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1.03 07:50
[땅집고] 집주인이 사망하면 세 들어 살던 집이 ‘내 집’이 된다?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지만 실제 지구촌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집주인이 사망하면 세입자가 집을 가질 수 있는 민간 매매 방식인 ‘비아제(Viager)’을 통해 주택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아제는 프랑스만의 독특한 부동산 매매 방식이다. 매수자가 일부 금액(계약금)을 선지불해 주택을 산 뒤 나머지 금액을 매도자에게 연금처럼 매월 나눠서 내는 구조다.
비아제 계약으로 주택 매도자는 일종의 계약금인 부케(bouquet)와 매달 일정금액의 연금인 랑뜨(rente)를 받는다. 계약금이 많아질수록 연금이 적어지고 계약금이 적으면 연금이 많아지는 원리다.
이 계약금과 연금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합의로 결정된다. 이 금액을 산출할 때 고려되는 사항은 매매가 이루어질 당시 매물의 시가, 매물 상태, 판매자의 나이와 기대되는 평균 수명, 주택자금 융자율 등이다.
비아제 방식으로 집을 파는 사람은 자신의 집에서 사망할 때까지 살 수는 있지만, 집의 소유권은 계약과 동시에 매수자에게 넘겨줘야 한다. 그리고 매수자는 매도자의 사망 이후에 비로소 집의 사용권을 가지게 된다.
이 방식을 통해 주택을 파는 매도인은 주로 노인이고, 매수인은 청년이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이 연금을 충당하기 위해 비아제 방식으로 판매에 나서는데, 특히 자녀가 없거나 배우자를 일찍 여읜 노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가진 자산이 집 한 채 밖에 없고 부족한 퇴직연금으로 생계를 이끌어 나가기 어려운 노인들이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어 선호하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이한 점은 기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판매자인 노인이 사망할 때까지 이 금액을 계속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매도자인 노인이 일찍 사망하면 매수자 입장에서는 아주 저렴하게 집을 살 수 있지만, 매도자가 오래 살수록 손해를 보는 형태다.
프랑스에는 이런 비아제 매매 방식과 관련한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가장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은 ‘잔 캴망’이다.
122세에 사망한 잔 캴망은 1965년 90세의 나이로 자신의 집을 비아제로 팔았다. 캴망은 비아제 계약 이후 32년을 더 살면서 계속해서 연금을 받았고 캴망의 집을 산 구매자는 31년 동안 연금을 붓다가 결국 캴망이 사망하기 1년 전에 먼저 사망했다.
이렇게 판매자의 나이가 주택 가격 책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비아제 방식으로 거래를 희망하는 매수자와 매도자를 중개하는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을 보면 매도자의 나이가 기재돼 있다.
매도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집값은 저렴하게 책정된다. 이 매물의 경우 재산 가액은 55만 유로고 계약금은 23만 유로다. 연금 형식으로 지불하는 월 임대료는 1100유로고 주택 소유자인 부부의 나이는 각각 85세다.
이런 비아제를 두고 프랑스인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남의 죽음을 담보로 한 거래 방식이라며 비난하는 한편 고령화 시대에 가진 게 집 한 채 뿐인 노인들에게 턱없이 부족한 연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매매 방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이런 방식으로 거래하면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코로나 때 이 방식으로 집 산 사람이 많다고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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