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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아도 거제로는 안 옵니다" 새 출발 앞두고도 부동산 활기 잃은 거제

    입력 : 2023.05.15 07:46 | 수정 : 2023.05.16 13:49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서울·수도권 주택 시장에 조금씩 온기가 돌고 있다. 그러나 지방 시장은 여전히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땅집고가 위기에 처한 지방 도시 부동산 시장을 돌아봤다.

    [땅집고] “한참 조선소 잘됐을 땐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출퇴근 택시 잡는 데만 30분에서 1시간이 걸렸어요. 그만큼 노동자도 많고 근처 식당도 어디를 가나 미어터졌는데 이젠 그 시절 다 갔지요. 아무리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다고 해도 거제 경기가 예전만치 회복하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나 같아도 평택으로 가지 그 돈 받고 거제로는 안 올 것 같습니다.” (경남 거제 아주동 거주민 A씨)

    [땅집고]대우조선해양 조선소 남문 입구. 최근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에 인수돼 '한화오션'이라는 이름으로 사명을 바꿀 계획이다. /배민주 기자

    12일 낮 12시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있는 경남 거제 아주동을 찾았다. 점심때였지만 인근 식당을 이용하는 근로자들은 많지 않았다. 식당보다는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구입해 식사를 하는 근로자들이 눈에 띄었고, 외지인도 간간이 보였다.

    조선소 남문 입구 바로 앞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B씨는 “최근에 일용직하고 외지인이 약간 늘어난 게 느껴진다. 한화 인수 소식 들리고 나서 이 일대에 기대감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면서 “이쪽은 하청업체 사람들이 많은 편인데 이 사람들이 돈이 없으니까 식당도 안 가고 편의점에서 빵이나 우유 같은 거 사서 간단히 끼니 때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조선업 수주 물량이 늘고,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에 인수되는 등 거제에 호재가 발생하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은 미동을 하지 않고 있다. 아주동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외지인이 들어오다 보니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원룸이나 오피스텔 정도는 거래가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아파트 시장은 급매도 문의가 거의 없다”면서 “부동산 경기 좋았을 때 투자목적으로 아파트를 사뒀던 다주택자가 급매로라도 처분하고 싶어서 내놓고는 있지만, 반응이 없다”고 했다.

    [땅집고] 대우조선해양 조선소가 있는 경남 거제 아주동 일대 모습. 조선업 수주 호황 소식이 전해졌음에도 아파트 가격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배민주 기자

    실제로 아주동 일대 아파트 가격은 2021년 이래로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2021년 12월 2억7267만원에 거래됐던 ‘거제아주KCC스위첸’ 전용면적 85㎡는 올해 4월 2억2000만원에 팔렸다. 2년 새 5000만원가량이 떨어진 것이다. 초등학교가 인근에 있는 이른바 ‘초품아’ 아파트에 2017년 입주로 비교적 선호도가 높은 곳임에도 하락세를 면하지 못했다.

    거제아주KCC스위첸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거제마린푸르지오’ 아파트 하락폭은 더 크다. 거제마린푸르지오1단지 전용 85㎡는 2021년까지도 2억원 초중반 대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거래되다 올해 4월 1억9000만원에 직거래로 거래됐다. 거제마린푸르지오2단지 전용 85㎡ 또한 2021년 4월 2억4300만원까지 거래됐지만, 올해 2월 1억8800만원에, 3월에는 1억9000만원으로 직거래를 통해 거래되면서 1억원대로 가격이 내려앉았다.

    거제 구도심 지역이자 아주동 옆에 있는 옥포동 아파트 가격도 하락세가 뚜렷했다. ‘e편한세상옥포1단지’ 전용 85㎡는 2021년 3억2200만원에 거래됐지만, 올해 3월 2억6000만원에 거래되며 2년 새 6000만원 정도 하락했다.

    거제 ‘엘크루랜드마크’ 전용 85㎡ 또한 2021년 당시 3억4500만원까지 거래됐지만, 올해 2월에 들어서 2억8250만원에 매매가 이뤄졌다. 옥포동에서 유일한 대형마트인 롯데마트와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거제반도유보라’ 아파트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24년 1월 입주를 앞둔 이 아파트 전용 85㎡ 분양권은 2022년 4억491만원에 거래됐고, 올해 3월에는 3억6170만원에 팔렸다.

