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2.16 07:47
[땅집고] “누구는 연소득 7000만원이라 피해 구제받고, 누구는 7001만원이라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면 이게 과연 공정한 겁니까?” (전세사기 피해자 A씨)
지난 2일 정부가 전세사기 예방과 피해지원 대책을 발표한 가운데,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지원하는 저리 대환 대출 상품의 지원 범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A씨는 “빌라왕 전세사기로 인해 전세 보증금을 전부 날렸다. 무료 임시 주거주택 지원과 저금리 대출 지원 대책 등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취지는 좋지만 소득 제한이 걸려 있어 피해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부부 합산 연소득 7000만원 이하만 1~2%의 저리 대환 대출이 가능한데, 연소득 7000만원이 넘으면 국민도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발표한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 방안’을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가 새로운 거주지로 주거 이전을 할 때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주택도시기금과 함께 저리대출 상품을 내놨다. 또한 기존 전셋집에 거주해야 하는 피해 임차인에게는 기존 전세대출을 1~2%대의 저금리 대출로 대환할 수 있도록 대출 상품을 신설해 생계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달 9일에 출시된 대출 상품이 기존 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을 기반으로 만든 ‘전세피해 임차인 버팀목전세자금’이다.
논란이 되는 대목은 대출 지원 대상의 소득 기준이다. 대출 신청인과 배우자 합산 연소득이 7000만원 이하인 피해자에 한해서만 저리 대환 대출이 가능해지면서, 똑같은 전세사기 피해자인데 소득이 좀 더 높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연소득 7000만원’은 정부가 다양한 복지 혜택를 지원하는 대상을 가르는 기준에서 중요한 지표가 된다. 연소득 7000만원이 넘으면 통상 ‘고소득자’로 분류돼, 각종 복지 혜택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국세청의 ‘2021년 귀속 근로소득 천분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근로소득자 1995만9148명의 평균 연소득은 4024만원 수준이다. 고소득자냐 아니냐의 기준이 ‘부부합산’ 연소득 7000만원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
각종 세액공제에도 연소득 7000만원 기준이 사용된다. 월세로 1년간 낸 돈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는 월세세액공제의 경우에 연소득 7000만원을 초과하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취득세를 200만원 한도에서 감면해주는 제도인 ‘생애 최초 취득세 감면 혜택’ 또한 연소득 7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만 적용된다. 다만 이 제도의 경우 2월에 임시국회를 통과하면 기존에 적용되던 소득기준은 사라질 전망이다. 연소득 7000만원이라는 기준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비판을 고려한 조치다.
앞서 2018년에는 전세보증상품 이용 대상을 두고 연소득 7000만원이라는 기준을 적용해 불만이 제기됐다. 정부가 전세보증상품 이용 대상을 다주택자와 고소득자들에게 제한하겠다며 부부합산 연소득 7000만원 이하로 막아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 실수요자들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강화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전세대출이 막히는 사례가 속출했다. 서울의 전세 보증금을 감안하면 부부 합산 연소득 7000만원을 고소득자로 규정하는 건 가혹하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정부가 한발 물러났고, 무주택 가구들에 대해서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전세보증을 종전대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15일 국토부 관계자는 저리 대환 대출에 있어 ‘연소득 7000만원’ 이하라는 기준을 설정한 배경에 대해 “기존에 운영하는 버팀목 대출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각종 요건이나 한도를 완화해 만든 게 ‘전세피해 임차인 버팀목전세자금’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금전적 어려움을 최대한 덜어 주기 위해 대출 및 보증금 한도를 대폭 늘렸는데 이 이상으로 너무 과도하게 개선하게 되면 기존 대출 상품과의 형평성을 놓고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현재 재원 상황과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 재정 당국과 협의한 결과이고, 아직 상품이 출시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시행 경과를 지켜보면서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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