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4.20 11:30 | 수정 : 2023.04.21 05:47
[땅집고] “지금도 서울 마포구에서 매일 쓰레기 750톤을 태우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 1000톤을 더 태우는 소각장을 또 짓겠다니요. 주민들 입장에선 쓰레기를 태우면서 나올 유해물질이 꺼려지는 게 크지만, 솔직히 집값 떨어질까 걱정도 안 할 수가 없어요.”(서울 마포구 주민 A씨)
서울시가 마포구에 새 자원회수시설(생활페기물 소각장)을 건립하는 사업을 두고 서울시와 마포구 간 갈등이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마포구에 하루 1000톤 용량 규모 쓰레기 소각장을 짓겠다고 밝힌 이후, 건립 계획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마포구 주민들의 반대가 조직화되고 더욱 거세지고 있어서다.
주민들은 이미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마포구에 또 다른 소각장을 건립하는 것은 명백한 지역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서울시는 2026년부터 서울 전역 쓰레기를 매립하던 인천 수도권매립지 이용이 불가능해져, 소각장 확보가 시급하다고 맞선다. 서울시가 마포구 쓰레기 소각장을 관광시설처럼 조성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대관람차인 ‘서울링’ 설치를 당근책을 제시했지만, 성난 민심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 혐오시설 지으면서 일방 통보…명백한 행정폭력”
현재 서울시를 비롯한 수도권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인천시 서구에 있는 공동매립지에 묻고 있다. 하지만 이 공동매립지가 2025년 문을 닫으면서, 그간 인천 서구 공동매립지를 이용해온 지자체들은 자체 매립장을 마련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2026년부터는 수도권에서 쓰레기를 땅에 묻는 직매립이 금지돼, 소각장 건립이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서울시에서 하루 동안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은 평균 2000여톤. 기존 시내 소각장 4곳의 처리 용량은 1000톤에 불과해 새 소각장을 지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2019년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후보지 공모에 나섰지만, 혐오시설인 소각장을 유치하겠다고 지원한 자치구는 한 곳도 없었다. 결국 서울시는 광역소각장 입지선정위원회를 꾸리고 지난해 8월 마포구 상암동 일대를 새 소각장 부지로 확정했다. 상암동에 있는 기존 소각장 시설을 증설해, 이르면 2026년까지 완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마포구 주민들 반발이 빗발쳤다. 현재 마포구에 750톤 쓰레기를 처리하는 소각장이 이미 있는데, 여기에 추가로 1000톤 용량 소각장을 또 짓는 것은 지역 홀대이자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각장 선정 과정이 불투명한 것도 행정 폭력이나 다름 없다는 주장을 편다.
마포구 관계자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8월 서울시로부터 (쓰레기 소각장 부지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고서야 알았다”며 “당시 후보지로 5곳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디냐고 물었더니 후보지는 공개 대상 자료가 아닌 데다 주민들 분쟁을 불러올 여지가 있다고 해서 밝히지 않았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쓰레기 소각장 추가 건립으로 집값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걱정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서울 아파트 가격이 크게 하락한 터라 지역마다 혐오시설 건립에 더욱 예민해진 상황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상암동 소각장 근처 아파트 단지의 낙폭이 유독 심한 편이다. 실제로 ‘상암월드컵파크2단지’ 59㎡가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10억5000만원에 팔렸는데, 올해 4월 7억6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인근 ‘DMC상암센트럴파크2단지’ 같은 주택형 집값도 지난해 5월 8억4500만원에서 올해 2월 6억7000만원까지 하락했다.
■‘소각장 관광명소화·서울링’ 당근책에도…지역여론 ‘냉랭’
서울시는 쓰레기 소각장 건립이 불가피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대신 마포구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다양한 당근책을 내놓고 있다. 소각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타파하게 위해 이 곳을 관광 명소로 조성하고, 1000억원을 들여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각종 편의시설을 만들겠다는 것.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 있는 ‘아마게르 바케’ 소각장이 상부에 스키장, 벽면에 암벽장을 설치하면서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된 사례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설명이다. 또 마포구 일대 한강 난지공원에는 4000억원짜리 대관람차 ‘서울링’도 지어줄 계획이다.
서울시의 이 같은 노력에도 마포 구민 여론은 냉랭하다. 마포구민들로 구성된 ‘마포구 소각장 추가백지화 투쟁본부’는 이달 14일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 모여 “원래 소각장이 없던 지역이면 ‘님비’라는 말도 나올 수 있겠지만, 마포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소각장으로 피해를 감내해온 곳”이라며 “앞으로는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60%를 마포구에서 태운다고 한다. 이는 공정성과 형평성, 지역균형 발전에 맞지 않는 처사”라고 했다.
소각장 추가 설치를 두고 서울시와 마포구민들이 정면 충돌하자 마포구청이 중재에 나섰다. 재활용품 중간처리장인 ‘소각 제로 가게’를 대안책으로 제안한 것. 소각 제로 가게란 생활 쓰레기를 세척·분류·분쇄·압착해 재활용 가능한 상태로 바꿔주는 공간인데, 비닐·유리병·플라스틱 등 18개 품목별로 1kg당 10원~600원을 지급한다. 이 공간을 서울 곳곳에 확대하면 소각장을 굳이 설립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마포구청이 제안한 ‘소각 제로 가게’는 주민 참여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아니다”며 “하루 약 1000톤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회수시설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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