    [땅집고] 삼성중공업 근로자가 주로 거주하는 거제 고현동에 'e편한세상거제유로스카이'가 올해 11월 입주를 앞뒀다. 해당 아파트 분양권은 '마피(마이너스프리미엄)'가 붙어 분양권보다 낮은 가격에 매물로 나왔다. /배민주 기자

    [땅집고] 입주를 시작한지 1년이 다돼가는 고현동 'e편한세상거제유로아일랜드' 아파트 내 상가 모습. 대부분의 상가가 공실 상태였다. /배민주 기자

    삼성중공업이 근처에 있어 이른바 ‘삼성타운’이라고 불리는 고현동에는 분양권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하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도 등장했다. 올해 11월 입주를 앞둔 ‘e편한세상거제유로스카이’ 전용 85㎡는 분양권 가격보다 약 2000만원에서 3000만원 낮은 가격에 매물이 올라와 있었다.

    지난해 6월 입주를 시작한 옆 단지 ‘e편한세상거제유로아일랜드’ 전용 85㎡는 2021년 4월 4억1448만원에 거래됐고, 최근 3억9650만원에 거래됐다. 가격 낙폭은 크지 않았지만 아파트 내 상가는 어림잡아 10개 중 8개 정도가 비어 있는 상황으로 입주한 지 1년 정도가 흘렀음에도 공실이 즐비했다.

    고현동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거제에서도 제일 좋은 아파트로 꼽히는 게 e편한세상거제유로아일랜드하고 e편한세상거제유로스카이인데 유로아일랜드는 아직도 100가구 정도가 비어 있다”면서 “조선업 호황 소식이 들렸을 때 기대감을 가지고 샀던 사람들이 감당하기가 어려워지자 마피를 감수하고서라도 내놓고 있다. 아파트에 사람이 안 들어오니 상가에 입점하려는 수요도 없다”고 했다.

    [땅집고] 아주동에 입주를 앞둔 'e편한세상유로스카이' 아파트 공사 모습. /배민주 기자

    앞으로 3년간 거제에는 총 5개 단지, 3882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한내리 ‘거제한내시온숲속의아침뷰’가 올해 6월, 고현동 ‘e편한세상거제유로스카이’가 올해 11월 입주를 앞두고 있고, 내년 1월에 상동동 ‘더샵거제디클리브’와 옥포동 ‘거제반도유보라’, 그리고 2025년 3월 아주동 ‘거제한신더휴’가 입주를 예정하고 있다. 거제한내시온숲속의아침뷰 전용 75㎡와 나머지 4개 아파트 단지 전용 85㎡ 평균 분양가는 3억8456만원 수준으로 거제 아파트 평균 거래가가 2억196만원에 형성된 것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문제는 이런 수요를 뒷받침할 근로자가 더는 거제에 없다는 것이다. 2014년까지만 해도 16만8000명에 달했던 현장 인력은 2021년 즈음에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 노동 강도가 세고 위험이 큰 데도 임금을 동결하는 등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못하자 주요 인력들이 평택을 비롯한 다른 사업장으로 빠져나갔다.

    거제 인구수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이에 2017년 25만 명을 넘기며 정점을 찍었던 인구수는 2019년 들어 24만명대로 감소했다. 감소세가 지속하면서 현재는 23만명대까지 줄어들었다.

    조선업 수주가 늘어나고, 업황이 개선된다고 할지라도 자금 여력이 있는 원청 근로자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낮아 공급을 앞둔 아파트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현재 거제로 유입되고 있는 인구는 일용직 근로자나 외지인이 대부분이다.

    조선업은 흑자로 돌아서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거제 부동산 시장은 향후 몇 년간은 불투명할 전망이다. 박성환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창원, 마산 같은 인근 대도시 주택 가격도 하락폭이 큰 상황에서 중소도시인 거제 부동산 시장까지 온기가 돌아오기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면서 “한참 조선업 경기가 좋았을 땐 주택 수요를 받쳐줄 근로자들이 충분했지만, 본격적으로 조선업황이 좋아진 것도 아닌 환경에서 당분간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거제=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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