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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인중개사에게 당했다" 경기 고양서 30억대 '이중 계약' 전세 사기

    입력 : 2023.06.15 07:30

    20년 토박이 부동산 중개인이 벌인 일
    집주인에는 월세, 세입자에게는 전세…'이중 계약' 피해자 50여명
    피해 금액은 최소 30억원…"아직 인지 못 한 피해자 더 있을 듯"


    [땅집고] 수도권 서북부 핵심 주거지인 경기 고양시에서 청년 등 주거 취약층을 대상으로 한 수십억원대 전세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집주인으로부터 전월세 계약 전권을 위임받은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에게는 월세 계약이라고 속이고, 세입자들과는 전세 계약을 체결한 뒤 전세보증금을 가로채는 전형적인 ‘이중 거래’ 수법을 썼다.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50여명이며, 피해 금액은 최소 3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사기 피해 규모는 앞으로 더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빌라왕’, ‘건축왕’ 관련 전세사기 사건과 달리, 이번 고양시 전세 사기는 ‘공인중개사’가 전세보증금을 챙긴 뒤 잠적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공인중개사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지 내 20년 토박이 부동산 중개인, ‘이중 계약’으로 세입자와 집주인 모두 속여

    전세 사기 발원지는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2002년 입주한 ‘예일센스빌1차’다. 최고 9층에 총 96실 규모 오피스텔이다. 경의중앙선 행신역 초역세권이면서 전세보증금 시세가 6000만~7000만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해, 인근 항공대 등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수요가 많았다.

    이 건물 1층 상가에 입주해 있는 ‘사계절부동산’ 대표 육모씨와 실장 김모씨가 ‘예일센스빌1차’ 오피스텔을 거의 전속으로 중개하다시피 했다. 건물 준공 시점부터 입주해 지금까지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토박이라, 대부분 집주인이 사계절부동산에 매물을 맡기고 세입자들도 이곳에서 ‘예일센스빌1차’ 전월세 계약을 체결해 왔다.
    [땅집고] 공인중개사발 이중 계약 전세 사기 사건이 발생한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예일센스빌1차' 오피스텔. /이지은 기자

    그런데 이런 전속 중개 구조가 이번 전세 사기극의 빌미로 작용했다. 오피스텔 특성상 월세 수익을 겨냥해 분양받거나 매수한 집주인이 대부분인데, 시세 변동 폭이 크지 않은 데다 거래 패턴이 반복적이라 편의상 사계절부동산에 계약 체결을 위임한 경우가 많았던 것. 육 대표와 김 실장은 이를 악용해 ‘이중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먼저 세입자에게는 대리인 위임장을 보여주며 “집주인이 해외에 있어 연락이 잘 안된다. 본인 명의로 된 통장에 전세보증금을 입금하면 집주인에게 전달해 주겠다”고 속여 수천만원 보증금을 받아냈다. 이후 집주인에게는 “월세 세입자를 구했다”며 매달 30만~40만원 정도 월세를 송금해, 실제로 월세 계약이 체결된 것처럼 행동했다.

    ■세입자 50여명에게 30억원 뜯어내…사건 인지 못 한 피해자 더 있을 듯

    하지만 전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세입자들이 사계절부동산 측에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이중 계약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려면 새 세입자를 구해야 하는데, 최근 전세 사기 여파로 젊은 층이 전세 계약을 꺼리면서 소위 ‘돌려막기’에 실패한 것.

    [땅집고] 경기 고양시 행신동 사계절부동산의 이중 계약 전세 사기 구조도. /이지은 기자

    이 오피스텔 세입자인 대학생 임모(28)씨는 2019년 사계절부동산을 통해 보증금 6500만원에 전셋집을 구했다. 2021년 계약을 연장하면서 300만원을 증액했는데, 계약 만기인 올해 퇴거를 결정했다. 하지만 사계절부동산 측에서 보증금 6800만원을 돌려주지 않자 부동산과 집주인 측에 각각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자 집주인이 연락해 “37만원짜리 월세 계약으로 알고 있는데, 웬 전세냐. 정말 처음 보는 내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임씨는 “군대에서 모은 돈과 부모님 자금을 더해 보증금 6800만원을 마련했는데, TV 뉴스에서나 보던 전세 사기를 내가 당하다니 너무 당황스럽고 놀랐다”고 했다.

