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5.20 09:11
[땅집고] 2030 젊은층이 선호하는 ‘힙’한 식당과 카페, 주점 등이 몰려들면서 ‘힙지로’라는 별칭을 얻게 된 서울 을지로 상권. 이 일대 대로변을 걷다 보면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높이가 일정한 낡은 건물들이 줄줄이 들어선 가운데, 이웃해 있는 건물들끼리 벽을 맞대고 있는 형태다.
이 같은 건축 양식을 ‘맞벽 건축’이라고 한다. 현행 민법 제242조에 따라 건물을 지을 때는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최소 50cm 이격거리를 둬야 한다. 이 규정 덕분에 건물과 건물 사이에 최소 1m 이상 간격이 생겨,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미관을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한 지역 등에선 인접한 토지들 주인끼리 서로 합의한 경우라면 건물과 건물을 딱 붙여서 짓는 맞벽 건축이 가능하다.
그럼 을지로 일대에 유독 맞벽 건축물이 많은 이유는 뭘까. 과거 정부가 ‘도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려는 목적’으로 맞벽 건축 형태를 활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을지로를 비롯한 서울 도심에 현대식 건물이 본격 생겨나기 시작한 1950~1960년대는 한국 전쟁을 막 마친 시기였다. 당시 을지로에는 쓰러져 가는 초가집, 판잣집, 목조건물이 빼곡했다. 이에 정부가 서울 도심 간선도로변에 들어서는 건물들 최저 층수를 제한해, 본격적인 도시 축조에 나섰다. 당시 현대적인 도시라면 격자형 도로와 고층 건물로 이뤄져야 한다는 식의 개념이 지배적일 때라, 눈에 띄는 간선도로변에는 너무 낮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산이나 한강변 등 자연경관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건축물 최고 층수를 제한하고 있는 현재의 정책과 정반대인 셈이다.
맞벽 건축에 따라 을지로를 비롯한 도심 대로변에는 비슷한 높이로 지은 건축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형태로 들어서게 됐다. 이렇게 대로변에 ‘건물 바리케이드’를 세우니, 그 뒤편에 있는 초가집 등 낡고 초라한 풍경을 감추는 효과도 낼 수 있었다. 통일적인 입면으로 들어선 맞벽 건축군이 전쟁 복구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맞벽 건축은 토지 소유자들에게도 이득이었다. 땅에 건물을 올릴 수 있는 면적이 한정돼 있는데, 맞벽 건축을 활용하면 개발 가능한 토지 면적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토지주들은 옆 건물과 출입구, 계단, 복도 등 공용 공간을 공유하는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을 짓기도 했다. 대신 맞벽 건축물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불이 바로 옆 건물에 옮겨붙어 대형 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맞벽은 반드시 방염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시간이 지나 도심 개발이 성숙 단계에 들어선 지금은 맞벽 건축에 대한 필요성이 사라졌다. 건축 및 도시 미관을 평가하는 관점이 달라진 영향이 크다. 과거에는 전쟁 부산물을 가리기 위해 층수가 일정한 건물 여러 채를 맞붙여 지었지만, 현재는 디자인이나 설계를 차별화한 건물이 아름답다고 여겨지고 있는 데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작은 공원이나 벤치 등을 포함한 공공용지를 만들어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는 것이 사회를 위한 건축이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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