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4.13 07:57
[땅집고]“국토교통부와 LH가 파격적으로 300%에 가까운 용적률을 부여했고, 최근 서울시가 층수 제한까지 다 풀었는데 또 다시 저층 주거지를 만드나요? 이 설계안대로라면 증산4구역에선 불광천, 북한산, 한강, 월드컵경기장 조망을 하나도 확보할 수 없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2·4 주택공급 대책을 통해 추진된 3080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 1호 사업지인 서울 은평구 증산4구역 주민들이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제시한 사업 설계안을 두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의 기대와는 영 딴판인 건축물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12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 증산4구역 주민협의체는 지난달 29일 주민대표회의를 열고 최근 선정된 LH의 설계안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의결처리했다. 그리고 LH에는 건축설계안을 전면 재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이란 민간사업으로 개발이 지지부진했던 노후 주거지에 대해 LH 등 공공이 개발을 직접 시행하고 분양계획 등을 주도하는 주택 공급 방식이다. 증산4구역의 경우 도심복합사업 후보지 중 가장 큰 규모(16.7만㎡)로 도심복합사업지 중 주민 동의율이 높고 속도도 빨랐던 지역 중 하나다.
하지만 업계에선 시행사인 LH가 주민의 요구사항을 전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도심복합사업은 민간개발과 달리 토지소유자가 소유자산을 공공에 현물로 선납한 후 사업시행을 공공이 주도한다. 아파트가 완공하면 기존 토지주에게 우선공급권을 부여해 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사업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100% 받아들여지긴 어려울수도 있단 설명이다.
■ “저층주거지 개발해서 또 저층주거지?”…LH 설계안에 발칵 뒤집힌 증산4구역
증산4구역은 2012년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개발이 지지부진하면서 2019년 구역 해제됐다. 그러다 2021년 3월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 1차 선도사업(저층주거지) 후보지로 선정됐다. 도심복합사업을 통해 4112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를 신축할 계획이다.
정부는 증산4구역에 종상향 등을 적용해 평균 용적률을 295%까지 허용했다. 민간 개발로 추진할 때 용적률(247%)보다 48%포인트 높다. 당시 저층주거지 사업 중 파격적인 용적률 혜택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최근 LH가 공개한 설계안을 살펴보면 허용 용적률 보다 20%쯤 낮은 평균 280%를 적용했고, 중심부 동(棟) 대부분이 저층으로 이뤄졌다. 총 1-1블록과 1-2블록으로 나뉘었는데 두 블록 모두 중앙은 저층, 외곽 일부 건물이 고층 형태다.
박홍대 증산4구역 주민협의체 위원장은 “용적률이 평균 300%, 역 인근 준주거지는 500%에 달하며 심지어 서울시가 최근 층수 제한을 풀어 최대 49층까지 지을 수 있다”며 “반홍산, 불광천, 북한산, 한강, 월드컵경기장 조망권을 확보하는 식으로 계획할 수도 있는데 저층 위주 아파트로 만들었다, 역 앞 존치구역 건물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중앙의 4개 동이 저층 중정형으로 계획된 것에 큰 불만을 제기했다. 박 위원장은 “중정형 구조는 밀도를 높여 용적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계 방식으로 많은 객실을 보유해야 하는 리조트, 주위를 감시해야 하는 수용소 등에 적합하다”며 “중정형 구조 때문에 북서향, 북동향이 너무 많아졌고 국민 주택형인 84㎡의 경우 판상형 구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1-2블록에는 건축물을 둘러싼 옥상 둘레길이 조성된다. 주민들은 거주자 외에 외부인도 이용할 수 있는 이 둘레길에서 일부 주택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 대표는 “복합스포츠센터를 기부채납하며 공공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인들이 아파트 옥상을 둘레길로 이용해야 하는 정도의 공공기여를 해야 한다는 답변에 할 말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증산4구역 주민들은 LH측에 ▲평균 용적률 300% 중 반영하지 못한 20%를 활용해 재설계 ▲중앙의 저층 위주 설계를 고층으로 변경하고 동수를 최소화해 건폐율을 낮추고 조망권, 통경축, 통풍축 확보 ▲ㄷ자형, 중정형, 정방향 타워형 구조를 일자형, ㄴ자형, ㅅ자형으로 설계해 채광과 통풍이 원활하도록 변경할 것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 LH “설계안 전면 수정은 어렵다”…주민 요구·공공성 괴리감 여실히 드러나
업계에선 2·4대책 발표 당시 제기됐던 ‘공공 주도’ 방식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반응이다. 당시 정부는 공공이 재개발 사업을 주도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주민대표기구를 설치해 의견을 수렴하고, 설계·시공 등에선 민간 대형 건설사도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LH 관계자는 “설계 공모와 심사를 통해 설계안이 최종 확정된만큼 지금 시점에서 주민이 요구하는대로 설계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다만 내달 주민 총회를 통해 설계안에 대한 취지를 충분히 주민들께 설명하고, 주민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일부라도 수정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사업 특성상 주도권을 공공이 쥔만큼 주민의 요구 사항이 완벽하게 반영되긴 어려운 구조”라며 “공공 사업자의 취지가 담긴 건축 작품과 주민이 원하는 아파트의 형태에는 거리감이 크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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