른 지역 지하상가 입찰에서는 최고가를 써낸 사람이 선정되지만 서울시설공단 운영 상가는 최고가 낙찰자가 무작위로 선정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수탁자들과 이해 관계자들이 복수로 몰리면서 이들끼리 재차 수의계약을 가져가는 방식이 성행하고 있다. 담합이 가능한 구조다.

    서울시설공단 만이 고수한 지침으로 지하상가 ‘복마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620여개 점포가 영업 중인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수탁자가 점포로부터 받는 임대료만 연간 150억원에 달한다. 서울의 한 지하도상가 상인 정모씨는 “한 명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낙차자를 다시 재선정할 때 그 사람이 하수인을 시켜서 운영권을 또 가져갔다”며 “지하도 상가 운영 시스템은 악폐나 다름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게다가 낙찰자는 현재 운영하는 임차인이 낙찰자와의 계약을 거부하는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차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임차인이 사망하더라도 영업권 상속이 가능하다. 임차인은 영업 의지만 있으면 영구적으로 상행위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러면서 수탁자의 갑질로 인한 부당이익 취득, 임차인 평생 운영권 보장 등 과도한 혜택이 주어지면서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서울시설공단은 입찰참가 자격 기준도 만 20세 이상 개인 또는 법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사실상 없앴다. 즉 상가 매장 운영 경험이나 관리능력, 상권 이해도가 전혀 없어도 낙찰자로 선정돼 운영이 가능하게끔 판을 깔았다.

    공단 측은 공유재산법에 의거해 임차인 보호를 위한 지침이라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수탁자가 너무 높은 금액에 낙찰을 받게 되면 임차인 부담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120% 상한을 두는 것이다”며 “소상공인 보호 차원에서 2018년에 입찰공모서가 개정된 것이다”고 했다.

    최고가 입찰 방식으로 바꾸면 수탁자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지하상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서비스나 시설, 환경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최고가 낙찰로 변경할 경우 상가 임차인들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현재 월 임대료 정액제에서 매출에 따라 임대료를 달리 부과하는 방식으로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상가 매출이 높으면 그만큼 임대료를 많이 내고, 적게 벌면 적게 내는 구조다.

    지하도상가는 서울시민의 공유재산이다. 서울시민과 국내외 관광객이 몰릴 수 밖에 없는 주요 환승역, 유동인구가 몰리는 입지가 뛰어난 상가지만 몰락 위기에 처하면서 도시경쟁력이 악화하고 있다. 상권이 살아나기 위해선 입찰 공모지침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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