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4.07 07:53 | 수정 : 2023.04.07 13:21
[땅집고] “정권 바뀌면 토지거래허가제 당연히 풀어줄 줄 알았는데 1년이나 더 연장하다니요. 집주인들은 재산권 침해라고 난리고, 공인중개사들은 거래 뚝 끊겨서 굶어 죽겠다는데…. 오세훈 시장이 이번에 ‘압여목성’에서 표를 많이 잃었다고 보면 됩니다. ‘오세훈 가만히 안 둔다’고 이를 가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에요.”(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A씨)
지난 5일 서울시가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동(압여목성) 4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했다. 이 지역들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 만료가 이달 26일까지인데, 이번 조치로 내년 4월 26일까지 규제를 1년 더 연장한 것이다.
이에 2021년 4월부터 3년째 토지거래허가제로 묶여있는 압여목성 주민들과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서 거센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동안 아파트 거래를 틀어막는 토지거래허가제 때문에 재산권 침해나 형평성 논란 등 각종 부작용이 적지 않았는데도, 규제 기간을 연장한 서울시의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토지거래허가제, 압여목성 정상 수요도 다 막았다…단지마다 ‘거래소멸’ 지경
토지거래허가제란 대지 지분이 일정 면적을 초과하는 부동산을 매입할 때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반드시 실거주 목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전·월세로 임대할 수 없으며, 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소위 ‘갭투자’도 불가능해 투기 과열을 막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토지거래허가제가 투기성 거래 뿐 아니라 일반 정상 거래도 틀어막는 부작용도 불러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거나 입지가 더 좋은 상급지로 이동하는 것을 소위 ‘갈아타기’라고 하는데, 규제를 적용받는 지역에선 아파트를 제 때 사고 파는 것 자체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4월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압여목성 거래량은 ‘소멸’ 수준으로 감소했다. 양천구 목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목동신시가지7단지’는 규제 지정 전인 2021년 99건, 2020년 80건의 거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토지거래허가제가 적용한 2021년에는 거래량이 25건으로 크게 줄었으며, 지난해에는 거래가 단 2건에 불과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9·11~12차)’ 거래량 역시 ▲2020년 85건 ▲2021년 22건 ▲2022년 4건으로 줄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부동산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토지거래허가제도 해제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특히 아파트 거래가 소멸하다시피 하면서 중개수수료 수입이 뚝 끊긴 이 일대 공인중개사들의 바람이 유독 컸다.
■갈아타기 막힌 집주인, 밥줄 끊긴 공인중개사 모두 분노 폭발
하지만 이번 서울시 조치로 압여목성 토지거래허가제가 1년 더 연장됐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침체한 것은 사실이지만, 토지거래허가제를 해제할 경우 서울 집값이 자극을 받아 튀어오를 여지가 남아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된 지역들은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앞둔 지역”이라며 “현재 시가 추진하고 있는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재건축 사업지도 모두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규제 완화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 우려도 고려한 처사”라고 설명했다.
규제 연장 결정으로 그간의 기대감은 실망을 넘어 분노로 바뀌고 있다. 양천구 목동 주민 A씨는 “새아파트 분양받아 입주해야 해서 이전에 살던 집을 팔아야 하는데, 토지거래허가제 때문에 집을 살 사람이 안 나타나 매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재산 침해가 어디 있느냐”라며 “목동보다 집값이 더 비싼 용산구 한남동, 서초구 반포동 등 부촌은 왜 규제 대상에서 빼주나. 아주 어이가 없고 웃기는 상황”이라고 했다.
여의도 미성아파트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B씨는 “올해 초만 해도 (토지거래허가제를) 풀어준다는 뉴스가 제법 나왔던 터라 규제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너무 아쉽다”라며 “규제를 풀어주더라도 지금은 금리가 높아 영끌하는 사람도 얼마 없을텐데 서울시 처사가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집이 안팔리니 상속세나 재산세 등 문제가 해결이 안돼서 답답해하는 집주인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인근 삼부아파트 중개사사무소에선 “어차피 거래가 안되니 1000가구나 되는 아파트에서 매물 나온 게 몇 개 없다. 토지거래허가제로 서울시는 집값 안정화라는 업적을 세우겠지만, 부동산들은 다 굶어 죽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C씨는 “압구정 일대는 집주인들이 다들 자금 여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 버틴다. 토지거래허가제를 연장해봤자 그냥 집 파는 시기만 달라질 뿐”이라면서도 “하지만 막상 앞으로 1년 동안 또 다시 거래 가뭄에 시달릴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번 토지거래허가제 연장으로 인해 오세훈 시장이 표를 많이 내줬다고 보면 된다. 강남구청에서도 서울시에 규제를 해제해달라고 공식 요청하기도 했는데 이를 무시하니 오 시장의 고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해당 지자체도 난감…6월 잠실·삼성·대치동도 연장할듯
토지거래허가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서울시와 주민들 간 갈등에 그간 규제 해제 목소리를 꾸준히 내 온 해당 자치구 입장도 난감해졌다.
지난 3월 서울시에 목동신시가지 1~14단지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요청한 양천구는 6일 “목동아파트의 토지거래허가제가 연장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토지거래허가제가 신도시로 지정되는 토지 등이 아니라 대도시 아파트의 거래를 막는 제도로 이용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정책”이라며 “근거가 부족한 불안 심리를 규제 정책으로 남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 16일 강남구 역시 압구정 아파트지구의 부동산 거래량이 10% 수준으로 감소했고, 가격도 하향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규제 해제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토지거래허가제는 서울시 직권 결정이라 재심 신청 등 절차도 전혀 없다. 현재 구청 차원에서 달리 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상황”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연장 조치가 당연하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부동산 규제가 대폭 완화하면서 서울 집값 하락폭이 줄어들고 있는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토지거래허가제까지 풀어주면서 집값 상승 여지를 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이번 연장 조치로 당분간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일대는 거래량이 매우 적고 집값도 요지부동하는 지금의 추이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며 “서울시가 오는 6월 토지거래허가제 만료 예정인 잠실·삼성·대치동에 대해서도 규제 연장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이지은·김서경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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