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5.18 07:43 | 수정 : 2023.05.18 09:34
[땅집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대상지 발표 전부터 해당 지역에 집을 짓던 건설업체들이 억울하게 현금 청산을 당할 위기에 놓였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피해 건설업체만 14곳이며, 각 업체가 지은 주택을 분양받은 9명 역시 집을 잃게 될 상황에 처했다.
‘오세훈표 정비사업’으로 불리는 신통기획은 서울시가 통합 심의를 거쳐 정비구역 지정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여주는 정비사업 방식이다. 서울시 지원으로 정비구역 지정까지 걸리는 기간을 기존 5년에서 2년 정도로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신통기획 공모를 두 차례 진행했으며, 총 46곳이 선정됐다.
신통기획 대상지로 선정되면 투기 방지를 위해 권리산정 기준일을 정하게 되는데, 서울시는 권리산정 기준일을 ‘구역지정일’이 아닌 ‘공모일’로 설정했다. 통상 민간재개발 사업에서 권리산정 기준일을 구역지정일과 동일한 날로 설정하거나, 구역지정 직전 특정 날짜로 정하는 것보다 더 빠른 셈이다.
권리산정 기준일이란 재개발 등 정비사업장에서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기준 날짜를 말한다. 즉 신통기획 구역에서 권리산정 기준일 이후에 주택을 취득하거나 단독주택을 허물고 다세대주택으로 바꾸는 소위 ‘지분쪼개기’를 한다면, 이들은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지 못하고 추후 현금 청산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1차 신통기획은 2021년 9월 대상지 공모를 시작했는데, 사업 대상지는 같은 해 12월 발표했다. 이에 따라 권리산정 기준일은 2021년 9월이 된다. 즉 공모일과 권리산정 기준일 간에 3개월 정도 시차가 발생하게 되는 구조다.
■신통기획 전부터 집 짓기 시작한 건설사들, 하루아침에 투기꾼으로 몰려
그런데 서울시가 신통기획 권리산정 기준일을 ‘공모일’로 정하는 바람에 부작용이 발생했다. 공모일 훨씬 전부터 주택 사업을 시작했던 일부 건설업체들이 갑자기 현금 청산 대상에 편입된 것이다.
최홍식 ㈜광나루종합건설 대표는 2021년 3월 서울 중랑구 면목동 일대 120평대 토지를 약 30억원에 매입했다. 이 땅에 한 가구당 침실 3개, 화장실 2개로 구성하는 총 10가구 규모 대형 빌라 건물을 짓고 6억원 정도에 분양하려는 목적이었다. 같은 해 6월 중랑구청으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고, 8월 착공했다. 준공 예정일은 2022년 1월이었으며 공사비로 총 15억원 정도가 들었다.
그런데 2021년 12월 최 대표 빌라를 포함한 면목동 일대가 1차 신통기획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건물이 완공을 코 앞에 둔 상황인데, 중랑구청으로부터 ‘사업지가 서울시 신통기획 구역이 됐기 때문에 앞으로 현금 청산 대상이 될 것’이라는 통보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현금청산 대상이라고 소문이 난 건물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권리 행사를 못 한다고 호소했다. 신통기획 재개발로 허물어질 건물이어서 주택을 분양받으려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전월세로 임대하기도 어려워, 사업에 투입했던 원금조차 회수하기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아직 신통기획 사업 진전이 없는 터라 현금 청산일이 최소 5~7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때까지 부담해야 할 금융 이자도 막대한 상황이다.
㈜광나루종합건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업체가 총 14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업장 위치는 강북·광진·도봉·동작·성북구 총 6개구며, 대부분이 10~18가구짜리 소규모 빌라로 총 280여가구에 달한다. 주택을 이미 분양받은 수분양자도 9명으로 집계됐다.
최 대표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정상적으로 빌라를 짓고 분양하려던 의도인데 서울시로부터 투기꾼으로 몰려 너무 억울하다. 신통기획 1차 발표일로부터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매달 금융 이자만 1800만원씩 내고 있어 회사가 도산하기 일보 직전”이라며 “구청으로부터 정상적인 건축 허가를 받고 주택 사업을 진행했을 뿐인데 갑자기 신통기획 제도가 생기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고 했다.
■서울시 “원칙 변경 어려워…건설업체가 알아서 자구책 마련해야”
서울시도 신통기획으로 인한 건설업체 및 수분양자 피해 상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신통기획 사업에서 투기를 원천 차단하고 원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권리산정일을 공모일로 정한 만큼, 소수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원칙을 변경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피해 건설업체 소식을 접하고 구제 방안에 대해 계속 검토해 봤지만, 원칙과 기준이 흔들리면 전체 정비사업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며 “현재로서는 보존등기가 아닌, 허가를 받거나 착공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건설업체들의 권리를 인정해 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현재로선 피해 건설업체들이 각자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자구책을 마련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초 대법원이 권리산정 기준일이 지났더라도, 기준일 바로 다음 날에 건물이 이미 객관적·물리적으로 완성된 상태였다면 집합건축물대장에 등록되거나 등기부등본에 등기되지 않았더라도 분양받을 권리를 인정하는 판례(2010다71578)를 내렸다는 것.
■논란 의식했나?…서울시, 권리산정 기준일 설정 ‘자치구’로 이관
하지만 건설업체들은 ‘알아서 소송하라’는 식의 서울시 태도가 무책임하다고 입을 모은다. 영세 건설사들은 주택 사업장 한 곳에서만 문제가 생겨도 자금이 묶여 도산 위기에 처하는데, 매달 생돈을 날리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까지 떠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 건설업체들은 서울시가 신통기획 권리산정 기준일 선정 방식을 갑자기 바꾼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달 7일 서울시는 “앞으로 신통기획을 공모 방식이 아닌 ‘수시 신청’으로 전환하고, 권리산정 기준일은 ‘자치구가 제시하는 추천일·별도요청일’로 바꿀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신통기획 권리산정 기준일에 따른 피해 책임 소지가 서울시에서 25개 자치구로 넘어가게 되는 셈이다.
피해 건설업체 A사는 “1~2차 신통기획 사업에서 부작용이 생기니 서울시가 각 자치구에게 권리산정 기준일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느껴진다”며 “서울시는 피해 업체들이 오세훈 역점사업에 흠집을 내려는 것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신속히 구제 방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박기홍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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