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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실리콘 시공하면 싸움판 벌어지는 이유

    입력 : 2023.01.22 08:04

    홍익대 건축과를 졸업한 뒤 일본의 설계사무사에서 경력을 쌓은 남택 건축사가 ‘우동, 건축, 그리고 일본’(기파랑)을 펴냈다. 옆나라 일본의 건축에서 배워야 할 지점들을 돌아본다.

    [땅집고 북스-일본, 건축, 그리고 우동] ②한국에서 실리콘 시공하면 싸움판 벌어지는 이유
    [땅집고] 실리콘은 건축 자재 사이 틈을 메꿔주는 필수 자재다. /게티이미지뱅크

    [땅집고] 실리콘 실란트. 어쩌면 ‘꿈의 자재’일 수도 있다. 쭉 짜기만 하면 어디든 틈을 메꿔주고, 하룻밤만에 굳어 물도 막아주니 얼마나 편한가.

    실제로 실리콘은 건축 자재 사이 틈을 메꿔주는 소재이기에 꼭 필요하다. 그런데 단점도 있다. 현대 건축에 널리 쓰는 일부 자재들과 성정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다. 먼저 불소수지 도장(불소 도료로 표면을 액상 코팅하는 공정)을 하는 알루미늄 창호 패널에 실리콘을 바를 경우, 이온화 반응을 일으켜 박리되거나 오염을 부착시킨다. 또 석재에 쓰면 실리콘이 그 틈에 흡수되고, 실라콘 면에 붙은 오염물이 석재에 번지면서 마치 기름을 먹은 것처럼 지저분해지는데 나중에 닦을 방법이 없다.
    [땅집고] 일본 건축현장에선 실리콘 자재의 한계를 고려해 사용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본에선 이 같은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실리콘을 최소한으로 쓴다. 또 이액형(주제와 경화제 두 성분을 혼합해 경화시키는 방식) 실리콘은 쓰지 않으며, 겨울에는 시공을 멈추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계가 있어, 창호에서는 실리콘보다 고무 재질의 파킹 몰딩을 많이 사용한다. 자동차 창문에 설치한 유리 프레임처럼, 꼭 맞게 시공하고 제작해서 고무에 꽉 끼게 하는 식이다. 외벽이라면 알루미늄을 절곡한 패널을 쓰는 대신, 좀 더 두꺼운 알루미늄 판을 만들어 틈을 막지 않은 채 오픈시키는 디테일을 많이 쓴다. 이 경우 보이지 않는 바탕면이 제대로 시공되어야 딱 들어맞고 누수·단열 등의 하자가 없다.

    일본에서 건물 현관 창호에 실리콘 공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업체에 의뢰하니 작업자가 4명 왔다. 한 사람이 창호 틈에 백업재(합성수지 발포재)를 넣은 뒤 마스킹(가림처리)을 한다. 또 한 사람이 수 십개의 노즐 중 그 틈에 맞는 것을 골라 실리콘 튜브에 꽂고,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기관총 모양의 건에 실리콘을 장착하고, 실리콘을 정성껏 짜 넣는다. 다른 작업자는 허리에 차고 있던 도구 벨트에서 수십개의 나이프 중 하나로 실리콘을 쫙 긁어 마감을 완성한다. 작업 중엔 두 사람이 사다리를 양 쪽에서 붙들고, 한 사람은 주변 통행을 관리한다. 작업이 끝나자 마스킹을 깨끗이 제거하고 주변을 청소한 그들은 내 차보다 깨끗한 작업 차에 도구를 싣고 사라졌다.

    [땅집고] 우리나라 건축 현장에선 실리콘 작업을 적은 인원이 도맡는다. /온라인 커뮤니티

    한국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실리콘 작업을 주문하면 고작 한 사람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온다. 공구라고는 커터칼과 플라스틱 건을 달랑 들고 있다. 커터로 틈의 크기에 맞춰 플라스틱 노즐을 뚝 잘라 끼우고 실리콘을 한 방에 짜 넣는다. 마치 ‘이 긴 구간을 한번에 짜는 사람은 처음봤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며 으쓱한다.

    그러더니 주변에서 비닐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검지에 칭칭 감더니, 침을 퉷 하고 발라 짜 넣은 실리콘 위를 쭉 문지른다. 번진 실리콘은 맨손으로 닦아 주변 대리석 벽면에 쓱쓱 닦는다. 이 장면을 보고 항의하니 그제서야 자기 바지에 닦으며 입이 댓발 나온다. 바닥에 비닐, 자른 캡, 쓰레기는 발로 대충 정리한 채로 작업을 마쳤으니 하루 일당을 받아야겠다고 찾아온다.

    결국 건물은 실리콘 범벅이 된 땜빵 건물이 되고 만다. 한겨울이 지나면 외벽 조인트에 땟국물이 줄줄 흐른다. 정밀 시공이 안되고, 공정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니 매일 싸움판이 난다. 평생 모은 돈으로 번듯한 건물을 가지려던 건축주는 자기 건물인데도 정나미가 떨어져 임대료나 올려 받다가, 적당한 매수자를 만나면 웃돈을 붙여 팔 생각만 한다.

    왜 우리나라에선 건축 과정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 건축주 잘못도 아니고, 설계자가 어찌할 수도 없으며, 시공자 역시 별 도리가 없다. 잘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사회 수준 탓이라고 생각한다. /글=남택 건축사, 편집=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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