    항공대 대학원생인 조모(28)씨 역시 같은 수법으로 전세보증금 6800만원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조씨는 “집주인이 이 단지에만 오피스텔 4채를 갖고 있는데, 최근 제가 보낸 내용증명을 받고선 직접 방문해 전세로 계약했냐고 묻더니 ‘아, 이 집도 똑같네’라고 탄식하더라”며 “집주인도 월세를 4~5월부터 못 받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땅집고] '예일센스빌1차' 전세 계약서 특약사항에 '임대인 개인사정으로 부재중이므로 사계절부동산이 대리 위임 계약하며, 전출시 보증금은 사계절부동산이 책임지고 반환해주기로 한다', '계약금 및 잔금은 사계절부동산에 입금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피해자 제공

    지금까지 확정된 피해자는 22명이지만 사계절부동산의 중개를 통해 전셋집을 구한 세입자가 50여명에 달하며, 대부분이 보증금 6000만~7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한 점을 고려하면 피해 금액이 최소 3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피해자가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사계절부동산이 행신역 일대에서 20년 넘게 중개 활동해 온 만큼, 인근 ‘예일센스빌2차’·‘GL리치빌’ 등 다른 오피스텔 단지에서도 적지 않은 전세 거래를 중개해 왔기 때문이다.

    행신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아직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아 사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세입자들도 잠재적인 피해자라고 보면 된다”며 “사계절부동산과 매물을 공유하며 공동 중개했던 중개사들도 사기 소식을 듣고 일제히 난감해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집주인·인근 상인도 피해자…공동 계약한 중개사들 책임론 불거져

    사계절부동산의 사기 행각으로 피해를 본 건 세입자뿐만이 아니다. 주범으로 지목되는 육 대표와 김 실장은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잠적해 버린 사계절부동산 일당 때문에 월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집주인은 물론이고, 피해 오피스텔을 공동으로 중개했던 행신역 일대 공인중개사들을 비롯해 사계절부동산 측에 돈을 빌려줬던 지인들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예일센스빌1차’ 오피스텔 2채를 보유한 집주인 B씨는 “1년 미만 단기 월세 계약인 줄 알고, 계약 만료 시점에 세입자를 새로 구해야 하지 않느냐고 사계절부동산 측에 연락했는데 받지 않아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직접 방문했다가 전세 사기 사건을 알게 됐다”며 “20년 넘게 믿고 집을 맡긴 중개사무소인데 피해 사실에 너무 놀라 밤새 잠도 못 잤다”고 했다.

    이 단지 경비실에서 근무하는 C씨는 “오랜 기간 알고 지내던 사계절부동산이 ‘세입자를 구하면 금방 갚겠다’고 해서 최근 700만원을 빌려줬는데 최근 잠적해 버린 사실을 알았다. 근처 상인들 중에는 수천만원을 빌려준 사례도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땅집고] 경기 고양시 행신동 사계절부동산 출입문에 한 세입자가 발송한 내용증명 관련 우편물 도착안내서가 붙어 있다. /이지은 기자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현행 공인중개사법 제35조에 따르면, 본인이 중개한 거래에 문제가 생겨 징역형 이상 선고를 받았다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소하도록 되어 있다”며 “경찰 조사 결과 공동 중개한 공인중개사들에게 고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이들도 자격 등록 취소 등 처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피해 세입자들은 사계절부동산 육 대표와 김 실장을 상대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공인중개사협회에도 피해 사실을 접수한 상태다.

    김예림 법무법인심목 변호사는 “현재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사기죄로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과거 공인중개사가 50억원 정도 규모 이중 계약 사기를 저질렀다가 징역형을 받은 사례가 있다”며 “아직 전세 계약 만기가 도래하지 않았으나 보증금 반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예비 피해자들 역시, 신뢰 관계가 완전히 깨진 점을 들어 임대차계약 해지를 요구한 뒤 보증금 반환 소송을 청구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땅집고 취재진은 ‘예일센스빌1차’ 전세사기와 관련해 사계절부동산 육 대표와 김 실장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결국 닿지 않았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박기홍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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