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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억짜리 집인데 대출이 왜 안돼?"…특례보금자리론의 함정

    입력 : 2023.01.25 07:40

    [땅집고] 동대문구 답십리동 '래미안미드카운티' 급매와 KB시세 현황. /네이버부동산, KB부동산

    [땅집고] 최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래미안 미드카운티’ 전용면적 59㎡가 9억원 급매물로 나온 것을 본 A씨는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해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KB시세가 10억이 넘어 특례보금자리론 적용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부가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 출시가 임박한 가운데 KB시세에 막혀 대출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시세 9억원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소득에 상관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어, 그간 실수요자들의 대출을 옥죄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에서 자유로운 게 장점이다.

    이 상품을 활용하면 9억원 이하 주택을 구입하는 실수요자는 최대 5억원까지 4%대 고정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다. 새로 주택을 구입하거나, 기존 변동금리인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꾸는 용도로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있다. 임차 보증금 반환 목적으로도 사용 가능하다.

    문제는 대출을 결정짓는 9억원에 대한 판단 기준이 KB시세라는 점이다. 시장에 9억원의 급매물이 나오더라도 KB시세가 9억원을 넘으면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KB시세의 경우 중개업소에서 실거래가와 호가를 직접 입력하면 추후 전화나 팩스를 통해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요즘과 같은 부동산 급락기에 급매물 1개와 일반 매물 4개가 있으면, 급매물 1개의 영향력은 미미할 수 밖에 없다. 통계수치가 현실을 반영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거래가 되더라도 즉시 KB시세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KB시세는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된 내용을 발표한다. 거래가 없는 경우에는 매매사례비교법에 따른 조사 가격을 넣는다지만, 마찬가지로 정확한 가격 반영은 어렵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면서 아파트 거래는 그야말로 ‘절벽’을 넘어 ‘실종’ 수준이다. 거래가 없으니 KB시세가 현재 시세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자, A씨가 크게 실망한 이유다. 그는 “고정금리 적용에 DSR도 안 본다고 해서 기대했었다”며 “누가 급매물을 사서 실거래가 신고 기록이 뜨더라도, KB시세가 안바뀌면 소용이 없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나”고 토로했다.

    [땅집고] 은평구 응암동 '백련산힐스테이트1차' 급매와 KB시세 현황. /네이버부동산, KB부동산

    실제 매물 가격과 KB시세가 역전된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은평구 응암동 ‘백련산힐스테이트1차’ 전용 84㎡ 급매물은 7억5000만원에 나와 있지만, KB시세가 9억7500만원으로 2억2500만원 높다. 이 물건 또한 특례보금자리론 대출을 받을 수 없다.

    ‘특례보금자리론’에 실망한 건 매수자 뿐만이 아니다. 2021년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더샵센트럴포레’ 84㎡를 산 B씨 역시 수혜를 볼 수 없다. 이 주택형이 지난해 12월 7억8000만원에 거래됐지만, KB시세가 여전히 10억2500만원이라서다. 아파트 매수 당시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았던 B씨는 최근 높은 금리 부담에 특례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려 했지만 KB 시세에 막혀 이 계획을 접어야 했다. B씨는 “특례보금자리론을 보고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다”며 “집값 떨어진 것도 열받는데, 대상이 안 된다고 하니 속상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한 잣대는 경매로 인해 낙찰받은 주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낙찰가가 아닌 KB시세를 기준으로 대출 가능 여부가 정해지는 것인데, 9억원보다 한참 낮은 가격에 낙찰을 받더라도 KB시세가 9억원을 초과하면 특례보금자리론을 받을 수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 대출 기준으로 KB시세가 아니라 실제 구매가격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정부가 현재는 급매물만 거래되는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며 “KB시세 뿐 아니라 실제 거래가격도 대출 기준으로 삼는 등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금융위원회는 특례보금자리론 발표 당시 시세가 있는 아파트의 경우 KB시세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밝혔다. KB시세가 없는 경우엔 한국부동산원 시세, 주택공시가격, 감정평가액 순으로 적용한다. 신축 아파트는 분양가액을, 분양가액 적용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 감정평가액을 적용하기로 했다. 사실상 실거래가격이 대출 가능 기준이 될 가능성은 없다.

    특례보금자리론의 대출 심사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도 나왔다. 통상적으로 주택담보대출 심사에는 일주일이 소요되지만, 특례보금자리론의 경우 30일이 걸린다. 금융위는 신청 접수 가능일인 30일부터 한달 이내에 자금이 필요한 경우 특례보금자리론 이용이 어렵다고 설명한 바 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 역시 “신청 이후로부터 30일 이후에 된다는 것은 사실상 급매를 상품 적용 대상으로 보지않았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대출 심사 기간이 길고, 정부 발표안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매수자가 자격 여부 등을 잘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합수 겸임교수는 “대출 신청 이전에 자격 여부를 확실히 가려내는 제도가 마련됐어야 하지만, 현재는 없다”며 “매수자 스스로가 심사 기준이나 신청 자격 등을 꼼꼼하게 살펴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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