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3.04 08:46
[땅집고] “이 엄동설한에 강제집행하면, 이 어르신들이 어딜 가게 될까요.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잖아요.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고 싶진 않았어요.”
최근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경매나 공매로 싸게 나온 주택을 낙찰받으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그런데 주택을 경공매로 낙찰받는 경우, 가격은 시세보다 저렴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난관에 처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낙찰받은 집을 세입자 등 다른 사람이 점유하고 있을 경우, 이들을 내쫓는 명도 과정에서 갈등을 겪으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물론 추가 비용이 들 수도 있다.
유튜브 채널 ‘부동산 2인자-쉽게 배우는 부동산’을 운영하며 부동산 투자와 관련한 각종 영상 콘텐츠를 게시하는 안진우씨. 최근 그가 올린 영상에서 ‘훈훈한 명도’ 사례를 공개해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안씨는 경매로 경기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빌라 한 채를 7834만원에 낙찰받았다. 법원에 보증금 700만원을 낸 뒤 집을 방문했는데, 기존 주택 소유자였던 80대 노부부가 집을 점거하고 있는 광경을 맞닥뜨렸다. 안씨는 “이 물건을 낙찰받기 전까지는 이런 상황일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가 완전한 집주인이 되려면 노부부를 집에서 내쫓는 명도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안씨가 경매 과정을 통해 적법하게 집주인 지위에 오른 것이기 때문에, 노부부를 집에서 내보내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씨는 이들을 집에서 매몰차게 내보낼 수 없었다. 대화를 나눠본 결과, 자식들이 노부부를 거의 버리다시피 한 사실을 알게 돼 마음이 쓰였던 것. 게다가 할머니는 치매로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고, 할아버지 역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추운 겨울에 노부부를 길바닥으로 내쫓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전 낙찰자가 명도 과정을 진행하는데 노부부가 이사비로 1100만원을 요구하며 퇴거를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보증금 700만원을 포기했다고 한다. 나도 잠시나마 (낙찰받은 집을) 포기할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낙찰받아 강제집행으로 노부부를 내쫓는다면, 어르신들이 어딜 가게 될지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끝까지 책임지는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씨는 물리력을 쓰는 강제적인 명도 대신, 노부부에게 새 집을 찾아주는 방식을 택했다. 먼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지원하는 ‘긴급주거서비스’라는 정책을 활용하기로 했다. 노부부처럼 급하게 집이 필요한 주거 취약계층에게 LH가 시세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임대주택을 마련해주는 제도다. 최초 임대기간은 2년인데, 2년 단위로 총 9번 재계약이 가능하다.
이 제도에 따라 노부부에게 LH임대주택이 배정됐다. 2016년에 준공한 침실 3개, 화장실 1개짜리 빌라였다. 임대료는 보증금 400만원에 월세 20만원인데, 긴급주거지원 서비스 대상자라 보증금 50%를 감면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노부부가 당장 마련할 수 있는 돈이 100만원 정도밖에 없어, 안씨가 나머지 100만원을 보태주기로 했다.
안씨는 노부부가 임대주택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구청으로부터 월세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사비도 대신 납부해 노부부가 새 보금자리로 안전히 이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처음에는 경계심이 크던 노부부도 안씨가 내민 도움의 손길에 순순히 퇴거했다. 그 결과 안씨는 명도 과정에서 큰 갈등 없이 경매로 낙찰받은 집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안씨는 “경공매 투자를 하다 보면, 내가 정당한 낙찰자인데도 어려운 명도 과정을 접하고 너무 많은 고민이 된다”며 “하지만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명도가 가능하다. 내 마음도 지키면서 안전하게 명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이 영상을 제작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해당 영상에는 “만약 낙찰을 포기하면 다음 낙찰자가 매정하게 강제집행할 것 같아 도움을 줬다니, 너무 큰 선행이다”, “명도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주는 업자 없을텐데…. 노인분들 사정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갖은 수고로움을 감수한 게 너무 대단하다”는 등의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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