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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괴롭힘당했는데…피해자 대신 가해자를 로열층으로 이사시킨 LH

    입력 : 2023.08.28 16:37 | 수정 : 2023.08.28 17:01

    /조선DB

    [땅집고] “LH 조치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저도 윗집 현관문 발로 차면 꼭대기 층으로 이사 갈 수 있나요? 처벌이 아니라 혜택이네요?”

    이달 임대아파트에서 층간소음이 심각하다며 윗집을 찾아간 40대 여성이 현관문을 거세게 발로 차 공포심을 조장한 사건이 화제가 됐다. 임대아파트를 관리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문제를 일으킨 여성을 피해자와 분리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LH가 여성을 기존과 똑같은 동으로 이사시켜 피해자와 매일 마주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데다, 오히려 조망이 가장 좋은 꼭대기층으로 옮기는 ‘혜택’을 줘 피해 세대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층간소음 심하다”며 찾아온 아랫집…현관문 30번 ‘쾅쾅’ 발로 걷어차

    [땅집고] 이달 경기 이천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한 40대 여성 입주민이 윗집 층간소음에 항의한다며 현관문을 발로 차는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지난 7월 1일 경기 이천시 증일동 LH임대아파트에 이사 온 A씨. 입주한 지 얼마 안 된 7월 7일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왔는데, 한 여성이 자신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같은 달 14일 밤 11시 30분쯤 누군가 또다시 벨을 누르고 문고리를 흔들었다. 앞서 초인종을 눌렀던 여성과 같은 사람으로, 아랫집에 사는 B씨였다.

    이날 A씨는 문을 열지 않은 채 “저 여기 지금 혼자 있고 TV를 보고 있어서 쿵쿵거릴 게 없다, 이 시간에 남의 집에 와서 왜 그러시냐”고 했다. 그러자 B씨는 “나와서 때려봐”라고 소리치며 소란을 벌였다. 이후 B씨의 남편으로 보이는 동거인이 그를 데려가면서 상황이 일단락됐다.

    이달에는 A씨가 여름휴가를 보내고 돌아왔는데, 현관문에 발자국 수십개가 찍혀있었다. 위협을 느낀 A씨가 이달 8일 현관문 앞에 CCTV를 설치한 결과 이틀 만에 증거가 확보됐다. 그동안 A씨가 층간소음을 일으킨다며 민원을 수 차례 제기했던 아랫집 B씨가 A씨 집에 찾아와 현관문에 거세게 발길질하는 모습이 찍혔던 것. 약 30초 정도 되는 영상에 따르면 B씨가 현관문을 29차례 발로 걷어찬 것으로 파악됐다. 이 충격으로 CCTV 기기가 흔들리고, 복도에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 사실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땅집고] 경기 이천경찰서. /경기남부경찰청

    겁에 질린 A씨는 결국 경찰에 B씨를 신고했다. 경찰은 B씨를 재물손괴 미수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조사에서 “층간 소음 때문에 올라갔는데, 대답도 없고 문도 안 여니까 화가 나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A씨는 “우리는 아이도 없어서 (집에서) 뛸 이유도 없고 저도 실내에서 발 망치 소리도 안 나게 슬리퍼를 신고 생활한다”고 반박했다.

    가해자와 분리해 준다더니…같은 동 로얄층으로 이사시킨 LH

    A씨가 이 사건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언론에 퍼지자, 임대아파트를 관리하는 LH가 조치에 나섰다. 층간소음 오해로 인해 A씨와 B씨가 경찰까지 대동할 정도로 갈등을 빚자 분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문제를 일으킨 B씨를 다른 집으로 이동시키겠다고 약속한 것. LH는 임대아파트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같은 단지에서 동·호수를 변경하거나, 해당 지역 내 다른 임대주택으로 이사하는 방식으로 당사자들을 분리 조치하고 있다.

    그런데 안심하던 A씨에게 다시 한번 날벼락이 떨어졌다. LH가 이사시킨다던 B씨의 새집이 이곳과 떨어진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기존 아파트와 똑같은 동에서 층수만 이동시킨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인 A씨와 가해자 B씨가 엘리베이터까지 공유하는 같은 동에 사는 것이라 사실상 분리 효과가 떨어지는 셈이다.

    [땅집고] 가해자를 같은 동 꼭대기층으로 이사시킨 LH의 조치가 이해가지 않는다는 후속 사연을 올린 피해자. /온라인 커뮤니티

    지난 24일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제 LH 조치로 B씨가 이사 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사짐 센터 직원에게 물어보니 다른 동이나 아파트가 아닌 같은 동 꼭대기층(20층)을 배정받아 이사한다고 하더라”며 “LH의 조치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저는 앞으로도 가해자분들과 엘리베이터에 마주치면서 살아야 한다”는 후기를 올렸다. 이어 그는 “나도 위층 현관 발로 차면 탑층으로 이사 갈 수 있느냐. 처벌이 아니라 혜택이다“라고 호소했다.

    A씨의 후속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뉴스 보도하니까 (LH가) 그나마도 부랴부랴 조치한걸 텐데, 꼭대기 20층으로 배정하다니 19층 입주자는 뭔 죄냐“, ”이상한 짓했더니 펜트하우스를 주네, 이상한 짓도 할만하다“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LH는 가해자 B씨를 피해자 A씨와 같은 동으로 배치한 이유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LH 관계자는 “B씨의 기존 주택과 동일한 임대유형 및 면적의 주택이 해당 동에만 있어서 이 같은 조치가 이뤄졌다”며 “추가적인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내규에 따라 최상층으로 이주를 시행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임대아파트에서 B씨처럼 이웃에게 피해나 위협감을 주는 입주자들은 LH가 즉시 퇴거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현행 공공주택특별법이 정하고 있는 계약 해지 사유가 아니라면 임대주택에 정당하게 청약 당첨돼 입주한 사람을 내쫓을 수 없도록 되어있다. 현행법상 ▲주택을 고의로 파손한 경우 ▲주택 임대료를 3개월 이상 연체한 경우 ▲주택을 제 3자에게 불법으로 전대한 경우 등에 대해서만 LH가 강제 퇴거 조치를 취하거나 재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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