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4.19 18:26 | 수정 : 2023.04.20 13:16
[땅집고] “○○부동산은 인기 좋은 매물 다 가지고 독점하듯 장사해서 이 동네에서 워낙 유명했죠. 그렇게 장사 잘된다고 자랑하던 양반이 갑자기 중개사무소 명의 넘기고 사라졌다고 하니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전세 사기라니요. 주변 세입자 대부분이 사회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청년들인데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겠네요.” (경기 화성시 반송동 부동산 중개사무소 관계자 A씨)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에 이어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도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오피스텔 250여채를 소유한 임대인 부부가 세금 체납 문제로 파산절차를 밟고 있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는 세입자들의 신고가 접수되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파산을 신청한 임대인 부부는 현재 잠적한 상태다.
19일 오전 찾은 경기 화성시 반송동 일대의 한 중개사무소. 해당 중개사무소는 임대인 부부의 임대차 계약 및 관리를 위탁했다는 중개사무소로, 동탄신도시 전세사기 사건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다.
해당 중개사무소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커튼과 가림막 등으로 유리창을 가린 상태로 내부를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주변에는 취재진들과 불안한 표정의 앳된 얼굴의 임차인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인근 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아예 문을 닫아뒀거나, 전세 사기 여부를 묻는 세입자의 전화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반송동 소재 중개업소 관계자 A씨는 “역전세 때문에 전세를 찾는 문의가 끊긴 지 오래다. 월세 매물도 없어서 상황이 안 좋은데 전세사기까지 터졌다”면서 “아침부터 전세사기 여부를 걱정하는 세입자와 그 부모한테 걸려 온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오피스텔 전문으로 하는 이곳 부동산들은 그야말로 초토화된 상황”이라고 했다.
A씨에 따르면 반송동은 삼성전자 사업장과 가깝고, 시설이 좋았던 특정 오피스텔 몇 곳이 인기가 높았다. 이 오피스텔 매물 상당 수가 파산을 진행한 임대인 부부의 소유로 피해도 해당 오피스텔에 집중됐다.
전세사기가 발생한 해당 오피스텔을 찾았지만, 곳곳에 전세사기 피해를 알리는 현수막과 알림판이 붙었있던 인천 미추홀구와는 달리 피해 사실을 알 수 있는 어떤 표식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전세 사기 피해 신고가 접수된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았고, 아직까지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임대인 부부가 250채 오피스텔의 임차계약 및 관리를 위탁한 중개사무소는 반송동 일대에서도 계약을 가장 많이 체결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반송동에서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관계자 B씨는 “해당 중개사무소 보조인으로 일했던 여성이 하루에 5건씩 거래했다고 자랑하고 다니기도 하고, 매물 가지고 주변 중개사무소랑 다투는 일도 잦아서 이 근방에서는 워낙 유명했다. 분양 회사와 관계가 있어 유독 매물을 많이 갖고 있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3월쯤 공인중개사협회에 올라온 명의 이전 공고에 해당 부동산 명의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올라와 놀랐다. 장사가 그렇게 잘 됐는데 왜 넘겼을까 하고 의아했는데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고 말했다. 해당 부동산 중개업소는 지난 3월 22일 대표자 C씨가 다른 중개업자에게 명의를 넘기면서 현재는 주인이 바뀐 상태다.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임차인들이 피해 사실을 접하게 된 경위는 다양하다. 임대인으로부터 세금을 미납해 파산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직접 듣고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임차인도 있지만, 법무사 사무소로부터 소유권 이전 등기 여부를 묻는 문자를 받고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임차인도 있다.
한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은 “지난주에 집주인에게 전화가 와서 내일 파산한다면서 보증보험 들었으면 보증금을 돌려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2020년도에 입주하고 나서 2주 뒤에 집주인과 담당 부동산이 바뀌었고, 이후 두 번 재계약을 진행했는데 지난주에 갑자기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내 경우는 보증보험을 들어둔 상태라 서류를 가지고 피해접수를 진행하려고 한다. 출근도 해야 하는데 준비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은 “법무사무소에서 소유권 이전 등기 진행 여부를 묻는 문자를 받고 전세사기 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이렇게라도 넘겨받을 건지 그냥 고스란히 피해를 당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협박처럼 느껴졌다”며 “정부에서 경매도 막아놨다고 하는데 그냥 기다려야 하는 건지 신고를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자들의 손실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임대인으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는다고 해도 최근 ‘역전세’ 현상으로 인해 오피스텔 거래가가 전세가 이하로 떨어진 곳이 대부분인데다 체납 세금까지 있어 가구당 수천만원의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집주인과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라면 등기권리증을 받을 수 없어 소유권 이전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역전세로 인해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피해자들도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금이 전세보증보험 가입한도를 초과하면서 보증보험 가입을 거절당한 경우가 많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채 임대차 계약을 진행한 사례도 많다.
인천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정치권의 대응도 긴박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박대출 정책위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전세사기 피해 예방과 구제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같은날 ‘전세사기 대책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전세 방지 구제 범정부대책기구 구성과 조건 없는 긴급 저리대출 시행, 경매 중단 및 보류 등의 방안을 논의했다. /화성=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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