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4.24 08:08 | 수정 : 2023.04.26 10:42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서울·수도권 주택 시장에 조금씩 온기가 돌고 있다. 그러나 지방 시장은 여전히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땅집고가 위기에 처한 지방 도시 부동산 시장을 돌아봤다.
[지방 부동산 현장점검] ① “대구 부동산 시장, 말도 몬한다…완전히 ‘개점 휴업’이라예”
[지방 부동산 현장점검] ① “대구 부동산 시장, 말도 몬한다…완전히 ‘개점 휴업’이라예”
[땅집고] “대구 부동산 시장, 지금 말도 몬합니더. 완전히 ‘개점휴업’이라예. 단순히 집값 문제가 아이고, 여길 함 걸어보이소. 새 아파트가 길에 널려가지고, 미분양이 왕창 터져가지고, 한 채라도 팔아본다꼬 꾸역꾸역 분양사무실 지키고…. 아예 공사가 멈춘 땅도 한 두 개가 아니라예.” (대구시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지난 21일 열차를 타고 도착한 대구역. 역사 밖으로 나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니 골조가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 현장이 어림잡아 7~8군데에 달했다. 대구역 바로 앞 ‘힐스테이트 대구역’ 맞은편엔 새빨간 글씨로 ‘당 현장은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해 유치권을 행사 중입니다’라고 적힌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당초 총 430가구 규모 ‘힐스테이트 태평 센트럴 대구역’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었는데 공사가 멈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났다.
대구에는 사업이 중단됐거나 사업 승인을 받았는데도 착공하지 못한 아파트 현장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주택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자 시행사와 시공사마다 차라리 분양을 몇 년 후로 미루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갈등도 적지 않게 터져나오고 있다.
실제로 중구에선 2021년 8월 인허가를 받은 총 980가구 규모 주상복합아파트 부지에 온통 ‘유치권’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고, 250가구 ‘대구 동인동 더샵’ 현장에는 대형 포크레인 3대와 철근 더미가 덩그러니 방치돼 있었다. 수성구에선 속칭 초품아 입지인 316가구 규모 ‘해링턴 플레이스 더퍼스트’가 땅 다지기 작업을 다 끝마쳤는데도 착공을 미뤄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상태였다.
“아직 분양 절차를 안 밟아서 빈 땅으로 남겨둔 현장은 차라리 사정이 낫지예. 시행사가 땅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경기 좋아질 때쯤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분양 마치고 아파트 거의 올려놨는데 공사 멈춘 곳들이 진짜 심각하지예.”
한 공인중개사가 건넨 말을 듣고 달서구 ‘장기동 인터불고 라마다’ 현장도 찾아봤다. 주택 경기가 호황이던 2020년 이후, 3년만에 처음으로 분양 보증 사고가 발생한 현장이다. 아파트 147가구, 상가 37실로 구성하는 주상복합 아파트인데 공정률 80%를 넘긴 시점에서 시행사와 시공사 모두 자금난에 빠지면서 공사가 6개월 이상 중단됐다. 결국 올해 1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보증 사고 판정을 내렸다. 당초 흰색으로 마감했던 외벽이 거뭇거뭇하게 때가 탔고, 각 층 베란다를 덮어뒀던 천이 다 헤져 바람에 나부껴 그야말로 ‘유령 건물’ 신세였다.
■대장 아파트도 집값 뚝뚝…미분양 ‘떨이 판매’ 늘어
‘전국 최악 수준’. 어느 때 부턴가 대구의 수식어가 돼 버린 이 말의 뜻을 현장에서 고스란히 실감할 수 있다. 전국 주택시장이 본격적으로 가라앉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지만, 대구는 이보다 반 년 정도 먼저 침체 조짐을 보였다. 새 아파트 공급이 쏟아지면서 집값 하락세를 피할 수 없었던 것.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대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2021년 11월 3주부터 이달까지 74주 연속으로, 약 1년 6개월여 동안 18.53% 떨어졌다. 전국 평균(-11.53%)은 물론 5대 광역시(-13.05%)와 비교해도 유독 하락폭이 크다. 초반에는 새 아파트 분양이 많았던 중구·동구·달서구 일대 아파트에서 하락 거래가 주로 나왔다. 하지만,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고가 아파트가 많고 학군이 좋아 ‘대구의 강남’으로 통하는 수성구도 집값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수성구 대장주로 꼽히는 ‘힐스테이트 범어’는 2021년 3월 전용 84㎡(34평) 실거래가가 최고 17억원을 찍어 웬만한 서울 아파트 못지 않게 비쌌다. 하지만 올해 4월에는 10억5000만원에 팔리면서, 2년여 만에 38%(6억5000만원) 이상 떨어졌다. 중구 ‘남산 롯데캐슬 센트럴스카이’ 같은 주택형도 지난해 3월 9억5000만원에서 올해 4월 6억55000만원으로 내려앉았다.
새 아파트가 적정 수요 이상으로 쏟아지면서 미분양이 1만3500여가구로 전국 1위를 기록 중이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대구에 분양한 아파트 총 21개 단지 중, 1순위 청약에서 2곳을 제외하고 전부 미달을 겪었다. 이에 건설사마다 ‘떨이 판매’에 나섰다. 1년 가까이 미분양을 털지 못한 수성구 ‘만촌자이르네’는 기존 분양가(10억6748만~11억5654만원·84㎡ 기준)에서 최대 25% 할인에 들어갔다. 달서구 ‘두류역 서한포레스트’도 15% 할인 분양을 내세우고 있다.
■건설사 78곳 문 닫아…도산 우려 방치 중인 땅 50여곳
대구지역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은 현재 대구 주택 시장이 단순히 집값이 떨어지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진단한다. 시장이 거의 붕괴되고 있다는 것.
최근 대구에 분양하는 아파트마다 참패 수준의 청약 성적을 기록하자 아파트 건설 부지를 공터로 방치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섣불리 분양에 나섰다간 공사 대금조차 건지지 못해 최악의 경우 기업이 도산할 수 있을 것이란 부담감이 커진 탓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2017~2022년 주택건설사업 승인을 받은 현장 중 48곳이 착공을 미루고 있다. 사업 중단 기간이 길어지면서 땅이 공매로 넘어가거나, 유치권 분쟁을 겪는 현장도 적지 않다.
문닫는 지역 건설업체도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들어 대구·경북 지역에서 건설업체 78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에는 대구 60곳, 경북 174곳이 도산했다.
현재 대구시는 악성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이 급증하고, 자금난 등으로 주택 공사가 멈춰 부동산 발 침체가 지역 경제를 뒤흔드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미 ‘장기동 인터불고 라마다’와 ‘로얄팰리스 동성로’ 등은 골조가 거의 올라간 상태에서 장기간 공사가 멈춰버린 상태다. 대구시는 올해 1월 말부터 300가구 이상 신규 주택사업 인·허가를 전면 중단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대구시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금리야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일단 아파트 물량을 어느 정도 해소해야 집값도 반등할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면서 “올해에만 3만4500가구 정도 입주가 계획돼 있고 미분양 아파트도 전국 1위인데, 앞으로 공급 예정인 사업장도 많다 보니 최소 3~4년간은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대구=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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