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4.27 10:17 | 수정 : 2023.04.27 16:15
[땅집고]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에 담길 구체적인 구제 방안을 27일 발표했다. 특별법에 따른 지원을 받기 위한 요건과 이를 심의할 정부 산하 위원회 설치, 경매 우선 매수권, 저리 대출 등에 관한 내용이 골자다.
국토교통부 등 정부 관계 부처는 이날 오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전세사기 피해자가 이번 특별법을 적용받으려면 총 6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 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 주택 ▲수사가 개시되는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다.
정부는 특별법에 따라 지원 대상이 된 전세사기 피해자에게는 임차 주택이 경매로 나올 때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본인이 경매 신청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경매 유예를 신청할 수 있고, 살고 있는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 제3자에게 낙찰됐더라도 그 가격에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특별법에는 조세채권 안분 제도도 포함된다. 조세채권 안분제는 임대인이 체납세금이 많은 경우 이를 개별 주택에 골고루 분산해 경매에 부치는 제도다. 경매 낙찰금이 국세를 갚는데 전액 소진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전세 사기 피해자가 주택을 낙찰받으면 4억원 한도 내에서 낙찰자금 전액을 저리로 대출해준다. 만기는 최장 30년이며 통상 1년인 거치 기간은 3년으로 연장한다. 임차 주택을 낙찰받는다면 취득세를 200만원 한도 내에서 면제해주며, 3년 동안 재산세도 감면한다. 전용이 60㎡ 이하면 재산세 50%, 60㎡를 넘으면 25%를 감면해준다.
만약 피해자가 주택 매수를 원치 않는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우선매수권을 넘겨받아 주택을 사들인 뒤, 피해자에게 임대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는 소득·자산요건과 관계 없이 LH매입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부여한다. 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최대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으며, 임대료는 시세의 30~50% 수준으로 책정한다.
이미 경·공매로 집이 넘어간 피해자라면 공공임대주택 우선 입주 자격을 받을 수 있고, 저리 대출 지원도 가능하다. 정부는 재난·재해 긴급복지 지원제도를 전세사기 피해 가구에도 적용해 생계비(월 62만원), 주거비(월 40만원)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연 3% 금리로 신용대출을 최대 12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
특별법 시행을 위해 정부는 국토부 내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를 설치한다. 각 시·도는 피해 신청 접수를 진행하고 기초조사 등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피해자 인정신청은 임차인이 직접 해야 한다.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에서 앞서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지 여부를 심의해, 국토부가 피해자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구조다.
이번 특별법은 공포 후 즉시 시행하며, 시행 이후 2년간 유효하다. 통상 임대차계약 기간이 2년인 점을 고려해 특별법 적용 기간을 책정한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 사기 피해자 입장에선 당장의 주거안정이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특별법은 긍정적인 정책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역전세는 지원대상이 아닌 점, 고가 전세나 소액 피해 등은 특별법 적용 대상이 아닌 점은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의 일문일답.
-특별법 적용 대상에 6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포괄적 구제보다는 선별적 구제에 초점 맞춘 것 아닌가.
: 보증금은 기본적으로 사인 간의 채권·채무 관계다. 원칙적으로 전세사기라는 매우 예외적인 대상에 대해서만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경매에 국가가 개입해 특정인에게 우선매수권을 주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우선 물건을 사 오는 것은 사실 뺏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전세사기라는 명백한 범죄에 준하는 경우에 한정했다. 사적인 권리관계에 국가의 개입과 우선권 행사는 최소화돼야 하는 것이 우리의 헌법 정신이자 시장원리이고 국민의 합의사항이라고 믿는다.
-6가지 기준을 보면 '전세사기 의도 존재', '다수 피해자 발생 우려', '보증금 상당액 미반환 우려' 등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커 보인다.
: 현재 전세사기 유형과 피해자 요구사항이 너무도 다양하다. 전세사기를 법원에서 확정된 건으로 한정하면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경우 등 범위가 너무 좁아진다. 일일이 법에 규정하고 진행하면 혼란스럽고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행정력이 낭비된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전세사기라는 큰 원칙만 정하고 세부 사항은 국토부 내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해 사례별 형평성을 따지고 신속한 구제가 가능하게 했다.
'다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요건은 예를 들어 누가 봐도 (전세사기가 아닌) 보증금 미반환이고, 5∼6년간 잘 살다가 문제가 생겼거나 경매를 진행하면 보증금의 절반 이상 회수할 수 있는데 이를 모두 사기라고 고발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거르는 장치를 넣은 것이다.
-지원 대상 요건 중 면적과 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 주택에 제한된다는 내용이 있다.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피해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나.
: 지금까지 접수된 사례를 보면 보증금 3억원, 면적 85㎡ 정도는 대부분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역과 가족 수 등 변수가 있어 면적이나 가액을 일률적으로 정해놓으면 본의 아니게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큰 예외 사항이 없으면 이 기준을 지키되, 억울하게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피해지원위원회에서 탄력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피해 임차인은 몇 가구로 추산되나.
: 전세사기 사건 수와 피해자가 얼마나 될지 숫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모두 사기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특별법이 시행되면 의미 있는 숫자나 통계를 국민에게 알리겠다.
-피해자들의 가장 큰 요구는 보증금 반환이다.
: 서울 강서구 전세사기 피해에서는 '선매입 후구상' 요구가 나왔다. 피해자들이 임대인의 체납 국세를 제외하면 선순위 담보권을 가지고 있어 경매 절차를 정부가 대신 진행하고 보증금을 나중에 경매 대금으로 돌려달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미 저희도 법률서비스 지원을 생각하고 있고, 특별법에 포함된 조세채권 안분 제도를 통해 피해자 보증금 반환에 자구노력의 길이 열릴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생겼다.
인천 미추홀구 피해의 경우 금융기관 선순위 근저당 때문에 경매를 진행해도 후순위 채권자인 세입자들에게 돌아갈 돈이 없다. 이미 추심업체에 채권이 넘어간 경우도 있다. 이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매입하라는 것인데, 캠코가 현재 운영제도 아래에서 직접 혹은 추심업체를 통해 채권을 샀을 때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보증금의 10% 이하 혹은 최대 경우에도 20% 이하 평가액이 나왔다. 오히려 우선변제금보다 못한 금액을 돌려받게 되는 것인데 피해자들이 수긍하겠나.
-전세사기 특별법에 '선보상 후구상'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추후 해당 내용이 특별법에 담기면 정부 입장이 달라질 수 있나.
: 전날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정책위의장과 만나 주장하는 내용을 상세히 들었다. 토의한 결과 이를 제안한 분들도 결론 내리기 힘든 점들이 있었고, 현재 선보상 후구상을 실행할 수 있는 방안으로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에 암묵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특별법 시한을 2년으로 한정한 배경은.
: 대부분 임대차 계약이 현행 임대차법에 의해 2년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또 작년부터 전세사기 예방대책을 내놓고 있어 이런 피해는 이미 맺어진 계약이 만기가 도래하거나 경매 개시된 주택이 주요 대상이지, 지금부터 체결되는 계약은 전세사기가 대량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2년이 지난다고 해서 법이 끝나는 것은 아니고, 법 시행 후 2년 내로 피해지원위원회에서 피해 대상으로 확정받은 건까지는 마감하겠다는 의미의 한시법이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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