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6.04 07:48 | 수정 : 2023.06.04 11:14
[땅집고] “건물 완공하고 증원 인가도 받았는데 갑자기 보육진흥원에서 우리 어린이집이 아동학대 어린이집에나 주는 D등급이라고 합니다. 스프링클러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서 그렇다는데, 억울해서 몇 달째 잠을 설치고 있어요. 아동학대 어린이집과 동급인 어린이집에 누가 아이를 보내겠습니까. 그냥 문을 닫으라는 거죠.” (서울 은평구 어린이집 원장 이모씨)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어린이집이 한국보육평가원이 실시하는 보육 품질 평가에서 D 등급을 받아 폐원 위기에 처했다. 한국보육평가원은 3년 주기로 전국의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영·유아 인권과 안전, 위생 등을 평가해 A, B, C, D 등급을 부여한다. D등급은 ‘아동학대’가 발생한 어린이집에서나 받을 수 있는 가장 낮은 단계의 하위 등급이다. D등급을 받으면 어린이집 문을 닫는 건 시간문제다. 어린이집 평가 등급은 ‘아이사랑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보육 품질이 최악인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부모는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해당 어린이집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D등급을 받은 이유가 아동학대도 아니고 다름 아닌 ‘스프링클러’ 때문이어서다. 시설 인허가를 내주는 지자체와 보육 품질을 평가하는 한국보육평가원의 이중 잣대로 인해 ‘아동학대 어린이집’으로 낙인찍혔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3년 전(2020년) 이 어린이집은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소방법)에 근거해 관할 은평구청으로부터 건축 인가와 소재지 변경 및 증원 인가 등을 받았다. 소방법에 따르면 어린이집 연면적이 600㎡ 이상인 시설에 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해당 어린이집 연면적은 309㎡에 불과해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가능하다. 간이 스프링클러는 물탱크가 필요한 일반 스프링클러와 달리, 각 층에 소형 물탱크를 두고 있으며 방수 물량 등 전반적인 성능이 일반 스프링클러보다 낮다. 현재 이 어린이집에는 간이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다.
반면 한국보육평가원은 해당 어린이집에 대한 보육 품질 평가 당시 영유아보육법을 적용했다. 이 어린이집은 4층 규모이므로, ‘조기반응형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라는 것이다. 조기반응형 스프링클러는 일반 스프링클러보다 화재 감지 온도가 낮게 설정돼 화재 시 보다 빠른 대피가 용이하다. 일반적인 스프링클러는 내부 온도가 (섭씨) 약 70도일 때, 조기반응형 스프링클러는 약 60도일 때 반응한다.
소방법과 영유아보육법에 명시한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이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법을 준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은평구청에 따르면 어린이집 신축, 증축을 할 때는 소방법만 적용해도 노유자시설(노인·아동·장애인 시설) 사용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어린이집 측이 구청에 건물 신축 및 증축 신고를 하면 1차로 건축과에서 건물이 적법하게 지어졌는지 살펴보고, 2차로 보육지원과에서 화재 관련 시설 확보 여부와 면적에 따른 수용 가능 인원 등을 확인한 후 인·허가를 내준다.
은평구청에 왜 소방법을 적용했는지를 물었다. 구청 관계자는 “(어린이집 증축 및 신축 인가 사례가 있을 때에는) 매년 보건복지부가 발간하는 '보육사업 안내' 책자를 활용한다”고 했다. 복지부 보육사업 안내 책자에 따르면 ‘소방법’에 근거해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으면 어린이집 인가를 해주도록 돼 있다.
해당 어린이집 원장 이씨는 “해당 매뉴얼뿐 아니라 교육사업 안내 책자에도 스프링클러와 관련해 자세히 적혀있는 부분이 없었다”며 “저희 어린이집처럼 스프링클러로 인해 폐원을 걱정하는 어린이집이 경기 시흥과 부산 등 전국에서 10여곳에 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 조기반응형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게 최선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이 건물 구조상 20톤 규모 물탱크 등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소방ㆍ건축 업계에 자문을 구한 결과 건물이 경사진 곳에 있어서 옥상 외엔 물탱크를 놓을 공간이 없다고 한다”며 “그런데 옥상에 물탱크를 올리기엔 건물 안전이 우려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전문가 역시 이러한 공사가 쉽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간이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건물에 조기반응형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란 매우 어렵다”며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5층 건물이라면 수억원에 달하는 공사 비용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행정소송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편, 이에 대해 보육진흥원 관계자는 “답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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