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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빚에 또 빚?" 전세사기 피해자 두 번 울리는 정부 대책

    입력 : 2023.04.21 08:26 | 수정 : 2023.04.21 08:43

    [땅집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지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땅집고]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에게 주택 경매 시 우선매수권을 주기로 하는 등 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세 사기로 인해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 대출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결국 또 빚을 내서 버티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20일 국회에서 긴급 당정협의회를 갖고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 지원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당정은 전세사기 주택 경매 때 피해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낙찰을 받게 되면 구입 자금에 대한 장기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조직적 전세사기에 범죄단체 조직죄를 적용해 범죄수익 전액을 몰수하는 등 엄벌하는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경매·공매로 거주 중인 집이 넘어간 피해자들의 잔여 대출 상환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해 최대 10년 간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다음달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전세사기 지원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의 반응은 시큰둥 하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인 A씨는 20일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전세사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 정부가 여러 정책을 내놓긴 했지만, 실제로 도움이 될 만큼 피부에 와 닿은 정책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정에서 우선매수권을 준다든지 경매 중단 방안을 내놓긴 했지만 이미 집이 다 넘어간 상태라 의미가 없다. 다만 전세대출을 장기간 동안 상환하게 해주거나 일반 저리 대출도 풀어준다고 하니 이게 시행만 된다면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정부가 전세 대출을 저리로 지원해주긴 하지만 결국 빚에 빚을 얹는 건데 당장 생활고를 걱정하는 사람 중에 이걸 이용할 사람이 누가 있나 싶다”면서 “정말 필요한 건 만기를 앞둔 전세보증금을 갚을 때 쓸 수 있는 일반 저리 대출이다. 전세 대출을 이용하려고 해도 당장 만기를 앞둔 전세 보증금부터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전셋집을 구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A씨가 살던 집은 최근 경매에서 낙찰돼 퇴거명령에 따라 6월까지는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다.

    [땅집고]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및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구성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 대책 관련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을 촉구하고 있다./뉴스1

    실제로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신규 임차 지원 대출 이용 건수는 피해 규모와 비교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국토교통부가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신규임차 지원 저리 대출 이용 건수는 지난 1월 9일 출시 이후 최근까지 8건에 그쳤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주택 규모가 3131가구인 것에 비해 극히 적은 숫자다.

    해당 저리 대출을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건 전세자금에 한해서만 대출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즉, 피해자가 기존 집을 떠나 새 전셋집으로 갈 때 사용할 보증금에 한해 이용이 가능한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저금리라고 하더라도 또 한 번 빚을 낸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대항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사를 원하지 않는 피해자들도 있어 이용이 저조했다는 분석이다. 저리대출 지원 자금으로 정부가 책정한 예산은 1660억원이지만, 실제 대출 액수는 9억원에 그쳤다.

    대표적인 지원 대책 중 하나인 긴급 주거 지원 정책 또한 신청과 진행이 모두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A씨는 정부에 제출한 긴급 주거 지원 신청이 통과돼 다음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다른 피해자의 경우 신청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지원 기준이 까다로워 심사 통과가 어렵고, 월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A씨는 “내 경우는 다행히 긴급 주거 지원 신청이 통과됐다는 답변을 받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어떤 곳으로 배정받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들 학교도 모두 인천에 있고, 근거지를 인천에 둔 상황인데 어디로 배정될지 알 수 없어 불안함이 크다”면서 “그렇게 들어가더라도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데다 지원 기간이 2년이고, 6개월마다 거주에 대한 재허가가 또 필요하다고 해서 막막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토부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공공임대 주택 긴급 주거를 지원한 실적도 올해 2월부터 최근까지 총 9명에 그쳤다. 경매로 살던 집이 낙찰돼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하는 피해자를 위해 마련한 긴급 임대주택인데, 이들이 거주를 지원받은 공공임대주택 면적은 17.8~59.92㎡다. 평수로 환산하면 5~17평 수준이다. 이 또한 ‘생색내기용’으로 욕먹는 정부 지원 대책 중 하나다.

    한편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임차인 보증금 우선 반환 조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정은 “공공이 임차인 보증금을 우선 반환하게 되면 손해를 감수하며 사더라도 선순위 채권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 근본적인 피해자 구제 방안이 될 수 없다”면서 “사인 간 발생한 채무, 특히 악성 임대인 채무를 공적 재원으로 대신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데다 국민 부담으로 전가할 수 있어 실현 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추가 지원 방안을 이른 시일 내 검토해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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