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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받아주면 우린 끝" 인천 전세사기꾼 딸 개인회생 신청에 피해자 피눈물

    입력 : 2023.05.17 07:30 | 수정 : 2023.05.17 10:39

    [땅집고] “보증금을 되찾으려고 ‘건축왕’ 딸 남모씨의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하려 했는데, 남씨가 개인회생 절차를 밟았다네요. 법원이 회생 신청을 받아주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인천 미추홀구 그레이스타워 피해자 대표 강민석씨)

    최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인 ‘건축왕’의 딸이 회생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피해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법원이 임대인 남씨의 회생 신청을 받아들이면, 전세금을 돌려받기가 더욱 어렵다. 특히 피해자들은 남씨가 개인 회생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회생 절차를 진행했다며 ‘시간 끌기’라고 지적했다.

    현재 남씨는 부친(건축왕)에게 명의를 빌려주고,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경찰 수사망에 올라 있다. 그는 총 170가구(아파트 88가구·오피스텔 82가구)로 이뤄진 미추홀구 그레이스타워 대부분 호실의 소유주이지만,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반환해 주지 못하고 있다.

    [땅집고] 지난달 6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광장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식에서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관계자가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뉴스1

    ■ “피해자들, 남씨 딸 ‘개인회생’ 조건 미충족…시간 벌기에 불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최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 ‘건축왕’의 딸 남씨는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이후 법원은 남씨에게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포괄적 금지명령’은 회생절차 개시 신청에 대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 강제집행 등 금지를 명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씨 소유의 재산에 대한 채권자들의 강제집행이나 가압류, 경매 등의 절차는 모두 중단됐다. 법원의 회생절차가 개시되기까지는 통상적으로 1~2달여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이로 인해 피해자들의 보증금 반환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남씨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가압류 절차를 밟던 중이었으나, 가압류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 피해자 대표 강씨는 “변호사에게 가압류를 신청할 남씨의 재산 목록을 전달하는 날 남씨의 회생 신청 사실을 알게 됐다”며 “피해자 50여명이 보증금 반환을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고 머리를 맞댔는데,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특히 피해자들은 남씨의 회생 신청 목적이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개인회생이 받아들여지려면 급여나 영업으로 인한 소득이 있어야 하고, 채무 한도(무담보 10억원·담보 15억원)가 정해져 있는데 남씨가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어서다. 강씨는 “남씨는 여러 회사 대표로 올라 있으나, 임대소득 외 소득이 없고, 그레이스타워 보증금만 해도 수십억원에 달한다”며 “그가 피의자로 경찰 수사망에 올라있는 만큼,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점을 확보하기 위해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땅집고]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 피해 가구 현황./김서경 기자

    ■ “남씨 딸 수법 부친과 같고 여러 회사 소유…회생 막아야”

    임차인들에게 가압류는 ‘최후의 보루’였다. 이들은 최우선 변제금도 돌려받지 못한다. 최우선 변제금은 세입자가 살던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앞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최우선 변제금을 받는 기준은 보증금 상한액에 따르는데, 이 상한액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에 따라 2∼3년을 주기로 개정된다. 인천 미추홀구가 속한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의 경우 보증금이 1억4500만원 이하(올해 2월14일 기준)면 최우선 변제액 48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건축왕’ 딸 남씨는 이 아파트 준공 시점인 2019년 초에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다른 건물을 지었다. 2019년 3월28일자로 30억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된 이유다. 근저당이 설정된 경우에는 최우선 변제금의 적용 시점이 담보권 실행일로 정해진다. 이 아파트 A호실의 등기부등본을 떼 봤더니 2019년 2월12일, 1억4160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지금 기준이라면 최우선 변제 대상이 되지만, 근저당 담보권 실행일 기준으로 그레이스타워의 최우선 변제 보증금이 1억원 이하여서 A호실 임차인은 최우선 변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레이스타워 피해자를 비롯해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이 최우선변제를 받을 수 없는 이유다.

    [땅집고] '건축왕' 딸 남모씨 소유 회사 현황. /김서경 기자

    피해자들은 남씨가 범죄에 깊이 개입한 정황으로 그가 대표와 주주로 있는 회사 목록 등을 제시했다. 남씨는 아파트 수십채 보유뿐 아니라. 종합건설회사와 건물관리회사, 공인중개사 사무소 등 사건 유관업종 회사의 대표를 맡아왔다. 또한 그는 매출 수백억원대 회사를 운영한 이력도 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J종합건설의 2021년도 매출액은 670억원(NICE평가정보)이 넘는다. 영업이익은 160억원 정도다. B커피 대표 명의는 2019년 ‘건축왕’ 남씨에서 딸 남씨로 변경됐다. 이 커피전문점 등을 비롯해 일부 회사는 현재 폐업된 상태다.

    피해자 B씨는 “남씨는 운영 업종과 수법이 부친(건축왕)과 거의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인천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지난달 말, 건축왕 딸 남씨를 공동주택 161채의 전세보증금 125억원을 받아 가로챈 부친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그에게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등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땅집고]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그레이스타워 세입자들이 임대인 남모씨의 회생 절차를 중단해달라며 법원에 낸 탄원서 일부. /독자 제공

    그렇다면 남씨의 회생 신청은 받아들여질까. 법조계에서는 ‘남씨의 상환 여력’에 주목했다. 법무법인 심목의 김예림 변호사는 “회생은 신청자가 채무를 갚을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있을 경우에 받아들여진다”며 “채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금액이나 기간을 조정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즉, 남씨 소유의 다른 회사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따라 판가름 난다는 것.

    또한 김 변호사는 남씨가 양형을 줄이기 위해 회생 신청을 했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는 “채무를 갚지 않았기 때문에 추후 양형이 정해질 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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