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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열=집값'인 곳인데…이번 사교육과의 전쟁, 대치동 잡아낼까

    입력 : 2023.06.23 07:40

    [땅집고] “안 그래도 강남에서는 내신이 불리한데 지방으로 다시 집을 옮길까 봐요. 수능만 노리고 대치동으로 온 건데 벌써부터 대학 진학이 걱정이에요” (강남구 대치동 학부모 김모씨)

    “전세 시세가 5억원 이상 떨어진 데다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워 난감한 상황에 ‘폭탄’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죠” (강남구 개포동 주민 최수현씨)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킬러문항을 배제하기로 하면서 대치동 일대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흉흉한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 난이도뿐 아니라 ‘사교육 카르텔’까지 언급하면서 학원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군지에 칼날을 정조준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사교육 근절 대책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대치동에서는 학원뿐 아니라 학부모까지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처 방안’을 두고 학부모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교육열이 집값에 반영되는 대치동 일대 부동산 시장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땅집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한 학원 입구에 '최상위권 킬러 분석' 등 수업 내용이 안내돼 있다./김지호 기자

    정부와 국민의힘은 19일 사교육비 절감 방안 협의회 직후 공정한 수능이 되도록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기로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수능 문제를 언급하며 “이러면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 편이란 말인가”라고 지적하면서다. 수능을 5개월가량 앞둔 시점에서 정부 교육정책이 급변하면서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 일대에 비상이 걸렸다.

    윤 대통령이 고가의 강의로 배를 불린 학원가를 ‘카르텔’로 규정하면서 학군지 부동산 시장도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치동 등 강남 8학군 일대 부동산 가격이 높은 점은 이러한 사교육열이 집값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대치동 주민 이모씨(51)는 “안 그래도 부동산 경기가 꺽이면서 전세 시세가 전보다 많이 떨어져 걱정인데, 정부 교육 정책으로 학부모 수요가 더 줄어들까봐 걱정이다”고 했다.

    게다가 타이밍도 좋지 않다. 강남권 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시점에 이러한 정책 방향이 발표돼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구마을 1지구를 재건축한 ‘대치 푸르지오 써밋’(489가구)이 입주를 진행 중이고, 내년 1월에는 개포동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6702가구)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상대적으로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르엘’(330가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2990가구)도 입주를 앞두고 있다. 2021년 부동산 급등기에 고액의 전세금을 체결한 사례가 많아 역전세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입주 폭탄에다 ‘킬러문항 배제’ 폭탄까지 악재가 겹치고 있어서다.

    학부모들도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강남 학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고득점을 받기 위한 킬러문제를 알려주는 족집게 학원 때문에 대치동으로 왔는데, 정부 방침을 보고 좌절감이 많이 들었다”, “학군 프리미엄 하나만 보고 강남에 사는데 이제 그럴 메리트가 없는 것 아니냐”는 등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수도권·지방에 있는 상위권 학생 중에선 대치동에서 독점하는 킬러문항을 받기 위해 집을 옮기거나 방학 때마다 단기로 오는 학생들이 많다.

    2~3년 뒤 수능을 앞둔 학부모들도 고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등학생 1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강남에 전세집을 마련해 아들의 대학 진학 전까지 거주할 생각이었는데 다 꼬이게 생겼다”며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 난감하다”고 했다. 정부는 21일 공교육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사교육 이권 카르텔과 허위 과장광고 등 학원의 부조리에 대해 신고기간을 운영하고 고교학점제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땅집고] 현우진 메가스터디 대표강사는 2023 수능 대비 커리큘럼으로 '킬링캠프'라는 이름을 달았다. 수학 '일타강사'로 유명한 현 씨는 연봉만 200억원대로 알려졌다./메가스터디 캡처

    킬러문항은 최상위권 학생을 변별하기 위한 초고난도 문항으로 대치동 학원가에선 킬러 문항 전문학원들이 성업 중이다. 이른바 ‘킬러문항’ 마케팅을 앞세워 고액의 학원비로 엄청난 매출을 거둬들이고 있다. 강남 ‘일타 강사’들은 100억원대가 넘는 연봉을 받고, 이중 일부는 SNS 등에서 호화 주택 등을 과시하기도 했다. 정부가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대치동 학원가는 세무조사까지 걱정하고 있다.

    반면, 킬러문항이 사라져도 입시경쟁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에 전통 학군지의 위상은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수능 변별력이 떨어지면, 논술이나 면접 등 대학별고사가 새로운 사교육 대체재로 등장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 입시 전문가는 “교육 상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사교육 열풍이 없었던 적은 없다”며 “킬러문항이 사라져도 금방 대처 상품을 내놓는 이른바 ‘풍선효과’로 또 다른 사교육 대체재가 등장하기 때문에 전통 학군지가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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