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3.09 07:36 | 수정 : 2023.03.09 14:22
[땅집고] “김해시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이 들어선다고 해서 26년을 믿고 기다렸어요. 그동안 ‘인제대 백병원’ 호재를 믿고 주변 아파트 분양받은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데 이제와서 땅 용도를 변경해 병원 대신 아파트를 짓겠다니, 사기나 다름 없죠.”(경남 김해시 주민 A씨)
최근 경남 김해시에서는 ‘인제대 백병원 부지’ 문제를 놓고 지역사회가 들끓고 있다. 과거 인제대 측이 대형종합병원인 백병원을 짓겠다며 김해시로부터 의료부지를 싸게 분양받은 뒤, 이 땅을 무려 26년 동안이나 방치하다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해 수백억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개발업체가 김해시에 이 부지를 주거용으로 용도 변경해달라고 신청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인제대 백병원 사태와 비슷한 일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도시계획상 의료용지였던 땅을 아파트·오피스텔 등 주거용으로 팔아치워 수백억대 이익을 남긴 ‘의료 재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해에 병원 짓겠다던 인제대, 26년만에 땅 팔아 240억 차익?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1996년 김해시가 삼계동 일대를 개발한 북부지구 내의 종합의료시설부지 3만4139㎡를 142억원에 분양받았다.
인제대 백병원 건립사업은 초특급 개발 호재였다. 현재 김해시는 인구가 50만명에 달하지만 대학병원이 하나도 없는 의료시설 사각지대였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이 일대에 분양하는 아파트·오피스텔 및 상가마다 인제대 백병원 사업을 호재로 내세워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런데 인제학원은 병원 건립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2021년 병원부지를 서울 부동산 개발업체 ㈜굿앤네트웍스에 385억원에 매각했다. 부지 매각에 따른 시세차익은 무려 243억원에 달한다.
더군다나 최근 개발업체가 이 부지에 아파트 650가구를 짓겠다며, 김해시에 부지 용도를 종합의료시설용지에서 공동주택용지로 바꿔달라는 내용의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신청해 주민들 분노가 커지고 있다. 용도변경하는 경우 땅값이 최소 2배 이상 뛰는 데다, 개발업체는 아파트 개발로 엄청난 수익을 챙기게 된다.
지난달 24일 김해시가 개최한 인제대 백병원 용도변경안 관련 공청회에서 주민들은 “백병원이 들어온다고 해서 분양가보다 비싸게 땅을 샀다. 26년 동안 재산권 행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병원이 안들어오면 그동안 지출한 대출과 이자 등 피해는 어떻게 하느냐”, “김해시가 인제학원이 병원건립을 포기한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의료원 등 다른 병원이라도 유치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등의 불만을 쏟아냈다.
주민 반발이 커지자 개발업체는 용도변경으로 예상되는 땅값 600억원에서 부지 매입가(385억원)를 뺀 차익 200억원을 기부채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개발업체 입장에선 200억원을 기부하더라도 아파트를 지어 얻는 수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삼계동에 공급한 아파트 분양가가 84㎡ 기준 4억5000만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업체가 인제대 백병원 부지에 650가구를 분양해서 얻는 수익은 단순계산으로 2925억원에 달한다.
■‘땅 장사’하는 의료재단들…전국 곳곳 의료부지, 아파트·오피스텔용으로 전락
비단 인제대 만의 문제가 아니다. ‘길병원’을 운영하는 가천길재단은 2001년 경기 부천시 상동 일대 2만3401㎡ 의료부지를 60억1355만원에 매입했다. 당시 총 640병상 규모 길병원을 짓겠다며 부천시로부터 건축 허가까지 받았다. 그런데 20여년 동안 병원 착공조차 하지 않다가, 2019년 민간회사에 땅을 400억원에 매각했다. 가천길재단은 부지 매각으로 34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경기 수원에서는 을지재단이 비슷한 문제를 일으켰다. 을지재단은 2007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3만1300㎡ 의료부지를 282억원에 사들이면서 1000병상 규모 을지대 병원을 짓기로 약속했다. 을지재단 역시 부지를 16년째 빈 땅으로 놀리다가 17년만인 올해 수원시를 설득해 공동주택부지로 용도변경했다.
수원경제실천연합회는 “수원 을지대병원 부지 용도변경 계획은 땅 소유주인 을지재단과 개발업자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특혜 행정’이다. 부지 인근 아파트 가격을 감안하면, 땅값이 과거 매입가의 17배에 달하는 4175억원으로 뛸 것으로 예상한다”며 “애초 목적에 맞게 종합병원이나 공공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과거 도시계획과 현재 지역 상황 불일치…지자체 차원 해법 필요
의료부지가 주거용으로 둔갑하는 사태는 당초 도시개발 목적과 어긋나는 데다, 지역 사회를 속이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대형병원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인근 주택을 분양받거나 상가·토지 등 투자를 결정한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 측은 토지 매각으로 시세차익을 얻고, 부동산 개발업체는 아파트·오피스텔 분양 수익을 남기는 반면 의료시설 불발에 따른 피해를 지역 주민들이 떠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다만 일각에선 의료재단·법인이 대형병원을 건립할 수 없는 대내외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인구 유출로 의료 수요가 대폭 감소한 지방에 대형병원을 짓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사업 자체가 어렵다는 것. 인제학원 관계자는 땅집고의 통화에서 “차익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의료부지를 가져간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병원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었다”며 “하지만 IMF가 닥치면서 병원 건립이 어려워졌고 이후에는 김해시 의료 수요가 줄어드는 바람에 결국 부지를 매각하게 됐다. 무엇보다 그동안 학교가 의료부지를 보유하면서 세금이나 이자 비용이 막대해 매각 결정을 내린 영향도 크다”고 해명했다.
부동산 개발업계에선 지자체 차원에서 절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마련한 도시계획과 현재 지역 상황이 맞지 않아 대형병원 부지가 나대지로만 방치된다면 분명 사회적 손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용도변경은 필요하지만, 그 적정 비율을 정하는 데 대한 고심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사 디벨로퍼는 “전체 부지에 대한 용도변경 대신, 일부는 주거용·업무용 땅으로 바꿔주되 어느 정도는 의료용으로 남겨 최소한의 지역 복지를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개발 과정에서 적정한 규모의 기부체납 등 환수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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