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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신도시나 제대로 짓고 지제역 개발해라" LH에 분노한 평택 땅주인들 [르포]

    입력 : 2023.08.21 07:42 | 수정 : 2023.08.21 15:59

    [땅집고] 지난 12일 평택지제역세권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평택지제역세권 공공주택지구개발 사업을 반대하는 내용으로 집회를 열었다. /독자 제공

    [땅집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평택에서 신뢰를 잃었습니다. 이미 지어진 고덕신도시나 제대로 지어놓고 새로 공급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거기다 토지를 수용한다니요. 헐값에 주민들 땅을 뺏어 땅장사 하겠다는 의도 아니겠습니까."(평택지제역세권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 A씨)

    지난 12일 지제역 인근 도로 곳곳에 평택지제역세권공공주택지구 사업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같은 날 ‘평택지제역세권 비상대책 총연합회’(이하 비대위)에 속한 300여 명의 주민들이 경기 평택시청 앞에 모여 윤석열 정부 주택 공급 정책인 '콤팩트시티' 사업을 철회하라는 주장을 폈다. 사업을 수용방식으로 진행해 토지소유주들이 제값에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업시행자로 선정된 LH에 대한 불신도 팽배하다. LH가 평택 고덕신도시에서 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생활 편의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평택 일대 주민들이 불편을 겪게 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땅집고] 지제역 인근 거리 곳곳에 강제수용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전현희 기자

    ■ 3만3000가구 들어서는 평택 ‘콤팩트 시티’, ‘수용방식’은 절대 안 돼

    지난 6월 정부는 경기 평택시 지제동, 신대동, 세교동, 모곡동 일대 453만1923㎡ 규모의 부지를 '평택지제역세권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고 3만3000가구의 콤팩트시티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부지에는 주거, 일자리, 교육, 문화, 의료시설 등과 함께 국가 첨단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융복합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평택시에 따르면 지난 6월 15일부터 공공주택지구 지구지정 절차를 시작했으며 계획대로라면 1년 뒤에 지구지정을 마친 뒤 LH가 사업시행자 지위를 얻어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를 진행한다.

    [땅집고] 평택지제역세권 공공주택지구 개발 구상도. /국토교통부

    하지만 지제역세권 일대 토지 소유주들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개발 계획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선 토지소유주들은 땅값을 헐값에 내놔야 하는 수용방식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당초 평택시는 2021년 6월 지제역세권 일대를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으로 고시한 뒤 2022년 평택시가 자체적으로 환지 방식으로 개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발표에 따라 토지를 수용해 개발하게 됐다. 환지방식으로 개발할 경우 토지가 수용된 토지주는 보상금 대신 개발 이후 조성된 땅(환지)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개발지역 인근 땅값이 비싸 주민들의 재정착이 어렵거나 보상금을 주기 어려울 때 적용하기 때문에 실제 토지 소유주들의 재산상 불이익이 크지 않다.

    반면 수용방식은 사업시행자가 땅을 전부 매수한 뒤 사업하는 방식이라 토지주들은 수용된 토지 감정평가액 수준으로 보상금을 받는다. 때문에 개발 이익에 대한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은 채 헐값에 토지 보상금이 책정된다. 기존 토지소유주들이 받은 수용 보상금으로 인근에 재정착하기 어려워 통상 택지개발지구에서도 보상금을 두고 시행자와 토지 소유주 간 갈등을 빚어 왔다.

    비대위 관계자 B씨는 "기존에 토착민들과 약속한 것을 뿌리치고 국토부의 수용 방식을 받아들인 평택시는 주민에 대한 배신"이라며 "평택시가 정책혼선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평택시에서는 2022년 환지방식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이 공식적인 행정절차는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평택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이 당시 역세권 개발을 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으로 정한 것은 맞지만 환지방식으로 할지 수용방식으로 할지 정해진 것은 없었다”며 “도시계획 측면에서는 개발 사업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환지 방식보다는 정부에서 수용하는 방식을 택해 현재 공공주택지구 지구지정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 평택 주민들 ‘LH’ 불신 극대화…아파트 장사 안 하고 인프라 제대로 갖춰 지을 수 있을까

    토지 소유주들은 지제역세권 개발 주체에 대한 불만도 제기한다. LH가 사업을 추진했던 평택 고덕신도시 2~3단계구역은 당초 개발 계획에 따라 국제학교, 외국대학, 국제교류단지 등 앵커시설이 들어오기로 했다. 하지만 토지이용계획이 변경돼 아파트가 들어서기로 하면서 주민들의 불신을 샀다. 게다가 도로나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부족해 주민들이 매일 아침 교통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LH가 사업을 시행할 경우 인프라 없이 도시만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비대위 관계자 C씨는 "화양지구나 브레인시티 등은 민간도시개발사업으로 인허가권자가 평택시라 학교 상업시설 등 어느 정도 기반 시설을 갖춰야 도시계획이 통과가 됐기 때문에 오히려 생활환경이 편리하다"며 "하지만 LH가 고덕에 지어놓은 도시 모습으로 미뤄봤을 때 지제역세권 일대 콤팩트시티도 도로, 주차장 등 인프라는 미비한 채 아파트만 지어 놓아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과잉공급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현재 평택에는 고덕신도시(5만8300가구), 브레인시티(1만8000여가구), 지제세교지구(6325가구)에서 아파트 7만여 가구가 이미 입주했거나 입주할 예정이다. 최근 반도체 경기가 악화하며 평택의 주요 일자리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공사를 늦추는 등 슬로우다운을 실시한 만큼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서 미분양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비대위 관계자 D씨는 “국토부에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새롭게 공공주택지구를 지정했다고 하는데 이러다 미분양이 발생해 주택시장 경기가 악화할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 환지방식으로 짓지 않는 한 무조건 사업 철회

    토지소유주들은 지제역세권공공주택지구 사업이 철회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비대위 관계자 E씨는 “과천 갈현지구, 화성 기산지구, 부산 내리2지구 등 주민들이 생활 터전을 잃는 데 대한 대책 없이 지구를 지정해 공공택지지구가 철회된 사례가 많다”며 “그동안 평택의 여러 공공주택지구가 수용당해 토지를 헐값에 내줘야 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사업이 백지화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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