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2.10 07:45 | 수정 : 2023.02.10 11:55
서울 종로구 익선동 일대는 연간 300만명에 가까운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다. 1년 방문객이 300명 될까말까 했던 대전 동구 소제동은 불과 1년만에 연간 60만명이 찾는 지역 대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두 곳의 공통점은 ‘브랜드’에 스토리를 만들고 디자인을 입힌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지금의 익선동과 소제동을 있게 한 익선다다트렌드랩 박지현 대표가 신간 ‘브랜딩’이라는 책을 냈다. 각각의 브랜드가 문화가 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소개한다.
[핫플 브랜딩] 대나무 숲과 바람 소리에서 찾아낸 ‘풍뉴가’
[핫플 브랜딩] 대나무 숲과 바람 소리에서 찾아낸 ‘풍뉴가’
[땅집고] 대전시 동구 소제동에 100년 가까이 된 낡은 건물에 찻집 ‘풍뉴가’가 있다. 우리말도 외래어도 아닌 건 확실한데, 그렇다면 이 찻집의 작명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풍뉴가’를 탄생시킨 익선다다트렌드랩의 박지현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5~6m에 달하는 대나무 숲 속. 입구도 진입로도 없는 이 허름한 건물을 처음 마주한 박 대표의 첫번째 고민은 “정말 생뚱맞다. 여기다 뭘 하지?”였다고 한다.
난감하다 싶은 순간 귓가에 스치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사사삭 사사삭’
건물 주변을 둘러싼 대나무의 잎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내는 소리였다. 그때 박 대표는 이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창업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했다.
박 대표는 공간을 만들면서 음악에 대단히 많은 신경을 쓴다고 했다. 그는 “공간을 구성하는 데 있어 ‘이 공간엔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정도로 고민한다. 그만큼 공간이 가진 이야기를 잘 담은 음악을 찾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브랜드 완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대나무로 둘러싸인 낡고 작은 건물을 브랜딩 하면서 처음으로 음악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나무 숲에서 잎 스치는 소리를 음악 삼아 노니는 것이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말하던 ‘풍류’가 아닐까 했다”고 설명했다.
풍류를 이야기하기 위한 매개체로 박 대표는 ‘차’를 떠올렸다.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커피보다는 차를 마실 것 같아 차를 선택했다고 했다. 주변 빈집들이 커피를 주메뉴로 하는 세련된 카페로 채워진 것과 차별화를 두기로 한 것이다.
박 대표는 “우거진 대나무 숲과 그 사이를 가르는 바람,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를 느끼며 차를 즐기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가장 쉽고 확실한 차별화는 남들과 다른 카테고리를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어느 상권이든 비어 있는 시장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잘 알아채 선점하는 게 관건이다. 그때 공간이 가진 특수성을 살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가 새롭게 해석한 풍류는 멋있고, 음악도 알고, 예술에 대한 조예도 있고, 자연도 가까이하는 그 모든 것의 총체였다. 브랜드 이름도 이 맥락에서 나왔다. 새로운(NEW) 풍류를 느끼는 집(家), ‘풍뉴가’ 였다.
박 대표는 “브랜드를 만들 땐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브랜드를 설명해선 안 된다. 치밀하게 파고든 뒤 하나의 슬로건으로 명확하게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새로운 풍류란 뭘까’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우리가 제안할 새로운 풍류를 구체화했다. 이에 새로운 풍류에 대한 합의가 도출됐고,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공간이지만 실재하는 세계라는 의미를 담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박 대표가 풍뉴가라는 찻집을 브랜딩 할 때는 식음료(F&B)뿐만 아니라 분위기, 공간, 사이니지, 그래픽, 나아가서는 소리나 향기까지도 한 세계관에 녹여내려고 했다. 그래야 브랜드가 의도한 세계관에 소비자도 설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풍뉴가 밖이 바쁘고 고단한 현실세계라면, 풍뉴가 안은 자유롭고 모험적이면서 마치 숲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가상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다”면서 “그 맥락에 따라 풍뉴가라는 공간 안에는 강한 대비가 되는 소재와 보색에 가까운 색상이 묘하게 어울려 있다. 배경이 되는 대나무와 그 잎들이 부딪히는 소리는 고객들에게 안락함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풍류가의 디자인이 입혀졌다.
공간의 실제 크기도 체감하기 어렵게 한 것도 박 대표가 세심하게 신경 쓴 창업 포인트 중 하나다. 대나무 숲이 아주 넓지 않기 때문에 건물 한쪽 벽은 통유리로 해서 공간을 확장하는 효과가 있었고, 건물 외부에는 거울을 여러 곳 설치해 대나무가 실제보다 우거지게 보이도록 했다.
테이블 디자인도 신중하게 고민했다. 풍뉴가 매장 안의 테이블 높이는 제각각 다른데, 창문과 가까운 곳이 가장 낮고 창문과 멀수록 테이블 높이가 높아지도록 했다. 대나무를 어느 자리에서든 시야에 크게 걸리는 것 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박 대표는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보기에 예쁜 것만 좇다 보면 본질을 잃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풍뉴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도 마치 한 폭의 풍류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박 대표는 차를 두 종류 이상을 블렌딩한 차, 청을 이용해 블렌딩한 차, 차를 이용한 칵테일 세 종류로 세분화했다. 차 이름은 가령 ‘설향차(겨울을 담아낸 차)’처럼 쉽고 직관적이도록 했다. 어떤 차와 칵테일이 블렌딩되어 있는지 정보를 적어두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박 대표는 브랜딩을 하며 100% 마음에 드는 공간과 건물을 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장소가 가진 특성을 애물단지로 보느냐 차별점으로 보느냐는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우린 처음 우리를 당혹하게 했던 대나무와 작고 낡은 건물에 모든 가치를 집중했고, 결국 성공적인 브랜딩으로 이끌 수 있었다”고 했다. /정리=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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