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5.09 08:11 | 수정 : 2023.05.10 07:48
[땅집고] “아무리 비가 많이 쏟아졌다고 해도 입주 이틀 만에 옹벽(축대벽)이 무너지는 게 말이 되나요? 바로 옆 단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토사물이 거기로 쏟아졌으면 얼마나 큰 피해가 있었을지…. 무너지지 않은 옹벽도 비 폭탄이 떨어지는 이번 여름을 견딜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경남아너스빌 입주예정자 신영균 씨)
지난 6일 오후 3시49분께 인천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높이 1m, 길이 20m 규모 옹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입주가 시작되자마자 발생한 이번 붕괴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부실시공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시공사 측은 8일 무너진 옹벽 잔해를 모두 치웠으며 단지 내 나머지 옹벽에 대한 안전성 문제를 지자체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단지는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인천용현경남아너스빌’. 인천용현지역주택조합이 시행하고 SM경남기업이 시공했다. 지하 3층~지상 37층 총 303가구로 지난 4일부터 입주했다. 주택형은 전용 59㎡와 75㎡로 이루어져 있고, 오피스텔은 전용 59㎡만 69실이 있다. 아파트 전용 59㎡ 일반 분양가는 최대 3억7094만원이었으나, 지난달 2억4700만원까지 분양권 가격이 내려간 상태다.
이 아파트는 전체가 옹벽에 에워싸여 있어 입주민들은 다른 옹벽마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입주예정자 신영균 씨는 “시공사가 지하 주차장과 공용부 누수 등 중대 하자를 처리해 주지 않고 있다”며 “주변에 놀이터나 초등학교가 있어서 장마철에 인명 사고가 나진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단지 옆 신선초등학교까지 거리는 300여m에 불과하다. 각각 준공 38년 차와 33년 차를 맞은 ‘해안성신’(150가구), ‘용현한양2차’(352가구)도 인접해 있다. 사고 현장 목격자들은 무너진 옹벽과 용현한양2차 내 놀이터가 붙어있어 자칫 더 큰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입주예정자들은 지하 주차장과 실내 공용시설 누수 등 하자가 넘친다면서 부실시공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진행한 입주민 사전점검 당시 300가구에서 모두 1만6000건에 달하는 하자를 확인했다. 일부 동의 경우 33층에서 소방밸브가 고장 나면서 지하 3층까지 물 폭포가 발생해 엘리베이터를 전면 교체했다.
SM경남기업은 당초 조경용 블록을 외부에 쌓고 내부에 토사를 채우는 방식으로 옹벽을 시공했으며, 이번 붕괴 사고는 갑작스러운 비바람으로 토사에 물이 차면서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SM경남기업 관계자는 “현재 무너진 부분은 보수·보강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자체와 협의해 나머지 1m 정도 높이 옹벽을 대상으로 보강 시설을 설치하는 논의를 진행 중”이라면서 “현재 2가구 정도가 입주를 마쳤고 하자 처리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옹벽이나 지하주차장 붕괴 등 토목 사고가 잇달아 터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엔 오는 12월 입주 예정인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 현장에서 지하 주차장 지붕 층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을 맡은 공공분양 아파트다. 작년 6월 GS건설이 시공한 서울 은평구 증산동 ‘DMC센트럴자이’에서도 조경용 바위들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입주 두 달 만에 단지를 둘러싼 약 4m 높이 석벽을 이룬 개당 1톤이 넘는 조경용 바위 수십 개가 떨어지며 인도를 덮쳤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옹벽 붕괴 사고 원인을 건설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는다. 산사태 전문가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지역 지질과 물 흐름에 맞게 배수시설을 설치하지 않으면 옹벽은 쉽게 무너진다”며 “배수 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토목 업체가 부실시공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공사는 건축과 토목 공사로 분류한다. 건물을 짓는 주공정인 건축 분야는 시공사가 맡지만, 땅파기 등 토목 공사는 부대공사(보조공사)로, 시공사의 하청을 받은 하도급 업체가 담당한다. 이 때문에 건축 기술자인 시공사는 토목 공사를 얼마나 견실하게 진행했는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이 교수는 “안전보다 경제성에 치중하다보니 공사 중 지반 침하가 자주 발생하고, 공사 끝나고도 옹벽 붕괴가 전국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아파트 공사장 등 현장에서는 부대공사인 토목분야의 안전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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